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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4호] 가족?!?

[인터뷰] 비혼주의 페미니스트, 당고를 만나다 -3-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 곤란한 낭만(?)

당고: 그러니까 나는 결혼 안 할 거라고 드러내 놓고 말하고 다니지만 내 앞에서 그걸 비난한 사람은 없었어. 오히려 막, 가식인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어머, 결혼도 안 하는데 연애만 십 몇년, 그거 너무 로맨틱해요."이런 막, (같이 웃음) 말도 안되는 반응은 접했는데.

이브리: 지금 애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너무 로맨틱해요이런 말을 들었어?

당고: . 반대되는 시선들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 연애만 하는 것이 되게 결실이 없는 거고, 뭐 연애의 최종 지점, 골인,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고, 그런 시각이 있는 반면에, 사회에는 여러 가지 모순이 있잖아. 또 결혼에서 되게 계산적이란 걸 본인들도 알고 있어. 아니 본인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아는 거지. 결혼은 제도이며, 경제적인 계약이고 가문끼리의 결합이라는 건 다 아는 거잖아. 그러니까, 연애라는 건 굉장히 순수하고, 오히려 그런 계약적인 측면이 없고, 굉장히 낭만적인, 심지어 무조건 낭만적이기만 한 것이라는 그런 반대되는 시각이 있어. 그러니까 나는 결혼 안하고, 결혼 생각 없이 만난다고 하니까 그럼 뭐야, 결실이 열리지 않는데도,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거구나이런 느낌도 있잖아,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브리: 그러니까 결혼 없는 장기연애를 굉장히 낭만적으로 보는 거야, 사람들이?

당고: 그렇지, 그렇지. 낭만적으로 볼 수 있고 내가 접한 것은 그런 것인 거지. 결혼 없는 연애에 대해 사람들의 상상력이 아주 부재하다는 것은 굉장히 잘 알 수 있어. 왜냐하면 그들에게 연애는 데이트고, 이성애 사회에서 연애는 두 남녀의, 어떤 그냥 러브러브한 그 무엇이더라. 모르겠어, 그 사람들이 섹스까지도 상상을 하는지 안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면 그걸 드러내놓고 얘길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모호하게, 연애는 뭔가 낭만적이고 데이트 비슷한 그런 것만 있는 거야, 이 둘이 살림을 차리고 있는지, 동거를 하고 있는지, 생활을 함께 하는지 그런 걸 생각 안 해. 그런데 또, 이걸 생활이라고 생각하면 되게 결혼이랑 비슷해지는 거다? 결혼은 실생활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하잖아. '어휴, 연애만 백년을 해도 몰라, 결혼 안 해보면 몰라' 그 말에는 결혼을 하면 먹고 자고 씨는 생활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있잖아? 그런데 결혼 안하고 연애만 하는 이들도 그럴 수 있잖아, 동거하고 있으면. 그런 상상력 자체도 부재한 거야. 무슨 상황인지도 알 수도 없는데 연애만 하다니 로맨틱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이브리: 그러면 당고가 오래 연애를 하고 결혼을 안 한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이야기 듣는 상대방은 마치 뭐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서 꾸미고 데이트하고, 영화보고 외식하고 이런 것만 생각하는 거야?

당고: 그렇지. 여전히 애정이 있어서 만나고 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고

이브리: 재미있네. 가식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칭찬을 받은 거잖아. ‘정말 로맨틱하구나이러고.

당고: 아니 그게 그러니까, 칭찬에 알맹이가 없는 거지. 아까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제도를 떠나면 알맹이라는 건 생각 못하는 거지. 무슨 둘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얼마나 만나고 무엇을 나누는지, 두 사람이 생각하는 지향이 뭔지, 사랑이라고 했을 때는 그 사랑에 대한 생각이 뭔지, 그 형태가 뭔지. 밥을 같이 먹는 게 사랑일 수도 있고, 잠을 같이 자는 게 사랑일 수도 있고, 고양이한테 똥 치워 주는 게 사랑일 수도 있고 사랑이 굉장히 여러가지일 수 있는 거잖아. 아니면 같이 여행가고 이런 게 사랑일 수도 있고. 그런데 사랑의 내용에 대한 다양한 상이 없는 거지. 그러니까 연애라고 하면 낭만, 로맨스, 사랑이다. 그런데 또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니까 꼭 해야하는 거고, 통과 의례고 어른이 되는 거고, 애 낳기 위한 거고. 그 정도 관념을 가지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연애와 결혼에 대해 되게 구태의연한 소리만 해. 그런데 그 구태의연한 소리도 은근히 다 달라.

이브리: 그러니까, 주위 사람들이 비혼 상태의 연애 관계를 폄하하는 게 걱정된다는 고민에 대한 당고의 대답은 말하자면 결국 멋대로 하는 이야기들 별로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거지? 그러니까 당고는 전혀 그런 거에 신경을 안쓰고, 그런 걸로 고민하지도 않는다는 것.

당고: , 완전 신경 안 써. 그러니까 난 내 바운더리에 있는 사람만 신경 쓰지. 내 애인이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내가 반대해서 결국은 안 했다, 비혼에 대해 집에서 반대해서 애인이 스트레스 받는다, 이런 건 신경 쓰지. 또 나와 같이 비혼주의를 표방했던 친구들이 결혼을 하는 것도 신경 쓰지. 동지들이 가는 거잖아,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끼고.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일단 안 친한 사람들이 던지는 얘기에는 뭐, 그렇게 딱히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

이브리: 그러면 끝마무리로는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당고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라든지 지향이나 선호나 그런 것을 굳이 말로 설명을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하고 있어?

당고: 설명 안 할 때도 많은데. 사실 지금은 설명 안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고. 옛날에는 회사 사람들한테도 그냥 여자친구 사귀었고 레즈비언이라는 식으로 말했었거든, 사실. 심지어는 지금 애인도 예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만난 사람인데, 그 사람한테 나는 레즈비언이다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저는 다음에 연애하면 여자 사귈 거예요.’ 이렇게 말했었거든. 그래서 내 애인은 처음에 나에 대해서 자기하고 연애할 상대는 아닌가보다, 이렇게 생각했대.

      나는 커밍아웃같은 것도 되게, 욕망이라고 생각하거든? 아니, 커밍아웃도 되게 여러 가지 이유와 목적이 있을 것 같은데,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비혼이 운동이냐, 채식이 운동이냐라고 질문하듯이 커밍아웃이 운동이냐그런 것도 질문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다고 내가 커밍아웃이 운동일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나는 커밍아웃 많이 해봐가지고, 지금 별로 커밍아웃하고 싶다는 욕망이 없거든. ‘나는 페미니스트인데이렇게 안 말하고 싶은 것처럼. , 물론 사안이 있을 땐 말하지. 구체적인 이슈가 있을 때 저는 꼴페미라 이런 거 싫어요.” 이렇게 말하긴 하지만. 그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그냥, 애인이라고 항상 말하지, ‘남자친구가 있는데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정도. 그런데, 사람들이 진짜 애인이라는 함의를 아냐고. 내가 왜 애인이라고 하는지 알겠냐는 거야.

이브리: 그냥 당연히 남자구나라고 생각하겠지.

당고: 남자구나라고 생각 하는데, 그런데 또 반응이 똑같아. , ‘내 애인은이러면 , 애인! 그런 단어 너무 오랜만에 들어봐, 너무 로맨틱해!” 또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같이 웃음). 그러니까 남친’, ‘여친이란 너무 많이 쓰고, 아니면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은 결혼한 사람들이 많은 거야. 그러니까 뭐 남편, 여보, 우리 신랑, 와이프, 집에 있는 그 누구, 그런 말이 더 익숙해. 그런데 애인이라고 하니까 또 되게, 애인이 한자로 풀면 사랑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웃음) , 되게 사랑해서 남자친구를 애인이라고 부르나보다. 이런 느낌인 것 같아.

이브리: 그냥 당고는 성별을 특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건데

당고: 그렇지, 그렇지. 성별을 특정하고 싶지 않아서 하는 건데.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우리 그룹, 내가 친한 그룹에서의 너무 오랜 습관 같은 거지. 성별을 지칭하는, 그러니까 남자친구라는 말이 오히려, 애인이라는 말보다 되게 간지럽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야, 나한테는. 그 말을 안써온 시간이 너무 오래 됐으니까. 그런데 애인이라는 단어를 내가 그런 식으로 써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전혀 다르면 의미는 안드로메다인거고, 아무 소용 없는 거야. 그런 걸 오히려 많이 느끼지.

그러니까 뭐, 내가 커밍아웃을 적극적으로 하진 않지만 좀 친해지면 그런 거에 불쾌감을 느끼고 괜히 서운한 거지. 그러니까 나를 이성애자로 보는 게 싫어, . 내가 비록 지금 남자친구 사귀고 이성의 연인을 사귀고 있다고 나를 그냥 이성애자로 봐? 이런 거(같이 웃음). 그거에 대한 불쾌감이 사실 있는 거지. 나를 알아줬으면. 그러니까 나는 커밍아웃도 인정욕이라고 생각하거든? 약간, 결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길 원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나랑 친한 사람이 그렇게 내 단면만 봐? 남자친구를 사귀는 당고만 봐? 나는 과거에 여자친구도 사귀었어. 나한테는 이런 다른 점도 있어, 라고 친해지면 내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지잖아. 그러면 그런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그럼에도, 내가 뭐 그런 얘기를, 내 히스토리를 읊으면서 내가 옛날에는 누구를 사귀었는데 그 사람이 여자였고,” 이렇게 얘기를 한다고 해서 그들이 내 정체성을 알아들까 싶어. 그러니까 내가 아까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한 것처럼, 난 바이섹슈얼이라고 말하지 않는데, 바이섹슈얼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알아들을지도 모르겠어. 못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고. 아까 애인이라는 단어에 완전 생각지도 못하게 반응한 것처럼, 사실 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지는 몰라. ‘, 과거에 여자 사귀었는데 전향해서 이제 정신차려서 남자 사귀는구나.’ 이렇게 생각할지, 어떻게 생각할지 사실 모르는 거야.

이브리: 그러면 그런 정체성이랄지, 당고의 특성들이 비혼주의자로 살면서 뭔가 상호작용을 해서 도움을 줬다거나 오히려 더 힘들게 했다거나 그런 면이 있어? 아니면 별로 그런 걸 생각 안하고 있어?

당고: 스물 한살에 결혼하고 싶었던 나도 있는 거잖아. 과거에 그런 당고도 있었는데, 결혼을 안 하기로 했던 당고로 변해갔던 첫 번째 계기는 동성 애인을 사귄 거니까, 나는 성적 정체성이랑 되게 밀접하다고 생각해. 내 성 정체성과 비혼이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가 없고, 그 관계는 되게 복잡하다고 생각을 해.

 

◆ 연대와 적대

이브리: 긴 시간 이야기를 하면서 난 너무 좋았는데, 혹시 뭔가 이 얘기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거나 그런 거 있어?

당고: 그건 아닌데, 어쨌든 원래 인터뷰인게 맞긴 한데 나만 이야기를 많이 했잖아. 그러면서 이브리는 약간 상담 모드로, 그렇게 반응이 된 부분도 있는 것 같아. 나는 내가 받았던 질문들에 대한 이브리의 생각이 궁금해.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내가 인터뷰 준비로 받은 사전 질문지에 보면 비혼 페미니스트와 결혼하고 싶은 페미니스트와의 연대를 어떻게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 있는데

결혼에 대한 이슈를 이야기할 때는 비혼 페미니스트들과 기혼 사이에 전선이 그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모든 이슈에 대해 연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이브리: 모두가 연대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른 부분에서 페미니즘이나 지향하는 바가 같다고 해도 결혼 문제에서는 적대할 수도 있다?

당고: 나는 그런 사람들과 연대해서 성공한 경험이 없는 것 같고, 그래서 별로 연대하고 싶어 하지 않아, 솔직히. 나는 기혼 페미니스트들을 되게 천연덕스럽게 저격하기도 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하면서 결혼해서 남자네 제사상 차리고라고 SNS에 쓰거나, 이런 식으로 엄청 저격하는데,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냥 모순되잖아. 엄청 모순되잖아.

이브리: 당고 말을 듣고 보니까, 내가 연대가 뭔지도 모르면서 연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나봐.

당고: 사안이 비슷하고 지향이 비슷해서 같이 협의하고 지향을 만들어가는 게 연대일 텐데, 나는, 글쎄. 기혼 페미니스트들과 비혼 페미니스트들이 그리는 상이 같으면 연대를 하겠지만, 어느 순간 달라지는 갭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고, 갭이 있으면 할 수 없겠지. 그런 가능성이 더 높지.

이브리: 그렇지만, 본인이 기혼이어도 비혼을 긍정하거나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는 거잖아.

당고: 그렇지. 내가 아는 비혼주의자였던 페미니스트들이 딱 그 포지션이기도 해.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 결혼이라는 선을 넘으면서 비혼 쪽에 엄청난 똥을 던지고 가거든? 자기들이 의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면 아이가 생겨서 결혼하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정상가족이 아니면 아이가 행복할 수 없다든지, 그런 메시지를 던지면서 가는 거야. 그런 사람들이 나를 응원한다고 해서 그게 나에 대한 응원? 지지? ? 연대? 그런 게 된다고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내가 못된 것일 수도 있지. 어쨌든 그 사람들의 그런 반응은 내가 비혼을 유지하고 비혼으로서 삶에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는 것과 무관해. 나는 그들의 그런 지지가 필요 없어. 뭐 기혼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비혼 페미니스트로부터 오는 그래 너도 힘들었지, 너도 결혼해서 열심히 싸워이런 지지가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나는 비혼 페미니스트가 무엇을 위해 기혼 페미니스트와 연대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이브리: 비혼 페미니스트와 기혼/미혼 페미니스트 간의 연대는 내가 고민하는 것 문제인 것 같아. 그러다 보니까 당고의 질문지에 나도 모르는 새에 들어가게 되었네. 사실 여기에는 좀 다른 맥락이 있는데.

나는 젊은 레즈비언들 사이에서, 특히 소위 결혼 적령기라고 하는 나이대의 일부 레즈비언들 사이에서 바이섹슈얼을 되게 배척하거나 혐오하는 분위기가 있다면, 그게 많은 부분 결혼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해, 사실은. 결혼하거나 이성 애인을 사귀면 탈반’(*이반(성적소수자) 커뮤니티를 떠남, 이반이 아니라 일반(=비 성적소수자)이 됨)이라고 보는 시선이 분명 있지. 아니면 바이섹슈얼이 결혼을 하면 성욕은 동성과 채우고 결국 결혼해서 이성애 특권에 빌붙어서 이득은 누리고이런 식으로 보는 시선도 없지 않잖아. 특히나 결혼을 하면 이건 완전 떠나가는 것이고, 커뮤니티에서 없어지는 것처럼 되고. 이건 바이섹슈얼 입장에서 당연히 반박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생각이 돼.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내가 결혼하는 바이섹슈얼들을 포함해서, 결혼을 무지무지 좋아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 나는 내가 주거를 누구와 같이 하든지 말든지, 누구와 섹스를 하든지 말든지 그런 걸로 국가에서 차별을 하는데, 그 차별이 제도적으로 당당히 승인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이건 동성 결혼이든 이성 결혼이든 일대일 결혼이든 다자간 결혼이든 마찬가지라고 봐. 몇 사람이든, 어떤 성별이든 누군가와 섹스를 하거나 동거를 해도 되는지 국가에 허락을 받고 그 대가로 국가가 주는 세금이나 의료같은 혜택을 받는게 싫거든. 설령 그 혜택이 사소한 거라고 하더라도. 이건 당고가 앞서 말한 결혼의 가부장적 성격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국가에 사람의 신체와 성과 재생산을 통제할 권한을 부여하는 데 가담하는 실천은 페미니즘적일 수 없다고 봐. 그래서 제도 결혼을 싫어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성간에만 결혼할 수 있는 세상과 동성 간, 이성 간 둘 다 결혼할 수 있는 세상 중에서 고르라면 아주 싫어하고 짜증내면서도 후자를 고를 수는 있겠지. 2인만 결혼할 수 있는 세상과 둘 이상 여러 명이 결혼할 수 있는 세상 중에 고르라면 역시 또 투덜거리면서도 후자를 고를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나는 섹슈얼리티나 재생산을 반드시 중심에 두지 않아도 개인이 함께 살 사람을 고를 수 있고 자유로운 연합으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해. 그런 세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동성결혼 법제화를 주요한 전략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반대하진 않지만, 현재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그 중요성을 좀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고, 그 폐혜는 축소하고 있다고도 생각해.

당고: 난 가끔 그런 생각도 해. 지금 결혼을 둘러싼 이 모든 문제가 여성 차별과, 비혼 차별과 이런 걸 떠나서 싱글에 대한 차별인 걸까? 라는.

이브리: 명백한 차별이지.

당고: 그렇지, 명백한 차별이지. 그런데 난 내가 뭐, 바이섹슈얼이라서 이득을 봤다거나 비혼은 경제적인 특권층의 운동이야, 네가 비혼이라 이득 봤어이런 건 전혀 동의하지 않고 찔릴 것도 없는데, 내가 연애인이라서, 그러니까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이어서 이득을 본다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많아. 사실 엄청 불편하거든, 그게. 다른 것에 대해선 내가 가진 쪽이라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사실 많지 않은데, 그 커플이라는 면에 대해서는 그런 게 너무 심한 거야, 내가 이득을 누리고 있는 상태라는. 그게 내 안에서도 반동이 되게 심하고 사실은 그래서 더 결혼한 사람이 싫고, 결혼이 싫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장려하는 국가가 되게 싫은지도 모르겠어. 결혼이라는 건 정말, 정말 싱글에 대한 엄청난 차별인 것 같아서. 내가 그래서 독신이 좋다고 말하는 게 그런 거야. 비혼이라는 말은 약간, 그냥 내 느낌이지만 난 커플인데 비혼이야이런 느낌이 약간 있는데 그게 너무 싫은 거야, .

내가 독신이라는 단어가 좋은 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인 것 같아. 독신은 되게 싱글, 솔로인 것 같아서. 진짜 독신이 차별받지 않는? 그런 느낌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브리: 맞아, 맞아. 내 생각도 그래. 결혼 제도를 아무리 확대해도 경제적 사회적 안전망에서 누군가는 빠져나가니까, 복지를 개인 단위로 재편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잖아? 물론 이게 혁명을 요하는 이야기라는 건 알고, 뭐 유토피아적이고 비현실적이고, 그런 건 말하는 나도 알긴 아는데,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운동한다는 사람들마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참 힘빠지지.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접했던 반응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긴 한데, 어쩜 그렇게 하는 이야기들이 다 똑같아? “그건 비현실적이고~” 네가 현실을 모르고 그 상황에 처해 보면 그렇지가 않다는 거야. , 그런데 이거엔 반박을 못 하는 게, 진짜로 나는 나 자신이나 애인이 엄청 중병에 걸렸거나 사망했거나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

당고: ? 예를 들어 결혼을 통한 가족이 위급상황에서 긴급연락처가 되는 대신 친구나 이웃끼리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상연락망, 그런 것을 구상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이브리: 그러게. 아니면 결혼 말고 다른 법적 비상연락인 제도를 만들어서 개인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든지 하면 되잖아. 그런데 또 그건 비현실적이래. 여하튼 모든 차별을 없애기 위해 싸우자는 건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고, 성소수자에게 가장 급하고 절박한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게 동성결혼이라는 거야. 그런 프레임에서는 어쨌든 결혼 제도 자체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할 때 마다 나는 철모르는/ 비현실적인/ 특권적인 사람이 되는 거지. 이건 결혼하고 애 낳아 보지 못하면 인생을 모른다는 사고방식과 그다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까지 했어, 나는.

당고: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이성애 가부장제 사회의 메인스트림은 아닌 거지? 신기하네.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어 동성 결혼은 무슨, 한국에서 동성 결혼을 해서 그 가족구성원이 행복할 거라는 것 자체가 비현실이지!’ 이렇게도 말할 수 있는 거잖아. 차별을 바꾸자고 하는 사람들이 그건 지금 현실이 아니니까 할 수 없다는 논리를 쓰는 건 신기하네.

      그러고 보니까, 미국 연방법원에서 동성결혼 합헌 결정이 나고, 백악관이 무지개로 물들고 그런 거 봤을 때 나는 오히려 이성애 기혼 페미니스트들이 너무나 환대한다고 느꼈거든.

이브리: 결혼이라는 제도가 정당화되는 데 성소수자도 기여하게 되는 거잖아. 그러고 보니까 그, 동성 결혼을 찬성하는 이성애자들이 걸었다는 신이여 저들도 결혼해서 우리와 같은 고통을 누리게 하소서라는? 내용의 플래카드. 이런 플래카드가 굉장히,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위트 있고 유머 있는 문구처럼 소비되는 그런 행태. 나는 그걸 보면서 편하게 웃을 수는 없던데. 그러면서 동성 결혼이든 페미니스트의 결혼이든 뭐 어떻게 현재의 불평등한 문화를 바꾸겠다는 걸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는 결혼이 싫다, 결혼 나쁘다!’ 라고만 이야기하면, 이건 결혼하는 사람은 싫다, 나쁘다가 되고, 이건 동성결혼 지지자들로부터 욕을 먹기 이전에, 그냥 일부 동성애자들의 바이섹슈얼 배척에 찬성하는 꼴이 돼버릴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들거든. 물론 단순히 결혼 나쁘다이렇게 요약하면 내 쪽에서 불쾌하겠지만, 어쨌든 내가 결혼을 싫어하는 건 맞잖아?(웃음) 그렇다면 나는 결혼하는 바이섹슈얼들과 어떻게 연대하면 좋을까? 이게 나의 해결이 안 되는 고민이라서 당고에게도 물어보고 싶었던 거지.

당고: 사람은 어디 서있느냐가 중요한 거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거야. 그래서 난 그냥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것 같아. 기혼 페미니스트는 결혼제도 안에 있는 거잖아. 나는 결혼제도 밖에 있고. 그러니까 난 지금 갈 길이 다르다는 게 내 생각이야, 솔직히. 우리 뭉쳐야 되면 하겠지.

      동성결혼 이슈는 또 좀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아. 만일 지금 동성결혼 문제가 거기서 가장 중요한 어젠다처럼 된 거라면, 그 부분에 있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성소수자들이 그걸 탈환해 오려는 노력을 할 수 있겠지. 그러면서 성적 정체성이 아니고, 결혼으로도 전선을 그을 수 있는 거잖아. 난 이렇게 다들 결혼 집착하고 결혼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게 사회가 보수화되는 거랑 상관 있는 것 같아. 사회적 안전망을 못 믿으니까 오히려 가족이 너무 소중하고, 살기 위해서 그럴 수 있는 거지.

이브리: 레즈비언 대 바이섹슈얼이 아니라, 예를 들어 기혼 레즈비언/바이섹슈얼 대 비혼 레즈비언/바이섹슈얼이라든지?

당고: 그러면 나는 정말 비혼이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허를 찌르는 당고의 마지막 질문과 지금과 다른 이슈를 중심으로 뭉친다면 비혼이 정말 운동이 될 수도 있겠다는 당고의 말은 울림이 더 컸다. 그렇지만 기혼자 대 비혼자로 전선(?)을 옮기면 어떠냐는 당고의 제의를 열렬히 환영하는 내 마음에는 대의라고 표현하기엔 좀 시시한 그런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예를 들어, 레즈비언 중심적인 여성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소외받기 싫다든지. 글쎄, 아직 어떻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당고와의 길고 알찬 대화는 여기까지로 줄여둔다.

당고와의 대화는 모든 친밀성과 연합의 욕망이 법적/종교적 결혼에 지배받지 않은 채 상상되고 실천되는 사회를 적극적으로 꿈꾸며 살고 싶어하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부족한 글솜씨 탓에 자칫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까봐 걱정스럽지만, 만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분이 계시다면 부디, 어떤 입장이든, 내가 전달받은 좋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란다


*인터뷰 참여 -당고, 이브리

*녹취록 및 글 작성 -이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