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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호] 연애

[특집] 시리즈물인데 비정기적인 좌담회 2호: 바이섹슈얼과 연애-2-

*[특집] 시리즈물인데 비정기적인 좌담회 2호: 바이섹슈얼과 연애-1-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자신을 설명한다- 누구에게, 언제까지?

주누: 지금 캔디 이야기가 어떻게 들리냐 하면, 동성애나 양성애, 그런 걸 전혀 모르는 이성애자, 비이성애 경험도 전혀 없었던 이성애자에게 바이섹슈얼이라고 하면 굉장히 성적인 무엇, 야한 어떤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단어일 뿐일거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얘기들, 우리가 살아가는, 아까 언급되었던 그 인터넷 게시판 글과 리플에서처럼 어떤 경험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를 던졌을 때에, 그런 푸념을, 푸념이면 푸념이랄까 항의라면 항의랄까 그런 걸 할 수 있는 대상은 주로 게이와 레즈비언들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너네들이 이러고 있어 하고 항의도 할 수 있는 거죠. 캔디가 말했던 대상이라는 부분 중에서 확실히 전달하고 싶은 얘기나 메시지나 어떤 경험들을 다시 해석해달라라고 요구하는 데도 요청하는 내용은 다르게 전달되는 거 같아요. 특히나 비이성애자인 사람들에게는요. 그리고 그 경험에서 우리의 경험이 그들[게이와 레즈비언]의 경험과 같지 않다고 해서 나의 경험이 아니다 혹은 맞지 않다고 규정되는 것에 대한 어떤 거부일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니까 아까처럼 동성과 사귀었느냐 이성과 사귀었느냐로 편을 가르게 되면, 저는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거죠. 왜냐하면 나는 비트랜스 남성이든 트랜스남성이든 남성과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즉 나는 동성 간 연애를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고. 물론 성적 행위를 해 본 적이 없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장기간 연애를 했던 경험들을 판단 근거로 해서 보면 나는 그냥 쭉 이성애자 남성이었던 거고. 내 상대방들도 이게 굳이 이성애 연애인지 바이 연애인지 구분하지 않아도 파트너와 나는 되게 행복했었던 거예요. 그렇게 잘 지냈었고, 재밌었고, 그랬었는데 남들에게 이 경험을,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남들에게 설명해야 할 때에는 이 경험들을 굉장히 단절시켜야 하고 상대방의 성별들로 또 구질구질 얘기를 해야 하는 거고요. 그때의 내 감정들을 또 다르게 말해야 하니까, 마치 변명하는 거 같은 느낌이 때때로 든다는 거죠.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설명을 위해 내 경험을 조각냄으로써 나의 바이섹슈얼한 정체성이 재단당하는 느낌을 사실 지울 수 없어요.





캔디: 그리고 전 또 고민이 되는 것은요. 내가 이 레즈비언과 연애를 하는 것은 그럼 바이의 연애인가 레즈비언의 연애인가, 레즈비언의 연애와 바이로서 여자를 만나는 연애는 사실 뭐가 다른 게 있나. 어떤 다른 걸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아니, 그리고 내가 하는 이 행위들은 레즈비언 행위라고 해야 되는 건가 아니면 바이 행위라고 해야 되는 건가? 사실 이 두 가지가 뭐가 다른가? 뭐가 다른지… 레즈비언 대신 바이섹슈얼이라고 하면 어떤 다른 걸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난 이렇게 너희랑 달라, 여자를 사귀지만 난 바이야”라고 말할 때 사실 어떤 외형으로 나타나는 근거가 있기는 한 걸까? 사실 근거나 그런 건 전혀 없고, 내 마음이 그런 거랑 내 생각이 그런 거 말고는 어떤 걸 어떻게 설명해서 소위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 바이섹슈얼이라는 근거나 행태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라고 생각하면, 난 또 잘 모르겠는 거죠. 세상 모든 것데 대해 의문만 늘어나고. 사람들이 ‘네가 레즈비언 연애를 하고 있다’라고 하면 사실 뭐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닌데. 난 바이섹슈얼이야 하고 말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뭔가 이게 일관성이 있는 대답인가? 그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데 뭔가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근데 (난) 바이섹슈얼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연애를 통해서 설명이 되기도 하고, 근데 연애를 통해서 전혀 설명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한지라, 그러면 우리는 뭘 가지고 연애와 바이를 설명해야 되는 거지? [웃음]


주누: 아까 이브리가 언급했던 것처럼 남성과 사귀든 여성과 사귀든, 아무도 안 사귀고 있으니까 지금 현재로서는 바이이다 하고 말하는 그 서사처럼, 그 경험은 바이가 마치 중간 정착지, 임시 거처, 그런 식으로 설명된 부분도 있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연애 상황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을 하는 거잖아요, ‘현재 연애를 하지 않고 있음’이라는. 어떤 연애를 했을 때는 또 그걸로 다시 설명을 하고.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나중에 레즈비언인 여성과 만나서 연애를 하면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설명을 했을 텐데, 그러면 그 서사에 따랐을 때엔 분명히 자기 연애를 통해서 설명을 해요. 그런데 그건 괜찮은데 바이를 설명할 때는 연애로만 설명을 해야 하는 거 같은 구조인 거고. 근데 그거에 대해선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데, 바이의 정체성은 연애로만 설명이 되어야 되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성적 지향의 정체성과는 굉장히 모순되게 공존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연애 경험에 기반한 정체화 설명에 대해서 거부하는 고정되고 본원적인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외도했다가 돌아왔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봤을 때에는 이것에 대해 연애가 아닌 다른 걸로 설명을 할 수 있다라는 그리고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바이라고 하는 좀 더 확실한 근거를 대라고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때때로 자기들도 그러면서, 때때로 자신들도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도 계속 그런 얘기를 한다는 거죠. 나도 내 성별과 내 파트너 혹은 내가 끌리는 사람의 성별, 혹은 나한테 끌리는 사람의 성별을 가지고 이걸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하는, 되게 도식적인 무언가의 선을 그리면 ‘이게 바이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이거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내려가면 정말 아무 차이가 없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굳이 남들한테 설명을 할 때에는 사실, ‘내가 바이여서 혹은 내가 폴리아모리라서’ 내 연애의 독특한 점이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내 정체성을 설명하려고 내 연애에서 되게 이상한 특이점들을 한 두 가지 설명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연애의 독특함을 과하게, 과장되게 얘기하지 않으면 이해 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거기도 하고요.


캔디: 그리고 아까 이브리가 본 글에서도 그랬지만, 어떤 사람들의 경우엔 이런 중간자적 위치에 있을 때를 자기를 바이로 설명하기도 해요. 그런데 그것도 바이가 맞고요. 어떤 사람들은 “옛날에 나는 바이였지만 더 이상 바이가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제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요. 남자친구랑 만나서 5~6년을 그렇게 사랑하더니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면 자기는 레즈비언이라고 얘기하는 친구죠.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본인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하니. 자신의 정체성을 그렇게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고. 만일 누가 “넌 지금 남자친구 만나냐?”라고 하면, 난 지금 남자친구 안 만나고 여자친구 만나니까. “그러면 넌 앞으로 남자친구를 만날 거냐?” 라고 물으면 난 지금 딱히 남자친구를 만날 생각이 있는 건 아닌데. “그럼 네가 왜 바이냐?”라고 물으면 나는 내 과거의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하지만, 또 다른 바이들은 안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니. 그러니까 이 ‘바이의 정의’ [웃음] 옛날에는 설명할 때 사람마다 바이의 정의는 굉장히 다르다고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사람마다 다르니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이 점점… 바이와 관련되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아니라, [웃음] 그게 아니라 고민이 많아진다고요. 제 애인은 (내가) 바이이든 뭐든 아무 상관도 없던데. 내 애인에게 내 정체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내 애인에게 가장 중요한 내 정체성은 여자라는 거야. 내가 레즈비언이든 바이이든 그건 상관없었어요. 걘 레즈비언이니까. 그 애에게 중요한 건 상대가 여자라는 거예요. 어떤 여자든 여자인 게 제일 중요한 거였던 거지. 다들 애인들이 여러분이 바이인 걸 상관없어 했나요?


이브리: 그런 사람도 있었고 아닌 사람도 있었죠. 사실 예전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요. 내가 사귀는 사람도 바이이면 나를 더 잘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죠. [모두 웃음]


캔디: 어쨌든, 연애와 전혀 생각 없이 내가 바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연애와 상관은 없더라고요. 제 결론은 그래요.


주누 : 이전의 연애 경험으로 인해 내가 바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자신이 없어질 때가 있어요. 바이로서 무엇을 이야기 해달라는 제안을 받을 때, 솔직히 자신이 없거든요. 그쪽에서 원하는 바이 남성은 남성도 여성도 만나본 사람이라 여기고 있을텐데 나는 그 틀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요.

이브리: 바이섹슈얼로서 뭔가 이야기 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 그쪽에서 원하는 사람이 어떤 바이섹슈얼인지 주누도 모르지 않아요? 물어봤나요?


주누 : 그런 편견이 내게도 있는 거죠. 저들은 분명 나에게 여러 성별과 연애해 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나 역할을 해주길 바랄 거라는… 몇 사람에게는 내가 바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내가 끌리는 대상은 ‘비남성인 모든 사람’이에요. 내 안에 남성 혐오가 있고 마초에 대한 혐오가 있어서요. 그런데,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면 그게 무슨 바이냐는 이야기를 듣게 되지 않을까 싶은 거죠. 내가 누구와 사귀고 있느냐를  말했을 때도, 그것은 이성애 연애를 한 것으로 이야기되고 말거든요. 자신 없음과 좀 다르긴 한데, 스스로 검열하게 되는 거죠.


캔디: 난 이런 이야기 듣는 게 좋아요.


주누: 왜요?


캔디: 난 늘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 뻔뻔하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어쨌든 난 매우 구조화된 틀에 잘 맞는,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바이섹슈얼의 전형이라서요. 이 사람 저 사람 (여러 성별을) 다 만나본 나는 바이라고 말하기 좋은 조건이어서 내가 너무 재미가 없는 거죠. 너무 전형적이라 재미가 없어! [웃음]

이브리: 앗! 이것은 혹시 자랑? 과시? [웃음] 바이섹슈얼의 성골이 자리해주셨습니다. [웃음]

캔디: 난 언제부턴가 내가 말하는 것이 너무 사람들 기대에 딱 맞춰지기 때문에 도리어 사람들이 바이를 이해하는 데 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경험을 말하는 게 듣는 사람들의 사고의 스펙트럼이나 상상력을 넓혀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브리: 아니에요. 아까 이야기는 농담이고 캔디 이야기는 늘 좋았어요. 오히려 저는 제가 다른 바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바이로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 때, 바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내 말을 들으면 이게 무슨 헛소리냐 하고 생각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거죠. 특히나 요즘에 와서 내가 바이섹슈얼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슨 무슨 연애를 해봤기 때문도 아니고, 못 해봤기 때문도 아니거든요. 저는 이성애자건 레즈비언이든 게이든 사람의 어떤 정체성을 그가 연애하는 상대에 근거해서 정의해버린다는 자체가 이상하고, 어떤 사람과 연애할지 말지의 여부를 그의 성별, 성별 정체성을 토대로 결정한다는 것 자체에 항의하는 뜻에서 제가 바이섹슈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물론 이성애와 동성애의 사회적 맥락이나 위계가 전혀 다르다는 건 중요하고, 그 지점에 관해서 정말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왜 그러한 현실을 벗어나고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라는 틀 없이는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하는가, 상상력 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어쨌든 모든 인간을 이성애자 동성애자로 나누는 게 누군가에게는 나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를 포함해서 거기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일이기도 하거든요?


캔디: 그런데, 그렇다면 이브리가 바이섹슈얼이라고 하는 이유는 뭐예요? 판섹슈얼(pansexual)도 있고 폴리섹슈얼(polysexual), 옴니섹슈얼(omnisexual)처럼 여러 가지 말이 있지 않나요?


이브리: [논 모노섹슈얼을 일컫는] 여러 가지 말이 있고, 어떤 말로 불러도 저는 크게 상관없어요, 사실 사람들이 그나마 잘 알아듣는 단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이유가 크고요. 전 저를 판섹슈얼이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판섹슈얼이라는 말을 쓰기가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에요. 왜냐하면, 판섹슈얼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 중에서 일부가 ‘바이는 이분법적 성별을 따지고 인식하지만 나는 판이어서 안 따져’ 하는 식으로 계속 바이와 판의 경계를 정해서 못박으려고 하는 경향이 걱정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바이섹슈얼이에요’라고 하면 ‘당신 같은 경우는 젠더퀴어는 못 사귀고 남성 아니면 여성을 사귀는데 남성이나 여성을 만날 때 그가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만나는 거예요. 판섹슈얼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달라요’라는 식으로 구분을 지으려는 시도를 가끔 접해요.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퀴어한가를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자신을 바이섹슈얼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을 덜 퀴어하게, 말하자면 보수적인 혹은 반동적인 사람들이라고 규정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런 움직임에 찬성하지 않고, 그게 좋은 설명 방법이나 전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또 한 가지는, 물론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지만, 바이섹슈얼과 판섹슈얼이라는 말은 영어에서 온 말이고 미국의 바이섹슈얼 활동가들이 그 말을 정의하고 설명하느라 굉장히 오랫동안 노력해 온 역사가 있잖아요? 영미권 바이섹슈얼 운동이 트랜스젠더 운동과 함께 70년대부터 8~90년대를 지나면서 동성애자 중심적인 성소수자 운동에 끊임없이 문제제기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어 온 역사가 있죠. 그 과정에서 퀴어나 트랜스젠더 운동과 연대하려고 시도하면서 바이섹슈얼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이분법에 묶어서 설명하는 것을 계속해서 반대했고요. 바이섹슈얼 운동은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틀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바이라고 해서 남성과 여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정말 지겹게 이야기해왔고 지금도 이야기하고 있죠. 그것을 딱 없는 셈 치고 ‘바이섹슈얼은 남자나 여자와만 사귀는 거고 판섹슈얼은 성별 구분이 없는 거예요’라고 나눠버리면 일면 편리한 면도 있겠지만 글쎄... 저는 과거와 현재의 활동가들에게 미안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들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없는 역사가 되어버리고, 영국이나 미국의 바이섹슈얼 활동가들이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거의 몰려나다시피 하면서 했던 여러 가지 시도들을 지워버리는 데 있어서 바이섹슈얼 자신들까지 일조한다고 생각하면 슬프기 때문에. 안 그래도 LGBT운동의 역사에서 바이섹슈얼인 개인 활동가, 혹은 바이섹슈얼 운동의 기여가 끊임 없이 평가절하되고 지워지고 있는 마당에요.


주누: 저는 바이섹슈얼보다 폴리섹슈얼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해요. 저한테는 폴리아모리라는 말도 중요하기 때문에 폴리-폴리라고 부르는 게 재밌다는 거죠. 폴리섹슈얼이라는 말이 더 옳다는 것이 아니고요. 그리고 누구를 만나게 될 때 긴장감이든 거부감이든 성적인 것을 느꼈는데, 그것을 설명해주는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찾아낸 것이 바이, 폴리였고, 연결되는 게 폴리아모리였어요. 연애하고 나 스스로를 설명하는 건 크게 관련이 없죠. 다시 연애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하자면...


*글-바이모

*이미지 원본 주소-http://heartsonghandicrafts.com/the-patterns/queer-pride-motifs/


*[특집] 시리즈물인데 비정기적인 좌담회 2호: 바이섹슈얼과 연애-3- 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