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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4호] 가족?!?

[인터뷰] 비혼주의 페미니스트, 당고를 만나다 -2-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 비혼이라는 특권?

이브리: 아까도 잠깐 이야기가 나왔지만, 비혼 운동에 참가한 사람 중에서 레즈비언이나 다른 여성 성소수자도 많이 있었다고 알고 있어.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는 가끔 비혼 운동에 대해서 그냥 자기들 특권을 자랑하는 거다라는 그런 정서를 내가 가끔 접했거든. 그러니까, 이성애자이거나 바이섹슈얼인 비혼주의자를 향해서 너희는 어쨌든 결혼이라는 선택지가 있는데 그 선택지를 버리는 거지만, 동성애자는 애초에 결혼이라는 선택지가 막혀 있는데 거기다 대고 비혼이 어떤 운동이나 실천이라고 주장하는 건 너무 특권에 기댄 운동이다.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조금 다른 쪽으로 더 나아가면, “비혼으로 살 수 있는 건 결국은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지위가 안정되어 있어서이다. 정말 가난하면 비혼으로 살 수 없고, 누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굉장히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이 생겼을 때, 결국은 결혼이라는 제도적 인정에 기댈 수밖에 없다.” 라는 반론도 있어.난 비혼을 이야기할 때마다 (혹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비판할 때마다) 그런 식의 반론을 굉장히 많이 접했거든. 당고는 그런 의견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언니들, 집을 나가다: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

언니네트워크 엮음, 에쎄(2009)

 

당고: ‘언니들, 집을 나가다라는 책이 있어. 그리고 싱글 여성의 독립이라는 이슈가 꼭 비혼이라는 건 아니지만, 싱글 여성에 대한 연구 논문과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는데, 비혼을 표방하는 2-30대 여성들을 보면, 내 기억에는 평균 연봉이 1,500만원 정도였거든.

연 수입이 1,500인데, 경제적으로 안정된 특권층? 글쎄, 이건 너무 말이 안 되는 거지. 결혼 못한다고 난리치는 사람들 보면 다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한다고 이야기해. ‘삼포, 오포, 칠포이러면서 젊은이들이 결혼 못한다고, 특히 남성들도 돈이 없어서 결혼 못한다고, 여자들이 돈 없는 남자를 무시해서 결혼 못 한다고 들고 일어나는 세상이야. 물론 비혼주의가 경제적 특권을 밑바탕에 깔고 가는 운동이라면서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이 젊은 세대가 돈이 없어서 결혼하지 못하니까 큰일이라고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이랑 생각이 다른 그룹일 수 있겠지. 그렇지만, 나는 여성 비혼주의자로서 이브리가 말하는 그 사람들의 비난, 이라고 해야 할까 비판이 내 어디에도 꽂히지 않아. 그들이 그렇게 말해도 나는 당당하게 맞받아칠 수 있거든.

나는 바이섹슈얼인데, 아니 뭐 바이섹슈얼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찬성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성소수자야. 내가 성소수자라고 생각하는데 어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성애자라서 이성애자 특권을 휘두르면서 비혼을 선택했다는 그런 비판도, 나는 전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고. 그리고 어쨌든 내가 계속 비혼으로 살기로 결정했던 시기에 프리랜서로 일할 때 고지서 날아온 걸 보면 난 한해 연봉이 715만원 나온 적도 있어. 너무너무 돈이 없어서 2년 전에 재취업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좀 더 여유가 있지만, 나는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비혼을 선택했어. 물론, 수발을 들어야 될 사람도 없었고 내 원 가족이 너무 가난해서 내가 원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 아니 그런데, 그렇게 가난한 가정의 여성이 갑자기 부잣집에 결혼을 해가지고 자기 원가족에게 뭘 퍼줄 수 있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일 거라고들 생각하는 거야?

이브리: 드라마 여주인공이 아니고서야 그러긴 현실적으로 힘들지.

 

확실히, (이성애) 제도 결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결혼 자금이다.

 

링크: [기사] 미혼층 80% 결혼 의향 있어늦어지는 이유는 "비용 때문에"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E41&newsid=02341926615861680&DCD=A00504&OutLnkChk=Y

 

당고: . 그러니까, 난 이브리가 말했던 그런 비판들이 다 날 비껴간다고 생각하거든? 그들의 비판은 꽃힐 지점이 정확하게 타겟팅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혼주의자 페미니스트는 상상의 존재야. 지금 어디다가 화살을 쏘는 거야.

그런데, 비혼주의가 운동이 아니라고 (비판)할 수는 있을 것 같아. 운동이 무엇이고 무브먼트가 무엇이고 연대가 무엇이고, 우리의 지향이 무엇일까? 우리가 조직화를 할 수가 있는 운동일까? 이런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볼 여지가 있을 것 같아. 아까 받은 인터뷰 사전질문지에 비혼주의 운동에 대해서 질문이 많이 있었잖아, 난 그걸 읽고 혼란에 빠졌었거든. 내가 비혼 운동을 하고 있었나? 이게 운동인가? 이런 식의 부분에 대해선 좀 더 논의하고 토의할 여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채식주의가, 채식이 운동인가? 이런 질문들이 있잖아.

이브리: 그러니까 그런 게 과연 운동이냐, 아니면 그저 삶의 양식으로 선택한 것이냐는 질문?

당고: 그렇지. 나는 비혼이나 채식이 그냥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브리: 아니면 라이프스타일은 왜 운동이 될 수 없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

당고: 그렇지, 그런 것에 대해선 나도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또 비혼 자체가 엄청 조직화하려고 하는 운동이었던 것 같지는 않아, 내 생각엔. 일부, ‘언니네를 중심으로 비혼 PT 나이트, 혹은 비혼주의자 선언을 하는 그런 행사들이 있었어. 내가 주최측으로 참여한 건 아니지만 그 행사 초기, 그러니까 1-2회 이런 때는 사람들을 조직화하려는 노력은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막 그게 되게 조직화가 잘 되고 그러지는 않았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을 해. 그 흐름이 약간 중간에 끊긴 부분이 있으니까.

 

2회 비혼여성축제 비혼, 그 입술을 열어요현장.

사진출처: 언니네트워크 http://www.unninetwork.net/?p=1329


당고: 그런데 그런 걸 떠나서, 비혼주의자에 대해서 경제적 특권이니 하면서 그런 부적절한 비판을 하는 데 깔린 이유는 결국 그 사람들이 결혼하고 싶다는 거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 그렇지 않으면 비혼주의자를 그런 식으로 비난할 이유가 없거든.

그런데 나는 그 질문을 자기 자신한테 돌려야 된다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스스로한테 이렇게 물어보라고 하고 싶어. “너는 왜 결혼하고 싶어? 결혼이 어떤 건지 잘 알잖아.”

이브리: 모르는 것 같아(웃음). 결혼을 원하는 사람 중 다수가 결혼이 뭔지 잘 모른다고 생각해.

당고: 아아아니, 난 안다고 생각해.

이브리: 글쎄, 나는 결혼을 무조건 이성애 특권의 진입 통로로만 생각하는 안일한 태도를 접할 때 그 사람들이 결혼을 잘 모른다고 생각이 들던데. 여자의 결혼은 남자의 결혼과 똑같이 이성애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이성애 결혼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르겠냐, 여자의 결혼생활이 더 힘들다고 해도 너는 사회적으로 관계를 인정받잖아. 그런 식의 젠더블라인드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지 않아?

당고: 아아아니 그런데 말이야. 기혼 여성들한테 성소수자들이 그런 말을 할 수는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비혼인 나도 기혼여성들에게 그렇게, 억하심정이라고 할지, 아무튼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너는 결혼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를 누리고 있지 않느냐. 가부장제에 편승해서 어떤 식의 이익을 취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내 말은, 그걸 왜 비혼을 비판한답시고, 비혼주의 여성한테 말하냐고. 비혼자는 결혼을 함으로써 이득을 누리고 있지도 않잖아?.

이브리: , 비혼 여성에게 그런 식의 비판을 한다는 말은 아니고, 그러니까 퀴어 정치에서 결혼을 체제에 편입되려는 움직임이고 동화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하잖아? 물론 그런 비판의 목소리는 약하고 점점 더 약해지는 것 같지만. 내가 아까 당고에게 말한 비판들은 반드시 비혼주의자나 비혼여성이 타깃인 건 아닐 거고, 결혼 자체, 특히 성소수자의 결혼제도 편입에 대한 비판에 다시 반론을 제기하면서 많이 나오는 말들인 것 같아. 그러니까 비혼도 돈 있어야 하는 거잖아. / 나는 어쨌든 결혼을 해서 기혼자들에게 배타적으로 주어지는 권리를 보장받겠어. 결혼을 원하는 게 왜 나빠?” 라는 그런 건데.

그런데 내 경험으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결혼할 수밖에 없다는 그 현실을 덧붙여서 이야기하더라고. 아프고, 바쁘고, 돈이 없으면, 아무튼 현실적으로살다 보면 결혼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거야. 그러면서 그 사람들은, 본인들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당고나 나같은 사람들의 현실을 현실이 될 수 없고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만드는 거지.

 

◆ 운명의 장난

이브리: 갑자기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르는데, 한편으로는 당고가 스스로 성소수자, 그러니까 바이섹슈얼이기 때문에 이성애 특권을 행사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라고 아까 이야기했지만, 오히려 바이섹슈얼이 이성애 특권을 행사한다는 주장은 많이 있잖아?

당고: 양쪽에서 모든 이득을 다 취하는 박쥐?

이브리: , 그런 거지.

  

온두라스 흰박쥐. 주로 과일을 먹고 살며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ctophylla_alba_Costa_Rica.jpg

(이미지는 본문 내용과 무관할 수 있습니다)

 

이브리: 바이섹슈얼에 대한 그런 비판은 어떻게 생각 하냐는 질문이 첫 번째고, 둘째로 현실을 나는 결혼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쓰는 사람들이 꽤 많잖아? 이게 나의 의견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서 아이가 생기면, 임신과 출산을 하면 현실적으로 결혼하는 수밖에 없어라는 식의 주장도 있잖아. 그런 생각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지 궁금해.

당고: 글쎄, 나는 이제 내가 바이섹슈얼이어서, 막 박쥐처럼 산다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상관이 없는데, 만약에 지금 내가 여자를 사귄다면 내 인생이 되게 편할 것 같아.

이브리: 어떤 면에서?

당고: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거야. 내가 모 여성단체에서 독서모임을 운영했었어. 7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독서 모임을 했었고.

이브리: 그 단체에서 반상근으로 근무를 했었지?

당고: , 반상근까지는 아니고, 책임상담원이었지. 상담 업무를 하는 사람이면서 되게 열혈 회원이었고. 그때 회원 소모임으로 독서모임이 있었던 건데, 그 모임에서는 굉장히 많은 여성주의 서적과 소설을 같이 읽었어. 굉장히 재미있는 재미있는 모임이었는데, 그때 읽었던 책들 중에서 나와 몇몇 친구들이 되게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우에노 지즈코의 결혼 제국이라는 책이었어. 거기 결혼에 대해서 상냥하든 포악하든 간수가 있는 건 마찬가지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런 생각에 동의를 하면서 그걸 농담처럼 재생산하고, 지금까지도 계속 인용을 할 정도로.

 

<결혼제국: 결혼이 지배하는 사회 여자들의 성과 사랑

우에노 치즈코/노부타 사요코 지음, 정선철 옮김, 이매진(2008)

 

당고: 독서모임 구성원은 정체성도 다양했고, 레즈비언도 많았어. 그리고 거기에 있던 독서 맴버는 거의 비혼을 표방하는 사람이고. 그들이 다 비혼주의자고 반드시 비혼으로 살아야만 하겠다는 사람들인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다들 비혼이야 (웃음). 그러니까 비혼에 대해서 우호적이고,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한다는 점에 대해선 다 일치했지, 일단 그 여성주의 단체에 오는 사람들이니까.

이브리: 그때가 몇 년도쯤이야?

당고: 2006년부터 2012? 2013? 그 정도까지 계속 활동했었어. 지금은 다른 식의 회원 소모임이 생겼지만, 그때는 소설 읽기 소모임이라는 소모임이 있었고. 그런데 뭐, 그 맴버는 지금까지 다 결혼한 사람이 없어. 그 당시에 1/3은 레즈비언이고 1/3은 이성애자고 1/3은 바이섹슈얼이었을 거야. 아니면 레즈비언 절반, 나머지 25%는 이성애자에 25%는 바이섹슈얼. 이런 양태였다고 생각을 해. , 그때 당시 표방하던 자기 아이덴티티가 지금은 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 내가 다 너 그때 레즈비언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레즈비언이니?’ 이렇게 묻고 다닐 수는 없잖아. 자기 선언으로 자기 커밍아웃을 바꿀 수도 있고. 아니면 그때 이성애자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 바이섹슈얼이였어, 아니 레즈비언이야. 이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그런데 나는 거기서 되게 묘하다고 생각한 게, 그 결혼 제국이라는 책을 읽으니까 이제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나 비혼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잖아. 그런데,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되게 관심이 없었어. 그리고 이 책이 재미없다고 하더라.

이브리: 본인의 관심사가 아니라서?

당고: 그렇지. “결혼이건 비혼이건 관심 없다. 어차피 결혼 안 할 건데, 내가 왜 관심 가져야 되냐.” 그런 거지. 그런데 나는 그런 마음 이해를 하긴 해. 나도 과거에 여자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때 막 여자친구들한테서 그런 얘기 들었어. , “내가 남자면 너랑 결혼할 텐데.” 라든지. , 예전 일이야. 그리고 부치 성향인 여자친구들은 굉장히, ‘너와 결혼하지 못하는 나에 대해 안타까워했던 걸로 기억해.

이브리: 뭔가 전형적인데, 그거(어쩐지 웃음).

당고: 그 사람들도 지금은 다 생각이 바뀌었어. 지금은 그런 말 오글오글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연애를 하면 낭만적이 되잖아. 어린 시절에 연애를 하면 더. 그러니까 영원한 사랑, 낭만의 완성, 그런 것이 결혼이라고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세뇌를 받고 있는 거잖아. 사실 그냥 결혼 하기로 할 수도 있는데, 내가 동성애자여서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서글픈거지. 그 서글픔에서 또 사랑이 샘솟잖아, . ‘세상에 우리 둘 뿐이야, 외로워.’ 이러면서. 그런데 나는 그런 마음 이해해. 그리고 그때는 내가 결혼 안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때는 내가 레즈비언이니까, 결혼을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거지. 하지만 나는 그때도 결혼을 못한다고 해서 아쉽지 않았어. 그냥 같이 살면 되지, 나중에

여하튼 결혼 이야기가 안 와 닿는다, 결혼을 다룬 책이 재미가 없다는 그 언니들은 대체로 삼십대이거나 사십대로 가는 길목이었어. 그러니까 레즈비언으로 산 게 너무나 오래된 거지. 처음에는 고민했겠지. ‘애인과 결혼할 수 없는 나에 대해서나, ‘여자 애인은 빨리 바이바이 하고 남자 찾아서 결혼해야 하는가라고 고민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인생의 단계가 있었겠지. 그런데 이게, 갈 길을 확고히 결정하고 내 삶이 굳어진 다음에는 사실 고민할 여지가 별로 없는 거야, 내가 봤을 때는.

이브리: 예전에는 당고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한 거야?

당고: 그때는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 여자 친구들과 연애가 끝난 다음에도 나는 레즈비언이니까 여자를 사귀어야지. 어떤 여자를 사귈까.’ 이렇게만 생각했지.

이브리: 당연히 여자를 만날 거라고 생각한 거구나.

당고: 당연히 여자를 만날 거라고 생각했지, 당연히. 그런데 어쨌든, 그 후에 남자를 사귀게 됐고, 지금까지 사귀고 있고. 그렇게 된 거지. 그래서 이제는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관심 없던 결혼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 하는 거야. 사실 나는 너무그걸로 인해서 고통 받은 게 많아.

이브리: 결혼에 대한 고민으로?

당고: , 결혼 때문이지. 결혼 안한다고 까이고, 남자친구와의 갈등이 생기고. 내가 결혼 못해주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남자친구가 남자친구 집 부모님한테서 받는 그 엄청난, 엄청 엄청난 스트레스와 그게 나한테 전이되는 것에 대한 엄청난 스트레스. 그런 생각을 가끔은 하지. ‘내가 여자를 사귀었으면 이 모든 고난의 행군이 없었을 텐데. 정말 빡친다. 운명의 장난이다. 너무 힘들다.’

 

사진 출처https://www.flickr.com/photos/archiemcphee/4158294183

(이미지는 본문 내용과 무관할 수 있습니다)

 

이브리: 그럼 지금도 당고의 애인님 집안에서 막 결혼 압박을 줘?

당고: 나한테 애인이 막 명시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진 않아. 그런데 본인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그 영향이 나한테도 오잖아. 그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어. 50이 되고 60이 돼도 계속 그럴 건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결혼하라는 집안의 압박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는 상당히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막, ‘바이섹슈얼로서 이성애 연애를 하면서 비혼을 선택하는 특권을 누린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진짜 물어보고싶어. 지금 바이섹슈얼로 이성 간 연애를 하는데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어디 있냐고.

이브리: 여기 당고 있잖아(웃음).

당고: 아니 그러니까, 내가 직접 만나보고 싶어, 그 사람들(웃음). 진짜 없어, 솔직히. 그런 사람들 있었더라도 다 남자 애인이랑 헤어졌더라, 결혼 안 해서. 그들이 그렇게 명시적으로 말하진 않더라도 여자 쪽에서 비혼을 선택해서 헤어진 부분, 난 진짜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게 되게 큰 이별사유고. 그리고 내 주위에 비혼의 길을 가본 사람들을 보면, 글쎄. 이성애자인데 미혼, 그러니까 결혼을 하고 싶은데 못한 분들 말고, 바이섹슈얼인데 이성하고 연애를 하는데 비혼을 선택해 가지고 뭔가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난 이성하고 연애를 하면서 결혼 압박으로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모르겠네, 난 이제 레즈비언이었으면 이런 스트레스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돼. 레즈비언이었으면 되게 순탄한 삶을 살았을 것 같아. 계속 해피하게.

 

◆ 가족이라는 이름

이브리: 그러면 어쩔 수 없는 사정,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있을 때는 그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결혼을 해야 된다, 이런 주장은 어떻게 생각해? 아무리 비혼을 유지해 보려고 해도 아이가 있으면 그게 불가능하다라는 그런 이야기도 있잖아.

당고: 그런 이야기는 정상가족이어야 애를 키울 수 있다는 거거든, 뭐라고 변명을 해도 그것만 남아. 아이가 있으면 결혼을 해야 된다는 그 명제는, 뒤집으면 정상가족만 양육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거잖아? 그럼 예를 들어 동성 커플이면. 여자가 혼자서 애를 키우면, 남자가 혼자서 애를 키우면?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결혼해야 한다는 변명은 그런 지점을 다 경유하는 거잖아. 그게 다 포함되어 있는 거야, 그 안에. ‘정상 가족이어야만, 삼인 사인 핵가족이어야만, 엄마 아빠가 다 있어야만 아이를 키울 수 있다. 그래야 아이가 행복하고 결핍을 느끼지 않는다,’ 그거라니까? 난 그런 말 완전 폭력적인 거라고 생각해.

  

이미지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23165290@N00/7171055223/

 

이브리: 나는 당고 말에 기본적으로 동의를 하는 입장이야. 그런데 그당연히 정상가정이어야 애가 제대로 크지라고 말하는 것과, ‘나 혼자서 힘들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건 괜찮은데, 내 아이가 그렇게 자라면서 주눅 들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고, 경제적인 불이익에 더해서 사회적 낙인까지 짊어지고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혼을 선택했다.’ 이건 좀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

당고: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뭐냐면, 그 사람들이 말하는 가정이 이미 있다고. 무슨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 이미 있잖아. 그러니까 한부모 가정, 싱글마더 싱글파더가 이미 있잖아. 그리고 지금 한국에는 그런 길이 거의 막혀 있긴 하지만, 외국에는 동성 커플인데 아이를 입양할 수도 있고, 또 비혼모가 아닌 싱글 여성인데 자기가 낳지 않은 아이를 입양할 수도 있고 그렇잖아. 그런 이미 존재하는 가정과 그 가정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 대한, 정말 차별적인 표현이잖아. 나는 이브리가 방금 말한 것, 앞과 뒤가 전혀 다르게 안 느껴져. 난 사실 표현도 똑같다고 생각해, 그냥. 그건 번역하면, ‘너는 엄마 하나밖에 없으니까 불쌍하다.’ 그런 동정의 시선과 똑같아. 톤만 달라지는 거지, 뉘앙스만. ‘아버지가 없다니 되게 안됐다, 되게 힘들겠다.’ 아니면 너는 엄마만 둘 있어서 정상적인, 일반적인, 노멀한 그런 사고방식 가지기 어렵겠다. 넌 행복하기 어렵겠다.’ 아니, 지금 딱 그거잖아. 그런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면, 그건 비혼만의 문제가 아니야. 정상가족 테두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 당사자들이 있잖아. 정상가족이어야만 아이를 키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행위는 그 당사자들이 되게 화를 내야 되는 문제라고 생각을 해.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기 위해서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면, 아니, 실제로 있지. 그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지, 사실.

이브리: 지금 우리 웹진의 주제가 이번에 가족으로 잡혔거든. 그런데 부모나 양육자 이외에, 내가 선택해서 만드는 가족이라는 건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그냥 결혼해서 애기 낳고 그런 거잖아? 그러면 비혼자는 마치 가족이 없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고. 당고는 가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당고: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되게 부정적으로 생각해. 가족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거의 없고. 모르겠어. 어렸을 때는 가족을 만들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하면 그냥 회피 같지만, 내가 예전에 했던 생각들은 명확하게 내 생각이었다기 보단 어딘가에서, 각종 소설이나 미디어에서 주입받은 생각들이 많았던 것 같아.

이브리: 예전에 뭐라고 생각했는데?

당고: 십대일 때 난 스물 한살에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어. 난 되게 일찍 결혼해서 대학생 커플같은, 대학교 다니면서 졸업 전에 결혼하고 그런 걸 꿈꿨거든. 택도 없는 생각을 했는데,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어딘가의 미디어에서 봤던 것 같아, 약간 그런 거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모르겠어. 되게 일찍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십대 때는. 실제 연애를 하고 좀 더 살면서 그런 생각이 좀 사라졌고. 그런데 그때 엄청 구체적으로 가족을 그린 건 아니고, 약간 무슨 할리퀸 로맨스를 보는 것처럼 그렇게 상상한, 그런 되게 현실과 동떨어진 거였고.

실제로 가족을 이루자’, 아니면 결혼하자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그려지는 가족은 너무 갑갑한 모습이지. 가족이라는 거 자체가 지금 이야기한 것처럼 결혼 제도랑 되게 결부되어 있고, 결혼 제도는 또 가부장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억압적으로 느끼는 거지. 가정이라는 공간 자체가 많은 여성들한테는 쉼터가 아니라 일터잖아. 가족이라는 것도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케어해 주고, 도와주는 이런 존재가 아니라 내가 봉양해야 되고, 수발 들어야 되는 존재고. , 그렇게 느껴지는 거지.

 

 ◆ 선언할까, 대화할까, 통보할까

이브리: 그러면 당고는 부모님 댁에서 독립해서 살고 있긴 하지만, 당고 부모님으로부터의 결혼 압박은 없었어?

당고: 일단 사귀는 사람 있다는 건 알고 있고, 부모님이 애인을 만나본 적은 있어. 일부러 소개해 드릴게요.’ 이런 게 아니라, 우연히. 그렇지만, 아무튼 나는 애인 부모님한테 인사를 드리거나 한 적은 아예 없고, 애인 부모님은 나를 본 적이 없고. 그런데 그것도 결혼이랑 결부가 돼 있지. 그쪽은 아들이 결혼하길 원하니까 날 보면 더 결혼 압박을 줄 거 아니야? 그렇지만 우리 부모는 약간, 일반적이라고 할 순 없을 것 같고. 난 어쨌든 결혼에 대해서 집에서 압박을 받은 적은 없어.

이브리: 부모님이 그런 걸 이해해 주시는 편이야? 혹시 부모님한테 전 비혼주의자예요이런 대사를 쳤다거나?!

당고: 아니 그런 대사를 치진 않았고, 그냥 나는 결혼 안 할 거라고 했지. 무슨 주의를 표방하진 않았지. 그런데 난 명절이나 친척 결혼식 같은 데서 친척들 만나도, “결혼 안 할 거냐?” 이런 말 들으면 여자인 이모, 고모, 이런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말해. “결혼해서 그렇게 행복하셨어요? 좋으셨어요?” 이러면 , 그래. 넌 결혼하지 마.” 그러시더라. “그래, 힘들지. 여자는 결혼하면 힘들지.” 약간 이렇게 납득을 하셔. 이런 대처는 어떻게 보면 정면 돌파인데, 어떻게 보면 그냥 스리슬쩍 눙치고 사는 부분도 있어. , 비혼주의라는 걸 표방하진 않고, 그냥 나는 결혼하면 힘들어서 결혼 안 한다. 나는 나 혼자 행복하게 살 거다.’ 그런 식으로

이브리: 많은 부분 사실이기도 하잖아, 그거.

당고: 엄청 사실이지. 그런데, 예전에는 오히려 내가 주변 사람들한테 다른 쪽을 더 강조했던 것 같거든. 그러니까 나는 페미니스트고, 가부장제에 저항해서 결혼 안하는 거야라고 한 거지. 그런데, 어쨌든 다 떨어뜨려 놓고, 나 개인을 봤을 때 난 이제 힘들기 싫으니까 결혼제도 안에 안 들어가는 게 맞는 것 같아. 뭐 페미니스트 저항과 개인적 행복이 배치되는 것도 아니지만, 난 이제 나 혼자 행복해지고 싶어서, 내 행복을 가장 우선시해서 결혼을 안 하는 것 같기도 해.

내가 특이한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페미니즘을 표방해서 큰 충돌을 빚은 적은 없어. 그러니까 결혼을 안 해서 남자친구랑 아까 말했던 갈등이 있었긴 했지만. 그러니까 보통은 페미니즘이나 소수자적 성 정체성을 표명할 때 친구들, 애인, 이런 사적으로 아는 사람들한테는 지지를 받다가도, 친적, 회사 상사, 비즈니스 파트너, 이런 사람들에게는 갑자기 테러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그런데 나는 사실 그런 경험이 지극히적다고까지도 할 수도 없고, 나는 그냥 그런 적 없는 것 같아. 생각나는 사례가 거의 없어.

그러니까, ‘나페미같은 태그 활동도 있었잖아,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SNS 선언을 하는. 나는 그런 선언을 당연히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그런데 블로그나 트위터에서 선언을 했는데 너무 떨리고 두근거렸고, 그동안 억압으로 인해서 그런 선언을 할 수 없었는데 해방감을 느꼈다라거나, 아니면 선언한 자신의 용기를 막 토닥토닥 해주는 그런 글들도 있었잖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그 사람들의 감각이고, 억압의 역사도 되게 다양하니까. 그런데 나 개인은, 당시에 트위터를 하지도 않았지만 그 당시에 트위터를 했다고 해도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이렇게 안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굳이 내가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선언을 해야 되냐고 생각한 게, 트위터에다가. 온라인에다가 할 필요가 없는 거지, 오프라인에서 항상 선언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 그냥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 그런 중견 기업에 다니는데, 내 이력서에 낼때 모 여성단체에서 책임상담원으로 일했고,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가이드북에 공동 저자로 참여했고 그런 이력이 다 써져 있었거든. 그런데 뭐,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그냥, (활동가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이력서를 한번 보내줬을 때 내 친구가, 걔도 페미니스트인데, “그런 경력을 다 넣을 거야?” 하고 물었어, 나한테. 이걸 그대로 보내줘도 되냐는 거야. 사실 그 피드백을 받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어서 좀 놀랐거든. 내가 내 여성주의 활동 이력을 내 이력서에 넣는 건데. 물론 내 직업적인 거랑 관련이 없으니까 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도 인턴이든 뭐든 다 넣잖아. 그러니까 난 내가 살아온 이력을 그냥 다 넣었거든. 당연히 그냥 넣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브리: 그게 흠이 되는 경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안해 본 거지?

당고: 전혀, 한 번도 안한 거지. 난 그런 걸로 태클을 받아본 적도 없거든.

이브리: 당고가 일하는 출판계의 특이성도 어쩌면

당고: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근데 어쨌든, 나는 그랬기 때문에 항상 오프라인에서 선언하고 있는데, 선언이라기보다는 그냥 얘기하고 있어.

이브리: 일상적으로 회사 사람들한테 저는 페미니스트예요이런 식으로 얘기한 적이 있는 거지?

당고: 아니,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사실 좀 안해. 그러니까 그냥,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싫어할 수 있겠지만, 난 그냥 아휴, 난 꼴페미라서.” 이렇게 말해. (이브리: 웃음) “난 꼴페미라서 그런 거 싫어해이렇게 말하지. 그냥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이렇게 정제된 언어를 써야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데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정제된 언어를 쓰지 않아.

그리고, 나는 내가 비혼주의자다이렇게 선언을 하진 않아도 막 숨기지도 않아. 내가 입사하자마자 회사 사람들이 엄청 결혼을 하는 거야. 다른 출판사에서는 직원이 이렇게 많이 결혼하지 않았었거든. 출판계에는 전반적으로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노처녀들이 굉장히 많아. 그런데 중견기업인 지금 회사에는 오히려 결혼하는 사람이 엄청 많아. 그러니까, 경제적인 거랑 확실히 연관이 있는 것 같아.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거지. 월급이 따박따박, 그것도 적잖은 월급이 나오는 거지. 그러니까 막 사월에 여자 직원들 엄청 결혼하고, 오월에 결혼하고, 유월에 결혼하고, 십일월에 결혼하고. 올해만 다섯, 여섯명이 결혼을 하겠다는거야. 솔직히 난 결혼을 지지하지도 않는데, 축복할 마음은 더더욱 없고. 그냥 말을 못 가려가지고, 나도 모르게 점심을 먹고 나서 커피를 같이 마시는데, 말이 나와 버렸어. 결혼한 사람 앞에서 , 왜 이렇게 다들 결혼을 하지?” 이랬어. (이브리: 웃음) 그러면 들은 사람들은 이제 물어볼 수밖에 없잖아. “당고 선배는 결혼 안하세요?” 이렇게 물어보는데, “, 저는 안 하죠.”라고 대답했어. 그런데 그 말을 했을때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이 , 근데 저도 곧 결혼하는데이렇게 된 거야. 좀 민망한 상황이었지.

그래서그 앞서 결혼한 두 사람은 축의금도 아예 안했어. 결혼식도 아예 안가고. 그런데 이 사람은 조금 더 부서가 가까웠어. 그리고 나한테 도움 준 일도 있고, 게다가 다행히 제주도에서 결혼한다고 해서 결혼식에 안 가도 되는 거야, 아예 청첩장도 안 돌리고. 그러니까 다른 회사 동료들도 안 갔지만, 그냥 그 결혼식엔 아예 갈 수가 없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그 사람한테는 축의금을 했는데, 뭐 십만 원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잖아, 요즘에 단가가 너무 많이 올라가지고. 난 오만 원을 줬지. 주면서, 이렇게 말했어. “, 난 결혼 안할 거니까 이것만 줄게. 난 어차피 못받는데 많이 줄 필요 없잖아.”

그러니까 나는 내가 비혼을 표방하고 결혼 안 할 거고, 페미니스트라고는 안했지만 꼴페미고. 그것에 대해서 내가 감추거나, 얘기를 안하거나, 그러진 않아.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꼭 한 번만 할 것도 아니고, 축하할 일이 결혼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결혼식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고 축의금을 내야 하나 싶어서 친구들 결혼에 가지 않은 적이 좀 많다. 그렇다고 나는 비혼주의자야!’ 이런 대사를 칠 용기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이유는 유야무야 얼버무렸더니 어쩐지 더 빈약해진 인간관계만 남았다. ‘나 결혼 싫어해. 그리고 난 결혼 안 할 거야. 그러니까 축의금 (많이) 안 주는 거 이해하지?’ 라고 솔직하게 말은 못했더라도 그런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다면 또 달랐을까? 하지만 결혼하는 사람이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모욕이라고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나의 반()결혼주의를 설명하는 방법이 있긴 있을까?

 

이브리: 가족이나, 회사 동료나 다른 친구들도 당고가 페미니즘이나 비혼을 표방한다고 해서 대놓고 싸우거나 이런 적은 없었다는 거네.

당고: 없지. 그런데 속으로 싫어할 수는 있지, 내가 태클을 거니까. 예를 들면 우리 본부장 같은 경우에도 그래. 회사 워크샵을 갔는데, 그냥 쭉 돌아가면서 건배를 하는데 갑자기 어떤 두 명이 건배하니까 본부장이 , 처녀총각이 건배한다!” 이러는 거야. 그래서

이브리: 우우우우우우.

당고: 그래! 그 반응. 내가 어우, 나 저런 말 제일 싫어!!!” 이랬거든. (이브리: 웃음) 그래서 본부장이 그 이후로 나 되게 싫어해, . 우리 보스인데.

이브리: , 그래도 당고가 능력이 너무 있으니까 함부로 못 건드리는구나, 그렇지?

당고: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괴롭힘이나 따돌림이나 그런 조직문화가 없는 회사에 다니고 있기는 한데, 뭐 심하게 나를 까거나 일부러 나를 막 부리고 그러진 않아도 나를 안 예뻐하지. 또 나랑 다르게 보스가 예뻐하는 애들도 있고 그런 거지. 예를 들면 모든 사람에게 와서 말을 걸고 가는데 나만 소외시키는 거야. 나한테 말을 걸지 않아, 그 사람이. 그런데 나는 그런 걸 두고 우리 보스는 날 싫어해라고 표현을 하지만 사람들은 나한테, “아니 싫어하는 건 아니고 무서워하는거죠.” 이렇게 이야기를 해. 뭐 그 사람들이 그냥 나 듣기 좋게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나는 싫어하든 무서워하든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왜냐하면 그것을, 그 꼴을 막는 게 더 중요한 거잖아, 내 입장에서는.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날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이제 차후 문제인 거고.

이브리: 그러면 당고는 되게 친하고 삶을 나눌 수 있을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친구나 애인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그러지는 않는 거네?

당고: , 가족이라고 느끼긴 하지. 예를 들어, 난 애인이랑 우리 집에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 되게 많은데, 집에서 맨날 자다 일어나서 뒹굴거리고 그래. 사실 우린 집에서 일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쨌든 자고 일어나서 TV 보고 이러면 그게 가족이라는, 집에서 같이 있고 생활을 함께하면 가족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는 거잖아. 나한테 예전에는 그 할리퀸 로맨스의 결혼 관념이 있었던 것처럼, 이 가족이라는 관념도 없어지지는 않아. (0)세부터 쭉, 삼십 몇 년동안 있는 거잖아. ‘아 가족같다이런 느낌이 있는 거잖아.

, 우리 집엔 고양이가 있잖아. 고양이가 있으니까, ‘아 내 고양이랑, 애인이랑 가족같네.’ 그런 느낌이 들지. 친구나 이런 사람들 보다는 가깝다고 느끼고. 친구는 매일 집에서 만나지 않잖아. 친구를 만나면 카페에 가고 우리가 좋아하는 거 먹고 하니까, 친구들이랑은 오히려 데이트하는 느낌인 거야. 그런데 애인이랑은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많거든. 그러니까 되게 가족같은 느낌이 들지.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애인을 굳이 가족이라고 부르진 않지. 남한테 이야기할 때 항상 애인이라고 지칭하지, “, 애인이랑 내 고양이는 내 가족이야. 우리는 결혼은 안했지만 가족이지.” 이런 얘긴 절대 안 해. 그리고 뭐 대안 가족,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도 않아. 그러니까 가족을 꾸릴 생각도 없고. 애인이라는 말 자체가 친밀함을 나타내는데 거기에다가 굳이 가족을 씌울 필요는 없어. 그리고 내 반려동물도 일단 엄청 친밀한 건데, 그걸 내 반려동물은 내 가족이고, 자식이야.” 이러진 않아.

반려동물을 자식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되게 많잖아. 사실 나도 얘가 꼭 내 자식같다는 느낌이 들긴 해. 왜냐하면 다 봐주고 챙겨줘야 되잖아. 그런데 그게 꼭 긍정적인 느낌이 아니거든, 나한테는. 내 고양이하고 나는 되게 데면데면하달까, 아니 그러니까 우린 서로 애정은 있어도 물고 빨고 막 이렇게 껴안고 아- 너무 좋아, 이러진 않아. 그런 애묘인들 되게 많아. 그런데 나는 멀찍이 있거든, 항상.

이브리: (충격) 그러면 고양이랑 별로 스킨쉽이 없어?

당고: 스킨쉽 없어.

이브리: 아 진짜? (충격) 그렇구나.

당고: . 그리고 나는 그걸 되게 귀찮아해.

이브리: (고양이가 아니라) 당고 쪽에서 만지는걸 귀찮아해? (더 충격)

당고: 아니, 우리 서로 그런 것 같아. 걔도 내가 오라고 하면 안 오고 제가 오고싶을 때만 하고, 나도 마찬가지야.

이브리: 완전 쿨시크하네

당고: 나도 걔를 쓰다듬고 싶고 가까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는 있지만, 또 내가 일하고 있는데 와서 이렇게 깨물면서 놀아달라고 하잖아? 나 그럼 되게 화나거든, 솔직히. 그런데 나보다 약한 존재인데 성내면서 밀칠 수 없잖아. 그러니까 막 아휴, 저리가, 저리가.’이렇게 하는 거지. 나는 저리 가라고 말하거든.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도 어떻게 보면 그 가족같은, 엄청 엮여 있는? 그런 관계 자체가 나한테 성격적으로 안맞는 걸 수도 있지. 아무튼 나는 내 애인과 내 고양이를 가족에 대입해본다면 ‘~같다, like 가족이런 거인 거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 않아.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t_crying_(Lolcat).jpg

(이미지는 본문 내용과 무관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는 귀엽습니다)

 

이브리: 그러니까 삶의 측면, 삶의 방식에서 마치 가족같은 면이 있지만 그들을 가족으로 규정하고,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는 거지?

당고: , . 전혀 그런 욕망은 없어. 그리고 반려동물을 자식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난 자식같아서 진짜 별로라고 생각해. 혼자 잘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걱정이 되게 많이 되잖아. 난 책임감은 강하거든. 그러니까 나 죽으면 고양이 어떡해그런 것 때문에 난 오히려 자식같이 의존하는 게 싫지. 자식같다는 게, 되게 무거운 거잖아. 내가 없어도, 만약에 밖에 방사하면 그냥 룰루랄라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종족이면 완전 좋지. 그런데 고양이는 아니잖아. 죽을때까지 돌봐줘야 하고 얘는 나가면 바로 죽음인거잖아. 그러니까 완전 슬프지.

이브리: 좀더 쿨시크한 관계가 좋아?

당고: 그냥 각자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어. 애인도 마찬가지로, 나랑 헤어져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아.

이브리: 한쪽이 다른 쪽에게 완전 의존하고 그런 건 싫다는 거지?

당고: .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지만 고양이도 만일 걔가 나 독립해서 나가서 살래하면 그럴 수 있는 존재면 난 그게 더 좋다고 생각하지 내가 막 죽을때까지 챙기고 내가 없으면 살 수 없고 얘의 전 우주는 나고, 이건 완전히 별로지, 사실. 

이브리: 그럼 이번엔 내 질문이 아닌 질문을 전달할게. 편집회의에서 비혼에 관해서 당고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밝혔는데, 페미니스트이고, 비혼주의자라고 했더니 당고에게 누가 궁금하다고 물은 게 있어. 내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몰라서 그대로 보고 읽을게.

  

당고님이 연애를 하시거나 하셨던 경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혼과 연애가 모순된다는 사회적 낙인이 있는데 이에 대한 경험을 물어보고 싶고, (질문자는) ‘결혼이라는 골도 없는데 지금의 연애가 어떻게 제대로 된 연애이겠냐라는 말을 하면서 현재 하고 있는 연애 행위를 뭔가 부족한 걸로 보는 폄하같은 걸 동년배 지인들로부터 경험한 적이 있고, 가족, 친지나 나이 많은 사람들은 비혼이니 뭐니 하면서 이런 저런 사람 막 만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결혼할 사람을 만나서 제대로 된 길로 진득하게 가라라면서 비혼 자체를 좀 아직 어려서 그런다는 과정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어서 혹시 그런 식의 폄하, 그러니까 관계에 대한 폄하의 시선을 접하셨는지, 만일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대처를 했는지가 궁금합니다.”

 

라는 질문이야. 이 사람은 비혼으로, 이성 간 연애를 장기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야.

당고: 그거 되게 안타까운 현실인데. 나는 약간 비혼이나 그런 이슈를 말할 때 내 태도 자체가 되게 공세적이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방어적이지 않고. "저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결혼을 안할 건데…" 이런 게 아니고, "전 결혼 안할 건데요? 왜 해야 되죠?" 이렇게 하니까. 한국적인 분위기에서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하고 대면해서 싸우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 뭐 온라인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렇게 딱 밝혔을 때, "전 꼴페미예요." 이렇게 밝혔을 때처럼. "완전 무섭다. 쟤 뭐냐?" 라고 뒤에 가서 욕할 수도 있고 관계는 더 이상 안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앞에서 막 그걸 비난하고, 그런 걸 들은 적이 없어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참여 - 당고, 이브리

*녹취 정리 및 글 작성 - 이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