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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호] 연애

[기획]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발표회 참관 및 집단별 워크숍 참여 후기: 이번엔 과연 바이섹슈얼이 감춰왔던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3-

*글-주누


* [기획] 욕구조사 결과 나왔다고? 이번엔 과연 바이섹슈얼이 감춰왔던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발표회 참관 및 집단별 워크숍 참여 후기-1-, -2-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LGBTI 사회적 욕구조사 집단별 워크숍 : 바이/퀴어> 후기


2014년 11월 21일 조금 쌀쌀한 금요일 저녁,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인권중심 사람' 2층 다목적홀 한터에서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이번 챕터에서는 이 날 열린 바이/퀴어 집단별 워크숍을 준비할 때 들었던 생각들과 워크숍 현장에서 오고갔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글을 풀어갈까 합니다.





잠깐 몇 개월 전으로 돌아가서, 지난 늦여름에 바이모임으로 한 가지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욕구조사결과를 가지고 각 집단별로 워크숍을 하려고 하는데 바이섹슈얼과 비LGB 퀴어 집단에 대한 워크숍을 바이모임이 공동으로 주관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죠. 처음에는 “엥? 우리가 이름만 바이'모임'이지 사실 사람 수도 몇 명 뿐이고, 커뮤니티도 딱히 없으니 행사에 필수인 조직 동원력도 없는데... 공동주최라니, 무리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고사하려 했었지요. 그런데 그래도 괜찮다는 설득에 넘어가(??) 워크숍 준비를 함께 하기로 결정하게 되었고요. 그 후로 함께 공동주관하는 SOGI법 분들과 두 차례 만나면서 바이/퀴어 집단별 워크숍 자리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면 좋을지를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공동주관을 제안해주시고 준비와 진행에 함께 많이 힘써 주신 친구사이와 SOGI법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렇게 그렇게 준비된 바이/퀴어 집단별 워크숍은 욕구조사결과의 내용 중 바이와 비LGB 퀴어 부분에 대한 한 시간 가량의 발제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진행된 패널 토론 자리에서는 바이모임 필진들도 사회자와 패널의 역할로 참여하였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그렇게 많은 이들 앞에서 “저는 바이섹슈얼입니다”(사실 폴리섹슈얼이란 단어를 쓰기를 더 선호하지만, 저는 자신을 설명할 때 둘을 섞어 쓰는 것도 크게 개의치 않아 합니다)라고 밝히는 게 처음이었던 지라, 겉으론 태연한 척 하였지만 맘 속으론 두근 반 세근 반 하고 있었더랬죠.


패널 토론은 커밍아웃, 커뮤니티, 법제화/파트너십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바이섹슈얼은, 비LGB 퀴어는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커밍아웃하는가?”

“바이섹슈얼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는 필요한가? 정작 바이섹슈얼들은 그러한 커뮤니티를 원하고 있는가?”

“ 바이섹슈얼은, 비LGB 퀴어에게 제도적 시스템에 의해 지원받기도 하고규정되기도 하는 법제화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 바이섹슈얼은, 비LGB 퀴어는 파트너십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지니고 있는가?”

라는... 하나하나가 엄청난(!)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그치만 이 글에서는 이 엄청나고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보고하는 형태로 글을 쓰진 않을게요. 대신에 패널로서 참여했던 저의 개인적 소회를 좀 풀어볼까 합니다.


워크숍을 준비하던 과정부터는 물론이고 워크숍 패널 토론 때에서마저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제 발목을 붙잡고 있듯이 제가 하고 싶은 발언을 제약/검열하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캐치 못 하고 있다가 워크숍 자리에서 토론을 진행하던 도중 그제서야 그게 무엇이었는지가 확 알 수 있게 되더군요. 그것은 식상(?)하기 짝이 없는 그 말, 바로 “범주 간의 경계선”이란 놈이었습니다.


앞서 무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잠시 언급하였듯이, 욕구조사결과에는 판섹슈얼과 헤테로플렉서빌리티 등은 비LGB 퀴어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이 정체성들은 단성애적이지 않은(non-monosexual) 성적지향 정체성으로서 불리우지요. 그러한 범주 속에는 협의의 바이섹슈얼이 있겠고, 때로는 바이섹슈얼이란 말이 '단성애 아님'과 등치되어 좀 더 넓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 용어들은 사전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다른 맥락과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고 각각 개념상의 차이들이 있습니다만, 그리고 저 역시 바이섹슈얼이란 용어를 전적으로 포괄어로 보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도 합니다만, 비단성애적 혹은 다성애적 성적지향으로서 비LGB 퀴어 집단에 속해 있는 성적지향 정체성들 중 일부와 바이섹슈얼은 반드시 함께 논의될 부분은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많은 성적지향 용어들이 성적 대상의 성별에 기반하여 설명되곤 하기 때문에 다양한 젠더정체성(들)에 대한 고민 역시 이 논의에는 함께 가야만 한다고 보는 게 저의 입장이고요.


이런 입장에서 보면, 바이섹슈얼 그룹을 “남성과 여성에게 성적 이끌림을 느끼고, 깊은 관계를 맺는 남성 혹은 여성”(p.10.)라는 정의에 국한하여서만 보고, 이 정체성과 경험과 맥락을 여타의 다성애적 정체성과 분리된 집단으로 별도 논의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지요. 특히나 이번 집단별 워크숍에 참여를 하면서 저를 비롯하여 바이모임 웹진의 필진들이 '바이모임'이란 타이틀을 가진 집단 소속으로서 참여하고 동시에 젠더퀴어 정체성을 가지신 분이 섭외되셔서 또 다른  패널로 참석을 하셨기에, 모양새는 바이섹슈얼 패널과 비LGB 퀴어 패널이 병렬적으로 위치되는 구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설령 이러한 분리/분절과 병렬화된 배치 방식이 애초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워크숍 현장에서는 사실상 그렇게 된 것으로 포지셔닝을 하게 되었고요. 저 스스로도 거기에 맞춰진 역할을 스스로에게 주입하고 있진 않았나 생각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더욱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기회였음에도 어디까지만 말해야지라며 말할 수 있는 범위를 한계 지은 채 거짓된(?) 패널 노릇을 하고 말았었지요.


예를 들면, 워크숍을 준비하던 과정에서는 “바이섹슈얼 정체화에 각본이 있는가? 전형적인 바이섹슈얼의 모습이 있는가?”란 질문이 중요한 화두로 나오긴 했었는데, 막상 워크숍 현장에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깊이 이뤄지진 못했답니다. 바이섹슈얼들은 “나는 어릴 때부터...” 류의 자기서사도 잘 쓰지 않(는다고 하)고, 유명인들 중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이런 이런 사람의 모습이 바이섹슈얼인 나의 롤모델이야”라고 말하는 경우도 적은 거 같다는 얘기가 워크숍 준비 과정에서 나오곤 했었는데요. 막상 워크숍 현장에서는 주된 주제로 얘기되진 않았습니다. 또한 “누구와/어떤 성별의 사람과 연애했던 경험이 바이섹슈얼을 바이섹슈얼로 만드나?”라는 이야기도 쉬이 나오지 못했었고요. 그래서 너무 아쉽고, 패널로 참석한 입장에서 그런 화두를 끌어내고 싶어도 맘대로 잘 끌어내지 못한 저의 모자란 말솜씨가 원망스럽기도 했지요. 흑흑~


다행히(?) 워크숍에 참석하신 분 중에 플로어에서 자신의 연애 경험을 이야기해주시며 자신이 판섹슈얼로 정체화하게 된 맥락을 말씀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웹진의 이번 호 주제인 '연애'란 키워드를 새삼 생각해봤습니다. 처음 이번 호 주제를 정할 적에 바이모임 필진들끼리는 '연애 경험을 통해서만 나는 바이섹슈얼일 수 있는가?'란 얘기를 하며 '연애'를 키워드로 잡아보자고 한 적이 있더랬죠. 그렇지만 플로어에서 말씀하신 분처럼 누군가는 연애 경험을 통해서 판섹슈얼로 정체화한 경험을 설명하기도 할 것이고, 저의 경우처럼 연애 경험만으로는 자신의 욕망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네, 다시 돌고 돌아 연애 경험을 기준 삼아 보았을 때도 전형성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말만은 할 수 있겠지요:

‘연애 경험만으로는 설명할 수는 없다'와 '연애 경험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서로 다른 함의를 가진 문장이며 공존 가능한 명제들이라고요.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소위 '각본과 전형성'이란 게 대체 무얼까 고민을 좀 더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돌아보며 자문해 보았지요. 저는 전형적인 바이섹슈얼 남성일까요? 저는 “앱쏠루틀뤼 낫!!!”이라고 답합니다. 제 개인사에서 이성애자로서 나름 편히 잘 살아 온 시기가 9할이고, 욕구조사결과 발표에 실린 정의대로 “남성과 여성에게 성적으로 이끌리”지도 않습니다. 굳이 도식화된 언어로 설명하자면 남성적이지 않은 여타의 성별(들)에 끌립니다. 설령 남성에게 끌린다 해도 그 사람의 남성적이지 않은 면을 보고 끌리는 쪽이고요. 그러면 과거 연애 경험에 남/여를 모두 사귄 적이 있기는 하나? 그렇지도 않아요. 그럼에도 제가 바이섹슈얼 남성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저는 “앱쏠루틀뤼 예쓰!”라고 답하렵니다. (어차피 정해진 각본도 없는데요, 뭐...)


글을 슬슬 마치며, 당시 그룹별 워크숍에는 2~30여 분이 찾아오셨었는데요. 솔직히 말해 워크숍을 하기 전까진 “아무도 안 오고 패널들만 덩그라니 앉아 있게 되면 어떡하지?ㅠㅠ”라며 많이 걱정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오셨고 또 적극적으로 의견을 더해 주셔서 되려 생각할 거리를 많이 얻어가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게이와 레즈비언이 1,000여 명 과 950여 명인 것에 비교해보면, 바이섹슈얼 남성과 여성의 참여자 수를 합치면 930여 명으로 거의 비슷한 비율인 데다가 비LGB 퀴어 집단은 조사 참여자 수가 200명 가깝지요. 저 역시 그 중 한 명으로 마치 시험문제 풀듯 하나하나 답을 체크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몇 백 명으로 합산되어 있는 숫자들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어떤 항목들에 체크를 했을지가 더욱 궁금했습니다. 한 사람이 체크했던 답변을 선으로 선으로 연결하면 하나의 이야기가 쓰일 거 같은 느낌이 들었었지요. 그러다 보면 각자 제출한 한 편 한 편의 응답지에는 1천 여 명 각각의 매우 흥미로운 서사들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게 어떤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래서일까요? 이번 욕구조사결과에는 설문 조사의 결과만이 아니라 심층 인터뷰를 했던 자료도 함께 실려 있는데, 전 그걸 읽는 게 더 즐거웠답니다. 이를테면,


“게이들은 바이가 결국 여자랑 결혼할테니까...라고 생각하면서 꺼려하는 느낌이 있을까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좀 많아요. 게이커뮤니티에서 그냥 게이로 묻어가는.(누_21세) (p.59.)


누구에게 커밍아웃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성소수자에 대해)잘 몰라 보이는 이성애자한테는 설명하기 귀찮아서 레즈비언이라고만 말해요. (설명이) 확실하잖아요. 바이섹슈얼라고 하면 (성소수자로서)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있잖아요.(호_25세)” (p.60.)


“동성애자 커뮤니티보다 (바이섹슈얼의 삶에 대한) 각본이 없는 것 같다. 그런 게 있어야 사람들은 자기를 설명할 수 있지 않겠느녀 (포, 32세) (p.63.)


처럼요.


이 워크숍은 이런 부분에 대한 제 '욕구'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공간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욕구조사결과를 여러 번 읽고 집단별 워크숍을 준비하고 패널로 경험하면서 좀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불끈 솟는다는 고백을 끝으로...

후기를 마칩니다.



*글 -냥이성애자로 알려진 주누

*글 수정, 보완-이브리, 잇을

*이미지 출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 정책 연구회 홈페이지

원본 주소: http://www.sogilaw.org/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