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웹진: [4호] 가족?!?

[인터뷰] 일본의 동성파트너십 제1호 커플, 코유키&히로코에게 가족을 묻다

“혼자라면 힘들었을 일, 둘이 함께 뛰어넘었기에”

일본 시부야구 동성파트너십 제 1호 커플 히가시 코유키・마스하라 히로코


좌·마스하라 히로코, 우·히가시 코유키  ⓒ 3couleurs 제공


여기 두 번의 결혼식을 올린 커플이 있다. 요즘 세상에 재혼이 뭐 그리 대수겠냐만, 이 커플은 조금 독특하다. 두 번의 결혼 모두 상대가 같았다. 게다가 두 번 다 일본 ‘최초’를 기록한 결혼이었다. 일본의 동성파트너십 취득 제 1호 커플, 히가시 코유키와 마스하라 히로코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일본의 유명 여성가극단에서 남역배우(남자역할을 맡는 여배우)로 활동했던 히가시 코유키씨는 퇴단 후 마스하라 히로코씨와 만나 2013년 디즈니 놀이공원에서 일본 디즈니 최초의 동성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화제가 됐다. 커밍아웃한 남역으로 유명세를 탄 히가시는 이후 방송활동과 기고를 통해 활발하게 LGBT 운동을 이어가다, 2015년 다시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일본의 지자체가 발행하는 동성파트너십 증명서 취득 제 1호 커플이 된 것.


두 번의 ‘최초’를 기록한 것에 대해 “혼자였다면 힘들었겠지만, 둘이 힘을 합했기 때문에 '최초'라는 부담감을 뛰어 넘을 수 있었다”라고 말하는 히가시 코유키. 소감을 묻자 그는 “아직 LGBT가 생소한 일본에서, 자그마한 보탬이라도 된 것 같아 기쁘다”라고 대답했다.


바이모임은 그런 히가시 코유키에게 동성결혼과 '가족'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서면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히가시는 결혼에 대한 부분만큼은 파트너와 함께 답을 적었노라고 밝혔다. 


◆ 디즈니와 시부야, ‘최초’를 기록한 2번의 결혼

Q. 한국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해주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레즈비언으로, 2013년 3월 1일 일본 디즈니시(놀이공원)에서, 일본 디즈니 사상 최초로 동성결혼식을 올렸습니다. 2015년 11월에는 법적 동성혼이 가능하지 않은 일본에서, 지자체가 발행하는 도쿄도 시부야구의 동성파트너십 증명서 취득 제 1호 커플이 됐습니다. 현재는 파트너인 여성, 마스하라 히토코씨와 함께 회사를 경영하면서 LGBT에 대한 강연과 연수를 하고 있습니다"


Q. 파트너십 증명서를 받았던 당시의 기분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여태까지 공적으로나 법적으로 가족이라는 인정을 받지 못했으니까요. 그날 처음으로 가족이 되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창구 직원이 “축하합니다”라고 말해줬죠. 그 순간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Q. 결혼을 결심했던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원래부터 결혼을 의식하고 만나셨던 건가요? 아니면 서로의 존재가 컸습니까?

“일본은 아직 국가차원에서 동성혼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당초에는 결혼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디즈니가 계기가 됐습니다”


두 사람이 디즈니 시에서 결혼을 문의했던 건 장난스런 마음이 컸다고 한다. 우연히 디즈니에 결혼식 이벤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뒤, ‘우리도 가능할까?’라는 생각에 문의를 했던 게 시발점. 디즈니 측은 두 사람에게 ‘가능합니다’라는 답변을 줬다. 


“디즈니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생각했죠 ‘결혼이라는 건 대체 뭘까’하고요. 저희 둘 다 그때부터 결혼을 의식하게 됐던 것 같아요.”


2013년 디즈니시에서 결혼을 올린 두 사람 ⓒ 히가시 코유키 블로그 제공


애당초 선택지에 들어있지 않았던 결혼은 디즈니를 계기로 ‘갑자기’ 두 사람 앞에 등장한다. 동성혼과 마주한 두 사람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성실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뒤 일본 제 1호 동성파트너십 커플이 된 것으로 고민은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여기서 궁금한 것이 있다. 굳이 파트너십을 했어야 했나하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파트너십에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디즈니시에서의 결혼이나, 시부야구에서의 결혼이나 법의 테투리 밖에 위치하는 건 같다. 도대체 어떤 고민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구청의 문을 두드리게 한 것일까. 


그녀는 ‘행정기관’의 힘을 이야기 한다. “디즈니에서 받은 결혼증명서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지만, 기업이 판매하는 증명서와 행정기관에서 발행하는 증명서는 의미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자체가 증명서를 발행하기 시작하면, 기업도 움직이게 되거든요.”


실제로 시부야구에서 증명서가 나온 뒤로, 시부야구 공영주택에 가족입주가 가능해진 것은 물론, 보험회사에서도 생명보험의 수취인으로 파트너를 선정할 수 있게 바뀌었다. 휴대전화의 가족할인, 비행기 마일리지 합산 등 다양한 서비스들도 시부야구의 움직임에 발을 맞췄다. 병원에서 파트너가 보호자로 있을 수 있다는 점도 동성파트너십의 장점으로 꼽힌다. 여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주변으로부터의 인정이다. 


“파트너십을 취득한 이후 가장 큰 변화를 꼽는다면 역시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가족으로 인정받고 있으니까요”


◆ 학대로 얼룩진 어린 시절, 어둠에서 그녀가 깨달은 것은

히가시 코유키는 가족에 대한 고민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해 온 사람이다. 단순히 소수자로서 동성혼을 고민한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가극단을 퇴단하고 난 뒤 어느 날, 자서전을 출간한다. 책의 제목은 <없었던 일로 하고싶지 않은, 친아버지에게 성학대를 받았던 나의 고백>


어린시절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목욕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목욕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 부모와 어린 자녀가 함께 욕조에 들어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초경을 채 시작하지도 않았던 나이에 ‘놀이’는 시작됐다.


그녀의 아버지는 놀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딸과 관계를 맺었다. 한 방송에서 그녀는 “무서웠지만 아버지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해야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과 딸의 ‘목욕놀이’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지방 유력자로서의 체면을 생각해 덮어주기만 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에 끼친 영향이 있냐고 물어보자 히가시는 “물론 있다”라며 “이성애자로서 결혼을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양친이 모두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동시에 그 경험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유복한 환경과 이성애자 부모를 뒀음에도 아픔으로 얼룩진 시간을 보냈던 그녀. 고민 끝에 그녀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건 부모의 성별이나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아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주는 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두 사람은 여느 커플과 마찬가지로 자녀계획을 고민하고 있다. 처음에는 게이커플에게 정자를 제공받아 4명의 부모가 공동육아를 하는 방법을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은 이제 포기했다고 한다. 아이의 양육자가 늘어나면 합의형성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대신 정자제공만 받고 두 사람만 부모가 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희가 생각하는 방법 외에도 양자로서 아이를 받아들이는 형태라던가, 정자제공자의 관계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이너리티가 희망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이너리티는 결혼과 육아에 대해 진지하고, 철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그 고민 속에서 새로운 가족의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 “LGBT의 고민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일본 첫 동성파트너십 커플이 탄생한지도 1년 반 가까지 지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일본 사회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시각이 바뀐 게 있을까. 히가시씨는 가장 큰 변화로 ‘LGBT의 가시화’를 꼽았다. 


“일본은 동성애에 대한 종교적 금기는 없습니다. 대신 LGBT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게 이제까지의 과제였죠. 시부야구에서의 결혼뉴스가 일본 내에서 크게 다뤄지면서 이제는 LGBT가 안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에 사는 젊은 세대에서의 동성혼 제도 찬성비율도 늘어났다. 지자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기업들도 가시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LGBT 강연을 비롯해 관련사업을 하는 히가시의 회사에도 문의가 현격하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뿌리 깊은 편견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파트너십의 남은 과제로 일본 전국 확대를 꼽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목적지로 가기 위한 중간 목표다. 히가시는 “단지 전국확대로만 머물면 이성 커플은 혼인, 동성커플은 파트너십증명서라는 차이가 생기게 됩니다. 때문에 동성혼을 제도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Q. 코유키상에게 지금의 ‘가족’은 어떤 존재입니까? 그리고 코유키상이 바라는 가족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애정과 신뢰에 기초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인간관계입니다”


Q. 한국에는 최근 동성결혼이 사회에서 이슈가 되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본 최초의 파트너로서, 한국 LGBT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LGBT의 사람들에게 소수라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수가 적기 때문에 법률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LGBT를 둘러싼 상황은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고 봅니다. 2017년 도쿄 퍼레이드에도 한국분들도 많이 놀러와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한국의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서면 인터뷰 진행 - 무명
*일한 번역 - 무명
*인터뷰 편집 - 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