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4호] 가족?!?2017.03.27 00:10

* 2016년 9월, 바이모임으로 "바이섹슈얼의 정체성과 감정을 드로잉으로 그리는 워크숍을 기획하는데, 바이모임도 함께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더랬다. "응? 드로잉? 바이를? 뭐를 어쩐다고??"

이런 기발하고 신기한(?) 제안을 해온 사람이 대체 누구야? 이런 캐릭터는 역으로 우리가 인터뷰를 해보자...란 마음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역제안을 해봤다. 그리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날 종로 한 모퉁이로, 그림에는 완전 문외한인 주누가 도아를 만나러 나갔다.


◆ 화가 도아

주누: 미술을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도아: 저는 중학교 때부터 이쪽 일을 하긴 했는데, 원래 미술이 아니고 애니메이션, 만화를 했었어요. 당시엔 제가 만화를 그리는 실력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서양화학과를 가면 작업실 있고 해서 택했죠. 만화 그리는 건 혼자 그리면 되고 작업실만 확보되면 내 작업만 그냥 꾸준히 하면 되는 거라 생각했고요. 그렇게 회화과를 갔는데 생각보다 전공이 잘 맞는 거예요. 만화를 그릴 때는 이만큼 밖에 실력이 안 나오는데 회화 때는 더 많이 나오니까 되게 기분이 너무 이상했어요. 한 것보다 더 얻은 게 많았었죠. 주위에서도 막 더 좋은 얘기를 해주고요. 그리고 화화라는 영역도 생각보다 딱딱하진 않았어요. 저 역시 약간 선입견 같은 걸 갖고 있었거든요. 혼자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가 많고 드러내고 싶은 이야기가 확실한 쪽이 만화라고 봤죠. 회화도 그렇긴 한데 그때 당시에는 몰랐어요.

저는 형태 없는 것들을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만화랑 안 맞았던 건데 만화를 하고 있었던 거였죠. 제 그림은 뭐랄까, 번지는 수체화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화화를 하다 보니 '형태를 별로 그리고 싶지 않았구나'라고 깨달았어요. 제 그림에는 형태가 별로 없어요. 형태보다는 색 위주이죠.

주누: 아하. 색감을 되게 강하게 쓰시는 거네요. 얼굴은 안 그렸네요.

도아: 아 네. 얼굴 그리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 앞으로도 계속 얼굴은 없을 예정. 뒷모습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주누: 사람의 형체 같은 걸 일부러 안 그리시는 건가요?

도아: 네, 사람의 신체, 특히 절단된 신체를 좋아해요. 그렇다고 막 진짜로 자르는 건 아니고요. 그리고 이번 퀴어문화축제 때 엽서로 만들었던 드로잉도 보시면 얼굴은 없어요. 그것도 되게 재밌게 그렸어요. 다른 분들 에피소드를 듣고 떠오른 영감을 받아서 그린 거라 되게 좋았어요.


2016년 제17회 퀴어문화축제 기념 엽서에는

여러 작가들의 그림과 함께 도아의 드로잉이 수록되어 있다



◆ 나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비혼?!

주누: "바이섹슈얼이면 넌 결혼할 수 있겠네."라는 말을 주변에서 한다거나 하잖아요.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도 그렇고요.

도아: 물론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은 되게 중요한 거죠. 근데 그런 논의의 시대가 지났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니까 10년 전쯤만 해도 동성 간 연애가 자연스럽다 아니다, 불법이다 합법이다 이런 얘기를 답답하게 하고 있을 때였잖아요. 지금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한 발 더 내딛는 시대겠죠. 해도 되냐 안 해도 되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되냐의 문제인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말하는 권리는 법적인 권리 유무가 아니라, 선택지의 다양함과 그런 것들에 대한 거예요. 커뮤니티에서 얘기하는 것도 확장하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경계에 부딪히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예요.

한국은 아직은 아직 동성결혼 법제화가 안 되어 있어서 그것에 대해서 고군분투하는데, 그것은 중요한 사안 맞죠. 근데 동성결혼이 돼도 그걸로 끝난 게 아니잖아요. 또한 결혼이라는 선택지가 꼭 아닐 수도 있는데도요. 결혼에 찬성하는 분들도 많지만 비혼으로 살아가는 분도 많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인지 동성결혼 법제화는 이루어져야 되는 것은 맞는데 저랑은 되게 멀다고 생각해요. 내 주위에서 동성결혼 해서 산다면 되게 좋을 거 같은데, 내가 선택할 것은 다른 선택지일 거 같은 거죠. 비혼이라든지 동거라든지 그 사이에 있다든지... 저 같은 선택지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도 무시를 못 한다고 보거든요. 그니까 선택지라는 게 "이거 하나 우선 뚫어놓고 다음 거 하자"가 아니라 같이 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 권리 하나만 생기고 말고 보다는 그것을 같이 이뤄갈 수 있는 힘이나 풍토를 얘기하고 싶어요.

제가 비혼이 된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되게 어렸을 때부터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어머니가 시집살이를 좀 오래 하셨거든요. 항상 기억나는 게 인생 하소연을 하고 있는 어머니예요. 근데 그런 것들이 지겨운 거죠. 그래서 처음에는 '엄마처럼 안 살 거야'라는 마인드로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그런 것들이 정체성을 깨닫고 서로가 연결되었던 거죠. 중고등학교 때는 내가 연애를 당당하게 얘기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그 당시 좋아했던 애랑은 결혼 못 하겠구나라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을 했으니 나는 결혼을 안 하겠구나 생각을 하게 되고요. 나중에 남자친구를 사귀면서도 결혼 생각은 안 들었어요.

주누: 그 두 경우가 왜 달랐을까요?

도아: 첫 번째 여자친구와는 결혼 제도 자체에 들어가보고 싶었던 것보단 첫사랑이었고, 그땐 나름 힘들 시기였으니까 마냥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엄청 컸던 거죠. 근데 그게 지켜줘야겠다 식의 마음이었던 거고요. 남자친구와의 경우에는 그런 생각은 별로 안 들었죠. 남자친구는 제가 지켜줘야 될 존재도 아니었고. 근데 또 한편으론 개인적인 성격 때문이기도 해요. 저는 제도에 얽매이는 자체를 싫어한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도 안에서 여자들이 덮어둬야 되는 것들이 너무 싫은 거예요. '내가 이걸 왜 감춰야 되는데?'란 생각이 드는 거죠. 저처럼 미술 하는 친구들이 성격이 좀 센 편이랄까요. 그래서 그래선지 제 주변엔 비혼인 애들이 꽤 있어요. 제 친구들 거의 다 일반인데도 비혼인 거죠. 근데 연애나 결혼을 아예 안 하겠다기보단 '지금 상태에서 누구 누굴 책임져?' 식의 생각인 거죠. 자기의 일이 더 중요한 친구들이라서 외롭지가 않은 것도 있고요. 아직까진 제 주위에서 결혼한 친구가 하나도 없기도 하고요.

주누: 주변 친구들에게 도아 님을 비혼이라고 밝힌 적은 있나요?

도아: "나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라고 공식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는데, 근데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되어버렸어요. 친한 친구들은 다들 그런 얘기를 안 하는 편이었고, 그냥 자연스럽게. 연애 얘기는 하지만 결혼 이야기는 안 해요. 워낙 제 주변 친구들도 인생에 고충이 있다 보니 결혼 생각할 여유가 없는 그런 이유도 크고요. 근데 물론 나중에 결혼할 수 있는 친구들은 있겠는데, '결혼 제도에 편입되어야 돼' 식의 생각은 아니에요. '살다 보면 언젠가 하겠지, 하지만 나는 내 걸 내어주지 않을 거야.' 그런 마인드랄까? 내 걸 내어주지 않는다고 얘기하니까 되게 이기적인 느낌이네요. [웃음].

주누: 비혼이라고 밝히면 주변에서 약간 꺼리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나 보아요?

도아: 제 주변엔 그렇게 반응하는 친구들은 없어요. 그리고 부모님도 결혼 안 할 거라 하면 그냥 아무 말 안 하시고요. 결혼 얘기를 안 한다는 건 유일한 저희 집안의 장점이에요,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어요. 친척들 포함해서 집에서 저는 나름 엘리트 - 사실 아니지만요 - 취급을 받아요. 예를 들어, 작은 엄마가 "너는 연애 안 해?" 이런 식으로 물어보면 엄마가 선을 긋고 "얜 공부하고 그림 그리고 있고 다른 일 할 텐데 무슨 연애냐!" 딱 끊으세요. 뭐랄까, 제게 투자한 걸 집안을 위해서 빼와야 하는데 여기서 옆으로 세면 안 된다는 류의 느낌이죠. 그리고 어머니는 스트레스 받으면 풀 데가 저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저를 시집 보내야겠다가 아니라, 아직 붙잡고 있어야 된다는 쪽인 이유도도 있는 거예요. 이런 저런 일들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생각 자체를 안 하게 된 것들이 있어요. 뭐, 어떻게 보면 답답한 상황이긴 한데, 굳이 집에서도 귀찮게 하지 않으니 일단 그런 집안 사정까지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하는 게 마음이 편하니까요. 게다가 친척들도 제 외모를 보면 뭐라 딱 말하지 못 한다고 해야 하나.

주누: 본인 외모가 어떠신데요? [웃음]

도아: 좀 세다고 해야 하나? 고분고분 말을 듣고 이런 게 아니니까. 저는 친척들이 얘기를 하면, 스트레스 받는 게 아니라 "어디 올테면 와봐. 나도 할 말 많으니 기다리고 있다" 이러면서 이렇게 마주 쏴댈 장전을 하고요. 제가 성격이 나쁜 거 같네요, 네. [웃음]

저는 친구들이랑 주위에는 다 커밍아웃을 했거든요. 일터에서도 다 오픈이고요. 그런데 부모님만 모르고 계세요. 부모님한테 굳이 숨기려고 그런 건 아니고요. 어쩌면 이미 아는데도 신경을 안 쓰는 걸 수도 있어요. 이건 좀 어두운 얘기일 수 있는데, 제가 어렸을 때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어요. 근데 그걸 성폭행이라고 생각을 못 하고 지나다가 '아, 이게 성폭행이구나'를 나중에 깨달았죠. 그냥 그렇게 덮어두고 있었는데, 고3 때 감정 혼란의 시기에 그 일들이 끄집어내게 되면서 일기에 쓰고 그랬죠. 거기엔 부모님 욕도 쓰고요. 어머니가 그 일기장을 제가 고3 수능 볼 때 읽으신 거예요. 근데 집안 사람들이 나를 1도 신경 안 쓰는구나 느꼈던 점은, 동성애 얘기가 나오거나 성폭행 얘기가 나오거나 하면 (일기에 써 있었던 80%가 그 두 얘기였거든요.) 보통 "많이 힘드냐?"라거나 "네가 정말 여자가 좋아서 만나는 거냐?" 등을 물어볼 텐데, 엄마는 자기 욕한 것만 보고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래?" 하면서 소리지르면서 울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밖에 나가봐라. 다 너를 부끄러워 하지"라는 식으로 저의 성폭행 피해 얘기를 하면서 "우리 집안이 이렇게 된 것도 네가 얘기를 안 하고 그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 너 때문이다"라는 거 있죠. 그 뒤로 집안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접었어요. 지금은 트러블이 없기는 한데 그건 표면적인 트러블이 없는 거고, 그냥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느꼈거든요. 뭘 아는데 그냥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지 아니면 정말 전혀 모르는 건지... 그냥 저에 대해 신경 자체를 안 쓰는 거 같은 거죠.

그래서 굳이 가족에게 커밍아웃 할 건지의 문제가 좀 애매해진 거예요. 뭐랄까, 커밍아웃은 했다고 하기도 뭐하고 안 했다고 하기도 뭐한 시점이에요. 지금 뭔가 되게 애매하단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뭘 숨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모님이 "결혼해라, 남자 왜 안 만나" 그렇게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어떻게 보면 남들보다 편안한 시점에 있긴 해요. 결혼 압박이 없고 뭔가 그런 척은 한 적은 없던 거 같아요. 그냥 동성 연애건 이성 연애건 연애하는 거 자체를 엄청 싫어하는 거 같더라고요. 부모님이 보기에는 소위 그냥 딴짓 한다는 느낌이죠. 근데 이게 절 아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동성애니 이성애니 떠나서 그냥 연애 자체를 한다는 것만으로 집안이 무너질 집이에요. 오히려 "나는 바이섹슈얼인데 비혼이다"라고 하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연애를 한다고 그러면 집안이 뒤집어질 이상한 집인 거죠. 그래서 커밍아웃을 제대로 할 때는 제대로 집안을 뒤집어놓고 싶을 때 하려고요. [웃음]


연애 방식 1. 나는 바이인 에이섹슈얼?!

주누: 큰일 났네요. 스스로에 대한 묘사가 성격 나쁘고 자기 것만 챙겨 이기적인 사람인데요? [웃음]

도아: 그래서 제가 연애를 안 하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너무 제 성격을 잘 아니까 못 하겠는 거죠. 저도 저 같은 애인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게 싫을 거 같거든요. 너무 연애할 생각이 안 들다 보니까 나는 에이섹슈얼인가란 고민도 하긴 했어요. 되게 혼란스러운 때였죠. 바이섹슈얼에서 팬섹슈얼로 정체화를 하고 있는 시기이잖아요. 근데 다른 바이섹슈얼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접점 중에 뭔가가 비어있는 게 있었어요. 그리고 보통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성적인 이미지를 보거나 끌리는 것들을 저는 별로 잘 못 느끼는 거죠. 물론 제가 좋아하는 포인트는 있긴 한데, 이게 여성적으로든 남성적으로든 섹스 어필되는 성적인 걸 잘 못 느끼는 거였어요. 성적으로 사람의 무언가에 빠지는 시점이 정말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 완전히는 아니지만, 에이섹슈얼적인 모습도 조금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죠. 근데 제가 과거에 했던 짓들을 돌이켜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주누: 에이섹슈얼이란 단어를 쓰신 게 단지 현재 상황 상 난 연애에 관심 없어 정도인 건지, 아니면 다른 고민이 있으셨던 건지요?

도아: 그니까 이성/동성 다 성적 대상으로 잘 안 느껴지더라고요. 남들은 누구를 되게 좋아하고 예쁘다 하고 성적 매력을 느끼고 이러는데...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미지나 짤 같은 거에라도 느끼는데... 근데 저는 좀 아닌 거죠. 분명히 사람을 좋아할 때엔 집착적으로 좋아하긴 하는데, 이건 잘 모르겠어요. 왜 성적인 끌림이 없을까 잘 모르겠어요.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강하게 드는 생각은 그냥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의 기준이 너무 폭이 너무 좁은 게 아닌가'인데요.


Bisexual on the GREY


주누: 연애할 때 자기 검열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내 안의 에이섹슈얼'과도 관련된 얘기인가요?

도아: 제가 그림을 그리는 입장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릴 때 제 기억에 대해서 되게 많이 그리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많은 기억들을 저장을 해요. 연애에 대한 것도요. 그래서 아직도 그 순간 내가 했던 행동들을 많이 떠올리곤 해요. 근데 그런 것들이 이 사람이 좋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마주치는 순간들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망설이게 되는 것들이 올라오고요. 제가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여자친구한테도 그랬었죠. 전 제 진로에 대해서 저 혼자 결정했어요.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내어주지 않는 거죠. 그런 연애를 하면서 내가 이기적이다라고 느꼈는데, 근데 그 생각을 계속 하는 거죠. '난 어차피 최후엔 내가 생각하는 선택을 할 거야. 어차피 그렇게 했을 거야, 어차피, 어차피, 어차피...'

그리고 고등학교 때 그 연애를 했을 때도 스스로 떳떳하지 못했거든요. 걔를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있어서 더 그렇게 생각했고요. 저는 그 친구한테 마음을 못 드러내는 그런 거 있잖아요. 내가 많이 부족하니까 여기서 화낼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 근데 그게 저는 그때 동성 간 연애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남자애를 사귀어도 뭔가 떳떳하지 못한 거예요. 그 떳떳하지 못하는 게 연애할 때 계속 작용을 한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이 제 애인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고민해요. 그니까 제가 이성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해서 제가 이성애자로 보이기 싫은 거예요. 남자친구 얘기를 할 때 걔랑 이성 연애를 한다는 걸 보여주기가 싫은 거였죠. 그래서 남자친구가 서운했대요. 호칭도 저는 그를 남자친구라고 부르기 너무 싫은 거예요. 이것도 자기 검열일 수 있는데, 내가 남자친구라고 부르는 게 너무 자연스럽게 되면 안 된다라는 강박관념이 있었고, 이성 연애에 편입되기가 너무 싫었던 거죠.

다행히 오랜 친구들은 저를 그렇게는 안 보더라고요. 하지만 제 3자는 그렇게 봤겠죠? 제 맥락을 모르니까요. 저를 알긴 알지만 친하진 않은 이들은 여자친구가 있을 때엔 저에게 연애에 대한 말을 안 꺼내는데, "나 남자친구 사귀어"라 말하면 "진짜 잘 됐다"라면서 연애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는 거였죠. 그게 너무 싫었던 거죠. '나는 분명히 똑같이 연애를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다르지? 왜 이렇게 말이 많아졌지?' "근데 예전에는 네가 남자 사귈 줄은 몰랐어." 이런 반응들 있잖아요. 근데 그것도 뭔가 이상했고요. 그게 나쁜 의도가 아닌 건 아는데, 제 기분이 너무 이상한 거예요. 반응도 사람마다 달랐고요. 한 친구는 저를 이성애자에 가까운 바이섹슈얼로 보고 있는 거고, 다른 한 친구는 동성애자에 가까운 바이섹슈얼로 보기도 하고...


연애 방식 2. 나의 젠더 정체성은 어디쯤에?

주누: 본인의 젠더 위치 혹은 젠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되는 건지 궁금하네요.

도아: 전 퀘스쳐너리 같은 느낌도 있는데요. 사실 여태 깊게 생각을 안 해봤거든요. 바이섹슈얼이나 동성애나 그런 것만 많이 생각을 해왔죠. 최근에 젠더 플루이드, 바이젠더, 팬젠더 등 새로운 말들을 막 보면서, 이런 것들은 한 번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라고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연애했던 그때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서 되게 묘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여자로서도 보이고 싶지 않고 남자로서 보이고 싶지 않은 그런 것이 있었고요. 예쁘게 입고 싶어서 치마를 입는다고 여자처럼 보이고 싶은 건 아니죠. 또 한편으론 나에게서 아저씨스러운 면들도 보이는 거예요. 내가 도움 받는 존재는 아니고 도움 받는 일 자체를 싫어하고, 가부장적으로 뭔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연애의 맥락들이 있었고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남자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거든요. 처음 여자 사귈 때에 여자를 좋아하니 차라리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정도 생각했던 게 다였고, 가정 환경 때문에 자신이 여자인 게 싫다고 생각하는 정도였었죠. "계집애가, 여자애가" 이런 대접 받을 때만 생기는 반항심 정도?

그런 고민 하다 보니, 경계가 너무 모호해지는 거예요. 집안에선 제게 많은 책임을 부과하는데 정작 주는 건 조금밖에 없는 것에도 화가 나고요. 나는 책임지려는 하는데도 "여자는 얌전히 있어"라 들으면 그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근데 이게 나의 젠더 정체성의 영역인지 사실 구분이 잘 안 돼요. 분명한 것은 여자처럼 보여지고 싶지도 않고 남자처럼 보여지고 싶지도 않은 그런 지점은 분명히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는 점이죠. 어렸을 때는 남동생이나 남자들한테 팔씨름 진 게 너무너무 싫고 억울해했었고요. 여자애들이랑은 잘 못 어울려 놀고 남자애들처럼 어울려 놀고 싶은데 그러질 못 하니 너무 부러웠던 거죠. 학창 시절에도 여자끼리의 집단 내에서의 수다니 사생활 터치는 피곤한 것들이었고요. 그것들 때문에 남성 커뮤니티에 대한 부러움으로 향했던 면이 있던 거 같아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별로 없지만요.


NO MORE , NOT HERE, NOT THIS, NOT THERE, NOT THAT,

UNKNOWN IN BETWEEN, NO LESS


주누: 연애할 때 본인에게 부과되는 책임감 같은 건 자기검열로 작동하기도 하는데요. 그런 게 때때로 부담스럽나요?

도아: 저는 이제껏 동성이랑도 이성이랑도 전형적인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웃음] 여튼 그런 느낌들이 있어요. 누군가를 만나고 싶기는 한데, 근데 내 걸 포기할 정도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거죠. 누군가를 만날 때는 시간 할애를 해야 되고, 뭔가 나를 희생하는 게 생기잖아요. 전 제 시간을 쪼개서 상대방한테 맞추는 편이거든요 근데 그렇다고 제가 직장인이 아니니까 내 생각들이나 마음의 여유를 쪼개서 있는 것에 몰빵을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허무해서 더 집착을 하게 되는 거죠. 집안에서의 삶이 피곤하니까 연애로 현실도피를 하는 면도 있죠. 이건 의존인 거잖아요. 그 관계에 집중하고 다른 걸 내팽개친다는 느낌이 들고요. 물론 그 사람이랑은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지만, 정말 오롯이 제 문제로만 봤을 때는 그걸 회피한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죠.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참여 - 도아, 주누

*녹취 및 작성 - 주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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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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