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4호] 가족?!?2017.03.27 00:16

파란 원 안에 있는 점이 지구다. 그 주위의 흰 선같은 건 별의 집단이다. ⓒ 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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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에 나오는 한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입사시험을 치르던 날이었다. 보이저 1호가 60억광년 밖에서 찍었다는 사진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점처럼 흩뿌려져 선을 이루고 있었다.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궤도 밖의 삶을 용서받지 못하는 자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동경과 선망을 한 몸에 받지만, 동시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궤도를 끝없이 돌아야 한다. 만유인력의 균형에 따라 정해지는 궤도는 별에게 있어 절대적이다. 그만큼 벗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 궤도를 벗어난 별들은 나락으로 떨어지며 붉게 타오르다, 이내 곧 사라진다.

어린 시절 별똥별을 보면 그런 생각을 했다. 별들은 얼마나 무서울까, 저렇게 화르륵 타버리는 다른 별이 무서우니까 다들 얌전히 궤도대로 움직이는 걸 거야, 라고. 별의 움직임이 별의의지와는 상관없다는 걸 배운 뒤로 내게 별은 늘 서글픈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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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아파하던 나는 툭하면 온 몸이 붉게 물드는 꼬맹이였다. 나를 붉게 물들이는 건 엄마의 손에 쥐인 하얀 구두주걱이었다. 엄마가 생각한 궤도에서 벗어날 때면 구두주걱이 나를 덮쳤고, 주걱이 지나가는 곳마다 여린 살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부모님은 내가 ‘정상’으로 크길 바랐다. 아니, 정상적인 범주 안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랐다. 의지라는 것을 갖기도 전에 나는 그렇게 부모님이 만든 궤도 안에 욱여넣어졌다. 편식을 해서도 안 되고, 어리광을 부려도 안뙜으며, 한 번 가르치면 무조건 모든 걸 기억해야 했고, 받아쓰기나 수학경시대회에서는 늘 100점을 받아와야 했다. 무엇보다 늘 ‘정상’적이어야 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있어서 별과 같은 아이였으니까.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을 담고 태어난, 자랑스러운 큰 딸이었으니까. 빛나야만 했고 늘 모범적이어야 했던 게 나였다. 내 어린시절은 구두주걱이, 때로는 주먹과 발길질이 나를 물들이곤 했다.

3

엄마 아빠의 ‘정상’범주에 늘 존재해야만 했고, 또 그렇게 보여왔던 나지만, 사실 나는 부모님이 그어둔 선 밖에 존재하는 아이였다.

중학생으로 올라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여자의 몸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남자로 여긴 건 아니었지만, 남자가 되고 싶어했다. 아니, 언젠간 남자가 될 거라고 믿었다.

일시적으로 유아기 때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내가 바로 그 케이스였다. 소꿉놀이를 할라치면 늘 아빠나 옆집 아저씨 같은 남자 역할을 했었고, 부모님께 사달라고 조르는 장난감은 죄다 플라스틱 칼(햇빛을 받으면 보라색으로 변한다)이나 야구배트, 선가드 경찰수첩같은 것이었다. 남자화장실에 가서 서서 볼일을 보다 바지가 적셔오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다음날 억지로 치마를 입어야 했다. 서럽게 울면서 치마가 싫다고 소리를 질러도 엄마는 구두주걱으로 때려가면서 타이즈를 입히고 치마를 입혔다. 다른 어른들도 내게 ‘계집애가 그러면 못써’로 시작하는 훈계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나는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구두주걱이 필요했고, 나는 빨갛게 부어올랐다.


엄마는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정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다만 그때의 콤플렉스가 남아있는 탓에,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지금도 나는 치마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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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대한 강박이 가득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의외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긍정했다. 부모님의 ‘정상’강요에서도 스스로를 꿋꿋하게 지켜온 셈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의 자기 긍정의 원동력은 부모님이 만들어놓은 ‘정상’과 ‘궤도’에 대한 반발감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당시 나는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직전까지 좋아하던 첫사랑은 남자아이였다. 그리고 때마침 양성애자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확신했다. 왜냐하면 전에 그 남자아이를 생각하듯, 이 여자아이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내 자신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당시 나는 스스로를 ‘양성애자’라고 받아들이는 데 어떤 심리적 저항도 느끼지 않았다. 정상을 강요받으며 자랐음에도, 나는 놀라울 만큼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아이에 대한 스스로의 연심(戀心)에 수긍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아이도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어렴풋하게 눈치챘던 것 같다. 우리 둘은 주말에 가끔 조조영화를 보러갔었는데, 그럴 때면 그 아이는 매표소 직원에게 당시 막 생기기 시작했던 커플석을 달라고 얘기했었다. 가끔은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그 아이가 내 손을 잡기도 했고, 학교에서 단체로 놀이공원에 갔을 때도 롤러코스터에서 그 아이는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누군가와 설레임을 동반한 스킨십을 나누는 건 처음이었다. 그 아이를 보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몸을 가눌 길이 없던 그때, 나는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아이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결심했다는 게 다소 뜬금없이 느껴질 것이다. 지금 나도 뜬금없다고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그때 커밍아웃을 결심했던 배경과 의도는 사실 바람직한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연심을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의 재료로 사용한 것이었다.

‘정상’이어야 할 큰 딸이 ‘정상’이 아닌, 동성을 좋아하는 상황을 부모님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분노와 좌절에 가득 찰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나는 부모님의 ‘정상’을 깨부숴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엔 그저 매에 벌벌 떨기 바빴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점차 부모님에게 반기를 들곤했다. 당시 사춘기의 서막이 열린 시기이기도 했다.

결심이 섰던 어느 날, 나는 빨래를 개고 있는 엄마 옆에 가 비장한 표정으로 앉았다. 엄마는 뭐냐고 물었고, 나는 같이 빨리를 개다가 “엄마, 나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나는 어떤 불호령과 폭력이 나를 덮칠지, 두려운 마음과 조금은 흥분된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봤다. 괴로워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정상’이 무너지는 순간을, 내 손으로 흔드는 광경을 내 눈으로 목격하고 싶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꿀꺽, 침을 삼켰다. 엄마가 물건을 집어던지면 피하기 위해 상체를 잔뜩 긴장하고 엄마의 양손을 예의주시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엄마는 피식하고 웃었다.

“네 때는 그럴 때가 있어. 엄마도 니 나이때 언니들 보면 멋있어서 동경하고 그랬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민망했다. 그리고 허탈했다. 내가 남자아이를 좋아한다고 했을 땐 모두가 날 쿡쿡 찌르면서 놀리기 바빴는데, 그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는데 상대가 여자라고 하니 믿지를 않는다. 나의 착각이라고 한다. 정말 착각인가?

허탈함이 가시자 부정당한 감정에 대한 혼란이 밀려왔다. 나는 그 아이를 좋아한다고 확신했는데, 그게 착각이라고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혼란스러울 새도 없이, 얼마 안 가 내 인생의 첫 ‘썸’은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그 아이에겐 남자친구가 생겼고, 그 아이는 거짓말처럼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쓰라렸다.

실연 아닌 실연에 밤새 한동안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5

“여자랑 성관계를 가져본 적 없잖아. 그런데 어떻게 양성애자라고 단정할 수 있어요?”

엄마에게 두 번째 커밍아웃을 결심했던 건 대학생 때였다. 당시 상담을 받던 상담소 선생님에게 나는 가족을 제외한 첫 커밍아웃을 했다. 하지만 되돌아온 답은 조소섞인 부정이었다. 수치스러웠다.


선생님은 내가 특별해보이기 위해 양성애자를 참칭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 물론 선생님은 그럴 의도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당시 내가 심리적으로 위축됐었기에 그렇게 읽어냈을 가능성이 크다 - 나를 쳐다봤고, 나는 민망하다는 듯 웃고 얼버무리며 상담소를 나왔다.

나름 큰 용기를 갖고 가서 한 말이었기에, 나는 대답을 듣고 알 수 없는 허탈함과 수치심이 뒤범벅된 감정을 느꼈다. 누구한테 얘기한다고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가급적 말하지 않는 게 내 미래를 위해서도 좋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라도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양가적인 감정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는 , 세상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 존재인 걸까.

그냥 나 혼자만의 망상이고, 허세고, 자기과시고, 착각인 걸까.


차라리 분노와 혐오섞인 부정을 들으면 이쪽에서도 거친 기세도 자기긍정을 쏟아낼텐데,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식의 부정에는 전의가 상실됐다. 누가 내 얘기에 진지하게 반응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일시적인 감정"이라던 엄마의 예전 답변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상담선생님과 완전히 같은 맥락의 답변. 하지만 지금의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 엄마는 내가 '어려서' 그런 거라고 그랬는데, 어리지 않은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선생님을 공격할 수 없으니, 공격대상을 엄마로 바꾼 셈이었다. 내게 같은 발언을 했던 엄마를 다시금 뒤흔들겠다는 복수심.


그 무렵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맞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여전히 '정상'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와 사이가 좋아졌지만, 엄마가 '정상'을 얘기할 때면 불퉁해져서 말로 공격하면서 엄마에게 반발감을 표현하곤 했다. 두 번째 커밍아웃도 마찬가지였다.




6

언제인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상담소에 다녀왔던 시점과 비슷한 시기였을 것이다. 엄마와 얘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밑밥을 깔기 위해 어린 시절 얘기를 꺼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엄마에게 무지막지하게 얻어맞던 어린 시절을 얘기였을 것이다. 그런 흐름으로 '엄마 나 사실 지금도 내가 바이섹슈얼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나는 그 날 그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엄마가 꺼낸 이야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게 두가지 얘기를 했었다. 순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린 시절 얘기를 진지하게 꺼내는 내게 엄마가는


“너를 때리면 제대로 클 줄 알았어. 일단 때리고 다그치면 바르게 정상적으로 자랄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잘못 클까봐 너무 무서웠거든. 지금 생각하면 지나쳤던 것 같아”


라는 이야기와


“나는 정말 걱정했었어. 근데 커가면서 ‘아 얘가 여자가 맞구나’하는 게 보이니까 비로소 안심했지”

라는 얘기였다.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면서 내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때 처음들었다. 엄마가 겁을 먹었었다는 것을. 내가 잘못 클까봐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고, 그래서 나를 때렸다는 것을.


엄마의 어깨가 한없이 작아보였다.

'네가 여자라서 비로소 안심했다'는 엄마에게 나는 차마 커밍아웃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7

나는 24살을 넘어가고 나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가 24살이었다. 내가 24살이 되고 나니 비로소 24살이 얼마나 어리고 철이 없는 나이인지 실감이 났다. 이 나이에 품에 간난아기가 안겨있었다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사실 겁을 먹고 있던 건 궤도를 돌아야 했던 내가 아니라, 궤도를 만들어 강요한 엄마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엄마에 대해 가끔 불쑥불쑥 솟아오르던 반발감을 잠재울 수 있었다.


8

<창백한 푸른 점>의 사진 속에서 내가 동경하는 건 별이 아닌 보이저 1호다. 별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의지를 갖고 직선운동을 하는 보이저 1호. 지면을 박차고 나선 에너지로 다른 별들의 궤도를 헤집고 다니며 관찰하고 사진을 찍는 인공위성.

두 번째 커밍아웃을 단념했던 그 날 이후,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 부모님은, 특히 엄마는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걸 모른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나는 여전히 '정상'적인 자식이며, 자랑스러운 큰 딸이다.


아마 내가 세 번째 커밍아웃 시도를 할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뭐 올 수도 있겠지만,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면 밝히지 않고 살아갈 생각이다. 나는 엄마의 궤도를 지켜주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궤도를 벗어나는 게 무서워서 벌벌 떠는 별로 살겠다는 건 아니다. 나는 언제든 직선으로 날아갈 수 있는 인공위성처럼 살아갈 생각이다. 다른 별들의 궤도를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주어진 궤도를 지켜주면서 말이다.


잠깐은 궤도를 돌면서 안심을 시켜드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 뒤늦은 사춘기를 끝낸 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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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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