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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호] 연애

[특집] 시리즈물인데 비정기적인 좌담회 2호: 바이섹슈얼과 연애-3-

*[특집] 시리즈물인데 비정기적인 좌담회 2호: 바이섹슈얼과 연애-2-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성별이 제일 중요한가? 정말?

주누: 바이섹슈얼이라는 말을 무서워하고 그게 나라고 생각을 하지 않을 때의 일인데요. 이전에 사귀었던 파트너들이 절 떠나갈 때 자신은 바이섹슈얼이므로 여성을 만나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일이 엄청나게 트라우마가 되어서…


캔디: 대체 헤어지는 거랑 바이섹슈얼인 게 무슨 상관이야.


이브리: 헤어지면서 할 말이 없어서 그랬으려나요?


주누: 헤어질 때가 되어서 관계가 깨지는 건데, 여성에게 가겠다는 말로 들렸고, “이 바이들!” 이라며 화났죠. 


캔디: 그 순간 레즈비언이라고 하는 것과는 어떤 차이일까? 주누의 옛 애인들이 헤어지는 이유로 바이를 가져오는 이유는, 만일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는 분들이라면 ‘난 여자를 만나보고 싶은데, 너 때문에 시도를 할 수 없으니까 헤어져야겠다’ 이런 뜻일까요?


주누: 레즈비언이 아니라 바이섹슈얼이라고 말한 이유는 나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랬을 거라 생각해요. 보통은 바이라고 하고 만났었는데, 상대가 나는 여자에게 끌리는 바이인가보다라는 말로 결별을 한 거고요. 또 다른 연애들은 사귀고 난 뒤에야 바이인 것을 알게 된 경우도 있기도 하고.


이브리: 그때는 폴리아모리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건가요?


주누: 그때는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런 형태의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몰랐어요. 바람피우는 것 말고는. 그 당시의 저에게 폴리아모리는 바람과 동급이었던 것이죠.


이브리: 지금이라면 다르게 설득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나랑 헤어질 필요는 없어, 나랑 사귀면서 여자도 만나면 돼!” 이렇게. [웃음]


주누: 실제로 지금은 그렇게 하고 있어요. 


캔디: 전, 아직 자기 정체성을 하나로 정하지 않은 바이를 만나는 건 상당히 빈정 상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경험이 있어요. 옛날에 만났던 나의 남자친구가 자기는 바이라고 했어, 분명히. 바이라고 하며 남자를 탐색해 보겠다고 하기 시작하더니, 나랑 헤어지고 얼마 안돼서 자기는 게이라고 선언을, 선언을! 한 거죠. 뭐 다 상관 없는데, 나는 이 애가 과정을 거쳐가는 동안 애인으로 있었던 그 상황에, 나는 어쨌든 “어 그래, 네가 게이로 거쳐가는 과정에서 난 너의 마지막 여자구나” 하고 즐거워했… 하하~ 나중에 그 친구랑도 얘기했거든요. “내가 너의 마지막 여자냐?”, “그렇다” 이렇게. 그럼 이걸로 즐거워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는 마지막 시도, 정말 쓸데없는 마지막 시도의 대상이 돼서 되게 비참해져야 하는 것일까. 처음부터 그냥 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든가. 왜 그 과정에 나를 만나는 거냐. 빈정이 상하긴 했었어요.


주누: 나는 한때 그걸 깨달은 적이 있었어요. 내가 잘 몰랐을 때, 난 내가 남자와 폭력성을 연결시키기 때문에 그걸 싫어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상대방의 신체적인, 혹은 생물학적인 성별이나 그런 것들은 별 문제가 아닌데, 마초성이랄까, 그 이상한 남성성 있잖아요. 그게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 성별이 뭐든 간에 하여간 싫은 거였죠. 그래서 왠지 내가 (남성에겐) 아주 얄팍하게 끌릴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이브리: 그래, 마초 여자도 있어요. [웃음]


주누: 저도 잘 알아요. [모두 웃음] 이제 또 거기에 연동해서, 강하지 않지만 때때로 어떤 국면에서는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남성이고 싶지 않은 상황도 존재를 하게 되고. 이게 같이 연동되면서 어떤 성별이 어떤 성별을 어떻게 좋아하냐, 아까 처음 말했던 도식을 가지고 바이섹슈얼을 설명하는 게 너무나 허황되고 약간 덧없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남들에게 정교하게 이건 이렇고 뭐가 다르다고 설명하기보다도, 그냥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을 내려놓게 되는 부분이 있죠.


캔디: 난 많은 것에 마음을 점점 내려놓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맨 처음에 ‘나는 바이섹슈얼’ 이라고 이야기할 땐 되게 악에 받친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바이라고, 바이라고! 너 바이를 모르니? 여기 바이가 있다고. 정신차려! LGBT 모르냐고.” [모두 웃음] 정말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 뭐. 그냥 뭐, 나 바이야.”라는 식으로 좀 여러 가지를 마음에서 내려놓게 되고요. 그거는 내가 그냥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더 유동성 있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고. 좀 더 유연하게 레즈비언과 바이와 게이에 넘어가는 사이나 말하는 방법 그런 거에 대해서 더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거기도 하고요. 더 그냥 외면하고 있는 거기도 하고. 그냥, ‘레즈비언과 바이섹슈얼, 두 개 다라고 생각하면 돼.’ 그렇게 됐나? “각 세워서 무엇하리, 너도 퀴어 나도 퀴어. 너도 성적소수자 나도 성적소수자. 네가 뭔가 잘못 말하면 그냥, 내가 화낸다고 네가 변하냐. 그냥 내가 열 번 더 말해주리…”


이브리: [웃음] 해탈했네요.


캔디: 좀 그런 느낌. 적어도 사람들이 옛날처럼 내가 바이라고 하면 “어 그래, 넌 아직 혼동을 겪고 있는 것 뿐이야” 이런 얘긴 하진 않으니까. 실제로 이거 이 판[LGBT/퀴어 운동]에 들어와서 들은 얘기거든요. 나이도 있으신 게이분과 이 판에 좀 이런 걸 오래 신경 써 오신 분이, 내가 “나 바이섹슈얼이에요”라고 말하니까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라고 나에게 이야기 했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이상한 사람 많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런 사람도 많이 없...나? 그런 사람들이 말을 덜하죠. 


이브리: 그런 사람들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캔디: 어, 그런 사람들이 말을 덜 하게 되었지. 





이제 어디로 갈까요

캔디: 그래서 뭐, 앞으로 뭘 할거냐는 문제에서 중요한 건 내가 재미있는 거. 이게 꼭 큰 의미가 있으니 해야만 한다기 보다는 지금 내가 생각하기에 재밌는 무언가를 할게 너무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난 바이섹슈얼/LGBTQ 관련해서 공부하기만 하고 있기도 너무 싫고. [웃음] 응, 공부하기 싫어, 난. 내 타로에 따르면 나는 그냥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이브리: 전 캔디 같은 생각이 좋아요. 어쨌든 뭔가 바이섹슈얼 관련해서 활동이나 운동을 한다면, 그건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냥 각자의 방식대로, 나는 핏대 올리지 말고 어떤 오해를 받든지 그냥 넘어가는 게 편하다는 사람은 그렇게 살면 되고. 바이섹슈얼은 애인이  없을 때 거쳐가는 중간 기착지라거나, 또는 어서 빨리 벗어나야 하는 상태라거나,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죠. 어떤 식으로든 그렇게 생각해서 자신이 더 편할 수 있다면, 바이섹슈얼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그런 과정을 너무 고달프게 겪는 사람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나는 바이섹슈얼이야’ 라고 말하는데, 거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봐, 너 착각하는 거야’ 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속상하다거나. 그래서 나는,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안 하고 ‘내가 바이섹슈얼이건 다른 무엇이건 사는 데 큰 상관 없구나, 이성을 만나건 동성을 만나건 이성이기도 하고 동성이기도 한 사람을 사귀건 잘 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장 중의 하나가 이 웹진이 됐으면 좋겠어요. 


주누: 정말요?


이브리: 뭐, 저는 그렇다는 거고요. 웹진에 참여하는 다른 분들의 생각은 또 다르시겠죠! 여하튼 그래서 어떤 바이섹슈얼 관련 운동이든 활동이든, 거기서 도움을 얻는 사람의 정체성이 바이섹슈얼인지 아닌지는 제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캔디: 저는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게이, 레즈비언과 같은 범주로 정체화 하는게 뭐가 중요하냐고 얘기를 하는 것과 동시에 여러 가지 정체화를 왜 하는가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오렛: 저도 제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잘 하지 않고, 그러한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으니까 방어적으로 생각한 것 같긴 하지만, 바이모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왜 모임을 만드는 걸까 생각했어요. 아마도 ‘왜 바이섹슈얼이라는 이 단어를 택할까? 이 범주를 택할까?’라는 질문, 정체성을 명확하게 설명해주길 바라고 이 정체성의 특별함을 말해주길 바라는 요청은 계속해서 올 것 같아요. 일단 저는 저를 무엇으로 부르든 별로 상관을 안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연애 할 때 그 사람의 성 정체성이 안 중요할 것 같다고 생각은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난 그 사람이 누구든 좋아할 수 있어.’ 이런 말은 무책임하게 느껴지고. 연애를 경험하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어떻게 정체성에 영향을 안 미칠 수 있을까? 연애 경험은 정체성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누: 근데 누군가에겐 당연해 보이는 그 말이 누군가에게 납득되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 있겠죠.


잇을: 오늘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바이섹슈얼과 연애에 관해서라면 이 자리에서 나오지 않은 말이 훨씬 많겠죠? 이제 거의 2시간이 갔으니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하고, 오늘의 좌담/수다회는 여기에서 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캔디, 주누, 오렛, 이브리: 수고하셨습니다!


*글-바이모임

*이미지 출처-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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