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4호] 가족?!?2017.03.27 00:11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 바이섹슈얼한 연애를 말할 공간이 너무나도 없다

도아: 제 주변 바이섹슈얼 맥락을 이해하는 활동가가 없다는 것도 너무 불편한 거예요. 저는 활동을 하고 싶은데 당시 (남자인) 애인이 걸리적거렸던 거죠. 성적지향과 젠더 문제를 꺼내서 뭔가 활동해보고 싶은데도, 남들은 이미 이성애자 맥락에서 나를 묶어보고 있고 그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도 있어요. 이 친구의 성별을 덮어두고 있어야 헸죠. 그런 무력감 속에서 내가 뭔가 결심을 하려 하면 제일 큰 부분이 애인이었던지라, 애인이랑 부딪히기도 싫었고요. 왜냐면 애인은 젠더니 성적지향이니 문제에 관심이 없거든요. 나 혼자 고민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딱 하나잖아요. "넌 왜 이렇게 예민하게 생각해?" 그런 것들에 너무 지친 상태였어요. 아무리 얘기해줘도 모르는 애한테 강요를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설명은 할 수 있는데 그것들이 어느 지점이 지나면 강요가 되어 버리는 거니까 이건 얘한테도 할 짓은 아닌 거죠. 그렇다고 얘한테 할 짓이 아니라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죠. 어떻게 보면 제 욕심인 거지만요.

이런 문제는 내가 사귀었던 사람이 남자였든 여자였든 생겼을 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여자냐 남자냐 떠나서 사귀니까 더 이해를 받고 싶은 마음이 크잖아요. 그런데 그런 얘기가 나오면 과하게 감정 소모가 될 때도 있고, 그 반응에 상처받을까봐 더 말을 안 하게 되는 것도 있었어요. 하지만 맨 처음 제가 가졌던 생각, 난 이성과 연애를 하지만 퀴어 활동 또한 하고 싶다라는 생각, 그러려는 생각이 제지당한 건 그 애인 때문이 아니라 저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먼저 걸림돌이었던 거였죠.

주누: 그 당시에는 어떤 활동을 해보려고 했던 생각이었나요?

도아: 딱히 활동이라 부르니 너무 거창한데, 사람을 만나고 싶고 성적지향과 젠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어요. 그니까 바이섹슈얼로 겪는 이성애에 대해서 같이 논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문제의식이죠. 동성 친구들이나 이성 친구들이 들어주기는 해도 편견에 치우치고, 차기들이 겪어보지 않은 얘기이다 보니까 본인이 아니면 깨닫지 못 하는 얘기를 하면 이해 받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죠. 내가 이전에는 깨닫지 못 했던 문제들을 함께 얘기 할 사람이 필요한데 없으니까요. 겉으로 보기엔 문제가 없는데 계속 답답하고 이상하다는 것만 느끼고 지나갔었죠. 당시 애인과 4년 정도 사귀며 그렇게 지나니까 진짜 못 견디게 답답해졌어요. 그렇다고 그 애인이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저랑 처음 사귈 때도 난 여자 좋아한다는 얘기 듣고도 사귀게 된 거였고요. 근데 막상 밖으로 나가서 내가 이성애자가 아니라고 알리고 싶다는 실천이 안 되는 거예요. 걔가 막는 건 아니었지만, 저 스스로 검열을 하는 거였어요. 그게 문제였죠.

맞닥뜨릴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걔랑 오래 사귀고 친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걔랑 사귀는 저를 보는 거지 저의 정체성을 보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 하나하나 다 처음부터 설명해줘야 되고, 그런데 주변에 소문이 퍼지면서 또 너무 피곤하게 되고, 다시 설명하기 위해 뭔가 얘기를 꺼내면 다시 와전되서 그 얘기를 꺼낸 거 자체의 핵심에는 못 간 채 계속 수습만 해야 될 거 같은 느낌 있잖아요. 사람들이 계속 물어보고 또 설명해줘야 되는 것만 반복하다가 뭔가 하기도 전에 지칠 거라는 걸 이미 알았던 거죠. 이미 4년 동안 연애를 해왔는데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데 갑자기 나서서 "저 사실 이성애자 아니에요" 이래봤자... "근데 너 지금 남자랑 연애하고 있잖아"라는 반문에도 할 말이 없는 거였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답답했던 거 같아요.

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에서 그런 일을 많이 겪다 봤어요. 아는 언니들이랑 바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바의 사장님이 절 보더니 "너 레즈비언이야?"라고 묻는 거 있죠. 다른 선택지를 안 주는 거죠. 거기서 뭐라 그러겠어요? "네"라고 해야 되는 장소인데요. 그런 데서 오는 그런 불쾌함은 그 남자 애인랑 사귈 때 나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 할 때의 불쾌감이랑 비슷한 맥락이에요. 누구를 사귀든 내가 보이고 싶은 걸 말로 해줘야 하는 괴로움이었죠. 나랑은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억지로 이 판에 남으려고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언니들을 막 만나고 다녔는데도 오히려 더 외로운 거예요. 분명 나는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 있는 건데도 외롭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곳에서는 멀어지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남자랑 연애를 시작한 후로는 말을 더 못 하겠는 상황이 되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쪽엔 발을 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주누: 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에서 남성과 사귀는 바이섹슈얼 여성에 대해 "배반 때린다, 탈반했다"고 말라는 그 상황이네요.

도아: 네. 남자를 사귀면 이성애자랑 비슷하게 되어버린다는 그런 생각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나는 바이섹슈얼이며 여자를 좀 더 좋아한다고 느낀 적이 되게 많았어요. 남자를 사귀면서도요. 남이 보면 남녀 커플인데, 이게 정말 일반적인 커플이 아니고 나는 여성을 좋아하고, 나 스스로가 마초적이기도 하고... 내 태도들이 일반 같지 않으면서 내가 많이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연애할 때 이성애 커플로 접근해서 보면, 오히려 제가 남성적인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그런데 또 한편, 그 관계는 남성 대 남성으로 좋아하는 건 절대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의 여자친구로, 여자인 성별의 애인으로만 보여지는 것도 싫은 거였지요.

주누: 다른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이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구분하여 끌리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비슷한 시각으로 본인 스스로를 보는 거 같네요. 그 관계 안에서 나 자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구분을 하려 하지 않는...

도아: 맞아요. 그래서 이런 건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얘기하기도 좀 애매해요. 차라리 내가 부치라면 부치라고 말하든가 펨이면 펨이라고 말하든가 했겠죠. 근데 그쪽 사람들은 머리부터 먼저 얘기하잖아요. [웃음] 머리가 길고 그러면 뭐고, 머리가 짧은데 화장하는 나 같은 애는 뭐고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나는 딱히 여성스럽지도 않고... 그래서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절 오히려 일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지점이 무척 속상한 거죠.


I NEED 대나무숲


그렇게 계속 바깥에서만 떠돌다보니까 어디 속하고 싶은 욕구가 점점 더 강해지거든요. 그런데도 안정받음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난 나름 티 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 일반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커뮤니티에서 만난 주위 사람들은 나를 일반 같다고 얘기를 하니까,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웃음] 펨도 아니고, 부치도 아니에요. 게다가 무성애에 가깝다고 말을 하고 다니기까지 하는데, 무성애라고 말을 하면 레즈비언 분들은 또 오해를 더 하곤 하잖아요.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나의 맥락을 간단히 정리해서 보여줄 수 있게끔 간략한 글귀로 얘기해야 하는데, 저는 게 불가능한 거였죠. 차라리 엄청 길게 아예 소설을 집필해서 "이런 모습이 저예요~"라고 드리는 게 더 낫지 않나 싶단 생각까지 해본 적 있어요. [웃음] 하다 하다 절 설명하기를 포기해버리는 시점이 있어요.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정확히 얘기할 수 있는 스킬은 여전히 없는 거죠.


◆ 드로잉 바이섹슈얼 & 퀴어 액티비즘

주누: 아까 활동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면, 도아 님은 활동의 수단으로서 그림이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한 거지요?

도아: 네. 맞아요. 원래는 계속 제 이야기를 가지고 그려왔거든요. 상실, 외로움, 그리고 속하고 싶은데 속하지 못 한 채 계속 혼자서 싸우면서 겉돌게 되며 갖는 그런 감정들이 되게 많았거든요. 그런 기억이나 감정을 끄집어내서 어떻게든 그려내는 살풀이 같은 거죠. 그런 걸 풀어내는 작업을 했었고요. 그리고 '이게 정말 내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나의 이야기구나'라고 느껴졌던 거죠. 내가 여유가 없어서 감정 컨트롤이 엉망이 될 때에도 그러다가도 그림을 그리면 좀 더 괜찮아지고요. 그래서 그 후로 그림을 계속 그려야겠다 싶어서 쭉 그렸죠.

그런데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유화보다 드로잉이 더 맞아요. 유화는 큰 그림이라서 뭔가 설계를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드로잉은 그런 게 없어요. 흑백으로 그린 것들은 한 시간이면 나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그냥 앉아서 생각을 하다가 그리면 그게 전부예요. 그렇게 드로잉을 해서 친구들한테 보여줬을 때, 그림 속에 있는 걸 보면서 친구들이 위안을 얻는 걸 알게 된 거죠.

물론 호불호가 갈리더라고요. 그니까 "엄청 좋다"라는 친구가 있고 아니면 "잘 모르겠다, 이게 뭐냐 "라고 하기도 하고. 두 가지 부류가 다 있어요. 근데 잘 그렸다는 말은 들으면 좋은 거긴 하지만 그게 목표가 이니에요. 오히려 정말 좋다라고 들었을 때 더 뿌듯함이 있어요. '내가 이 사람한테 위로가 돼줬구나, 도움이 됐구나.' 그러면서 계속 그리다 보면 이야기들이 계속 나와요. 많이 그리면 그릴 수록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그림들이 그려지고요.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섹슈얼한 것들이 많이 올라오죠.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정리하다 보니 작년에 그렸던 드로잉은 거의 다 그런 감정 기반에 기댄 그런 그림들이었어요.

예전에 제가 회화 전공 학부를 다닐 때 정말 듣기 싫었던 말 중 하나가 "여자인데 여기에 털이 있으면 어떡해? 여자 같이 그려야지. 그리고 이건 남자잖아. 근데 왜 여자처럼 그려?"라는 말이었어요. 그 말이 너무너무 싫었어요. 내가 왜 이 말이 싫었을까 생각해보니까 나는 여자로도 남자로도 이걸 보이기 싫었던 거였죠. 애매모호하게 보일 수 있는 형태를 보이고 싶은 거구나라고 처음 생각을 했었거든요. 물론 사람을 그리다보면 젠더가 아예 안 나타날 수는 없거든요. 그래도 이 경계를 무너뜨려 그리고 싶고, 양쪽의 성별을 대놓고  드러나 보이는 그림을 그린 적은 없었어요. 아니면 제 그림에는 여자이긴 하지만 다 목이 잘려있거나 어디가 없거나 얼굴이 없는 식이죠. 얼굴을 그리는 방식의 장단점이 있고 얼굴이 없는 방식의 장단점이 있거든요. 또, 앞모습은 취한 포즈를 보고 성별을 드러내야 되잖아요. 그래서 뒷모습의 경우엔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있고, 그냥 앉아만 있어도 그 사람의 느낌이 느껴지기도 하고 해서, 저는 뒷모습을 주로 그렸어요. 앞모습을 그리는 것에의 부담감도 있고요. 앞모습은 그 사람의 이목구비를 온전히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거죠. 반면에  뒷모습이나 얼굴이 없는 식은 그냥 온전히 이 사람의 형태나 이 사람이 원하는 거, 그 느낌 자체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좋았던 거 같아요. 디테일을 만드는 것보다 디테일을 무너뜨리는 방식이 나에게 더 맞고요. 그래서 성별도 그렇게 그리려고 하고 있지요.


설마 이런 뒷모습??

도아: 근데 최근에 작업을 하면서 한 번 더 자기 검열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어요. 이번에 퀴어문화축제의 일환으로 전시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건데, 제가 드로잉을 하면서 이성애로 보일 법한 걸 지우는 검열을 하는 거예요. 말했다시피, 동성애적 그림들만 퀴어판에 통하고, "우리는 동성애 그림을 그려, 우리는 동성애를 이슈로 할 거야"라고 얘기를 하는 것 같은 그림들만 많잖아요. 근데 그것도 저는 불편했어요. 분명히 그것들이 가시화되어야 하는 것도 맞긴 한데, '이성애적 그림 사이에 동성애적 그림이 있는 것 마냥 동성애적 그림 사이에 이성애적인 그림이 있으면 똑같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근데 그런 그림이 있으면 바이섹슈얼로 생각하기도 전에 이성애라고 볼 수도 있을 거 아니에요? 특히나 모르는 제 3자가 봤을 땐요.

물론 내가 이성애로 보여지는 게 싫다고 의도적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그린 게 아닌데도, 특정한 구도로만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거였죠. 레즈비언 판에서도 그렇고, 바이섹슈얼 여성이지만 레즈비언으로 간주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처럼, 내가 그리는 그림에도 그런 강박이 있는 거예요. 전시를 기획하면서 "넌 왜 그걸 굳이 빼려고 하냐, 그것도 그냥 기록하라"는 코멘트를 듣고 나서 깨달았죠. "아, 이런 걸 기록해도 괜찮은 거였구나, 이거 이상한 게 아니구나, 외면 받을 게 아니구나"를 깨달았죠. 이 상태로 존재해도 남한테 보여질 수 있는 거란 걸 새삼 깨달았던 거죠.

그냥 이성애적으로 보이는 그림들도 이상하지 않은, 그렇다고 해서 이성애를 표현하겠다는 것도 아니에요. 경계를 무너뜨리는 걸 좀 만들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었죠. 성별이 나오긴 하지만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퀴어스러움이 녹아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를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게... 너무 보여주는 식으로 상품화하는 게 아니라,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그냥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림들을 그리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에 작업을 할 때 주변을 인터뷰했고, 이성애자를 비롯해서 바이섹슈얼, 래즈비언들의 이야기들을 들어서 그려봤어요. 원래는 나 자신의 이야기만 그리는데, 이번에는 인터뷰를 하고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보는, 좀 색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해봤지요. 재미있는 작업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볼 생각이에요.



*인터뷰 참여 - 도아, 주누

*녹취 및 작성 - 주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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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