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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호] 연애

[특집] 시리즈물인데 비정기적인 좌담회 2호: 바이섹슈얼과 연애-1-




안녕하세요

잇을: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바이웹진 2호의 주제는 아시다시피 ‘연애’입니다. 저희는 바이와 연애에 관련한 수다를 떨고 나서 정돈하여 한 편의 글로 만들어 웹진에 공유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고요. 짧은 인사와 함께 시작해볼게요. 저는 웹진 창간호 조금 전부터 함께 하고 있는 잇을이라고 합니다.


이브리: 안녕하세요, 저도 웹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브리입니다.


오렛: 네, 저는 웹진 전반에 참가하고 있지는 않고요, 잇을을 통해 바이모임에 대해 듣고 계속 관심만 있는 오렛이라고 합니다.


캔디: 안녕하세요, 저는 웹진 창간 전부터 함께 하며 바이모임의 토대를 만든 캔디입니다.


주누: 저도 웹진에 참여하고 있고, 현재 망원동에 거주하고 있는 주누입니다.


잇을: 오늘 우리는 바이 정체성과 연애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바이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누구를 만나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정체성이 변하는 것, 그래서 마치 정체성이 없는 것으로 이야기되는 것을 많이 듣죠. 이성과 만나고 있을 때는 이성애자였다가 동성과 만나게 되면 잠깐 동성애자가 되었다가 또 좀 있으면 다시 이성애자가 되어서 가버린다는 식인데, 또 꼭 바이섹슈얼이 아니더라도 많은 경우에 그 사람이 누구를 만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정체성이 무엇일 거라고 주변사람들이 단정 짓는 것 같아요. 만나고 있는 파트너를 통해서 내 정체성이 판단된 경험들이 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시작해볼까요?


캔디: 네!



우리는 바람따라 흔들리는 갈대, 이리저리 오가는 철새?

잇을: 저의 경우는,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는 비밀로 하는 편이라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무슨 말을 들을 일이 없고, [다들 웃음] 그래서 딱히 이야기할 경험이 없네요. 왜 주변에 말을 안 할까? 그것은 어쩌면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그 어떤 말도, 반가워하는 말도 싫어하는 말도, 아무 말도, 누구로부터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이브리: 잇을 님의 경우엔 반가워하거나 싫어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뭔가 부담이 되거나 그런 건가요?

캔디: 더 궁금해지는 건, 뭐에 대한 반가운 말인가요? 그러니까 연애를 한다는 걸 반가워하는 말? 아니면 어떤 사람을 사귀느냐에 따라 듣는 말이 바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거예요? 아니면 그 누구든 내 연애에 대해 입을 여는 게 그냥 싫은 건가요?


잇을: 글쎄요, 뭘까요? 저는 중요하면 중요한 대로, 안 중요하면 안 중요한 대로 연애에 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확실히 대상에 따라서 다르지만 분명히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기는 하는 거 같아요. 사실 누구를 만나는지에 대해서, 성별을 많이들 궁금해 하는데… 왜 궁금해 할까 생각이 들면서 고집이 발동하는 거죠.


캔디: 하지만 연애 상대의 성별을 궁금해 한다는 것은, 어쨌든 저 사람이 바이섹슈얼이라는 걸 사람들이 잘 인지하고 있다라는 반증이 되기도 하잖아요.


잇을: 그럴 수도 있나? 그보다는 ‘쟤는 뭔지 모르겠다, 전부터 이 판[LGBT/퀴어 운동]에 얼씬거렸는데, 쟤는 정체가 대체 뭐지? 연애 상대의 성별을 알면  정체를 대충 알아낼 수 있겠다.’ 가 아닐까 생각해요. 다른 분들은 어때요?


이브리: 제 이야기는 아닌데, 예전에 모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글 중에서 예전에 여자를 사귀었다가 남자를 사귀다가 다시 여자를 만나게 된 경험에 관해서 쓴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다시 여자를 사귄다고 글이 끝나는데, 그 밑에 누가 “돌아온 걸 환영해”라고 리플을 달아 놓은 걸 봤어요. 그 사람은 딴에 좋은 말 하느라고 썼겠지만, 제 입장에선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말이었죠.


캔디: 뭐, 그런 관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브리: 물론 있을 수 있죠.


캔디: 그리고 그 홈페이지 글의 댓글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마 그것도 여러 가지 맥락이 있는 “돌아와서 환영해”였던 거 같아요. 제 생각엔 원래 글을 쓴 사람이 이성애자가 되었다가 레즈비언으로 돌아와서 환영한다는 얘기 뿐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봐요.


주누: 여기서 ‘돌아왔다’는 공간의 문제만 아니라, ‘나갔다’는 것을 뭐로 보고 있느냐의 문제겠죠. 그러니까 그 말에서는 남자를 만났던 그 경험은 ‘외부’인 거죠.


이브리: 그러니까. 저는 그게 이상해요. 바이섹슈얼은 사귀는 상대의 성별과 관련 없이 바이섹슈얼로 존재하는데, 왜 자꾸 연애 상대의 성별이 바뀔 때마다 떠나간다, 나간다 혹은 횡단한다는 표현의 대상이 되는 걸까요?


잇을: 여러분 어디 나가보신 적은 없죠?


캔디: 어디로, 어디로 나가는 거죠…?


이브리: 나간다고 하면 역시 탈반[‘이반’이길 그만둔다, 즉 이성애자가 되어 커뮤니티를 떠난다는 뜻의 은어], 탈반인가요? [다들 웃음]


주누: 저는 그런 도식에 따르면 아예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요.


캔디: 나가든 들어가든, 얘가 이 울타리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외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야 나가든 들어가든 있든 하는 건데.  또 나갔다가 돌아온 곳은 어디인가? 내가 여기로 돌아왔나? 그것도 잘 모르겠고요.

잇을: 실제로 나갔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그것을 돌아와서 환영한다고 할 일인지? 만일 누군가가 나가게 만든 거라면 “이제 돌아왔으니까 됐어, 환영해”하고 그냥 화해하면 되나요?


이브리: 마치 돌아온 탕아를 팔 벌려 환영하는 그런 식으로….


캔디: 어쨌든 제 생각엔, 나가서 돌아온 걸 환영하는 것은 환영하는 사람의 마음이 기쁜 것이기 때문에 들어온 사람에게 네가 [네 정체성이] 이렇다 저렇다고 이야기하는 것과는 것과는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내가 누군가에게 ‘미안해’라고 말하는 건 내가 미안한 거지,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사과 받아서 괜찮아지는 건 아닌 것처럼. 마찬가지로 내가 환영한다는데 뭐, 그거 환영할 수 있지요. 그 말을 듣는 사람하고의 대화나 그런 거 전혀 상관 없이, 말하는 사람 자신은 계속 여기 있었던 것 같은데 쟤는 저기 갔다가 온 것 같으면 환영할 수 있는 거고. 그때 그 말에 마음에 안 들면 내 쪽에선 네가 환영할 일은 아닌 거 같다라고 얘기하면 되는 거고요.


이브리: 캔디 말에 제 씁쓸한 기분의 답이 있는 것 같아요. 돌아와서 환영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아, 나는 그동안 외부인이었구나’하고 느껴지는 거죠.


캔디: 어, 저는 그런 말을 듣는다면 내가 외부인이라고 느껴지기보다는 ‘쟤는 정말 뭔가 문제가 있구나, 쟤가 문제가 있다’라고 느껴요. 상대가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외부인이었다고 느껴지진 않아서요. 내가 굳이 그렇게 느껴야 할 필요도 없고, 상대가 말을 잘못하는 거지.


이브리: 내부와 외부가 실제적이라기보단, 그런 말에서 저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는 외부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구나 하는 게 보인다는 거죠. 물론 자신이 안팎을 넘나든다거나 횡단한다는 식으로 느끼는 바이섹슈얼도 있겠죠. 예를 들면, 얼마 전에 박김수진 님의 <너는 왜 레즈비언이니?>라는 책이 나왔잖아요. 아직 다 읽진 못하고, 바이섹슈얼 인터뷰가 딱 하나 있길래 그것만 우선 대강 넘겨 봤는데요. 그 인터뷰이 분은 ‘나는 바이섹슈얼인데 이유는 지금  애인이 없기 때문. 내가 이러다가 여자를 만나면 레즈비언인 거고, 남자를 만나면 그때는 이성애자인 거지. 하지만 지금은 애인이 없으므로 현 상태는 바이섹슈얼이다’라고 설명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자신은 바이섹슈얼이라는 이유로 L(레즈비언)커뮤니티에서 차별을 겪은 적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요. 뭐, 그런 경우도 없진 않겠지요. 그렇지만 바이섹슈얼끼리도 서로 관점이 참 서로 다르구나 하고 느꼈어요.



지금 우린 무슨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는 거죠?

이브리: 어, 그런데… 다들 자기 경험은 말하기 싫으시군요? [웃음]


오렛: 사실 저는 처음에 어떤 좌담인지 모르고 있다가…


캔디: 섭외하시는 분들, 설명이 미흡했네요. [웃음] 저도 연애에 관련된 좌담이라고는 몇 번 얘기를 들었어요. 근데 구체적으로 연애의 무엇인지는 들은 적이 없는데… [웃음]


오렛: 어쨌든 연애하는 데 있어서 동성애와 이성애가 막강하게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이브리가 말한 대로 그 둘만 남고 나머지는 지워지는 상황에서 바이 정체성이 한 편으로는 쉽게 지워지고 있고 아니면 아까 말한 것처럼 정체성이 없거나 잘 변하는 것처럼 폄하되고 있는 이런 지점들을 연애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는 자리인가요? [다들 한숨과 웃음]


캔디: 저는 이런 저런 자리에서 바이와 연애 간의 관계에 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요. 그러고 나서 얼마 전에 드는 생각은, 사실 내가 이 이야기를 해서 의미가 있을 수 있었던 곳은 결국, 넓게 봐서 LGBTI가 있는 커뮤니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이성애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이편[퀴어/비이성애] 커뮤니티와 전혀 소통이 없는 상태에서는 내가 바이섹슈얼이라고 말하는 게 과연 그렇게 의미있는 것일가에 대해서 계속 다시 생각을 해 보게 돼요. 바이섹슈얼이라고 밝히면 이성애자 친구들이 많이 하는 말 중에, “그러면 너는 남자친구 사귈 때 네가 바이라고 얘기했냐?”라고 물어보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너 남자친구에게 말했냐?”라고.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얘기하든 말든 네가 뭔 상관이냐고 말하는 편이기는 한데, 근데 또 꼬박꼬박 “나 남자친구에게 얘기 했는데”라고 답해줘요. 남자친구한테 내가 바이라고 얘기했고, 지나가는 여자 예쁘다고도 했고, 온갖 이야기를 다 했지만 이건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조차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뭘 거기에서… 그냥 결론으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냥 내가 이 ‘변태 커뮤니티’ 안에 있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의미가 있는 거라고. 쟤네 이성애자들은 ‘변태’가 아니라서, 내가 얘기를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저[이성애자 집단] 안에서 의미가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건가. 좀 자극적인 뭔가를 보여주면 되나? [크게 웃음] 그렇다면 자극적인 것은 뭔가? 바이의 낮과 밤, 이런 거? 여튼,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좌담회의 독자는 어떤 사람들인지도 저는 모르지만요.


*글-바이모임

*이미지 출처-Purple Sherbet Photography

*원본 주소-https://www.flickr.com/photos/purplesherbet/10428286274/

*[특집] 시리즈물인데 비정기적인 좌담회 2호: 바이섹슈얼과 연애-2-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