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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4호] 가족?!?

[인터뷰] 비혼주의 페미니스트, 당고를 만나다 -1-

작년 어느 여름날, 나는 친구 당고를 만났다. 이번 호 웹진의 주제가 가족으로 정해졌을 때부터 나는 비혼 이야기가 하고 싶었고, 내가 아는 사람 중 그런 이야기를 가장 들려줄 수 있는 사람으로 친구 당고가 처음으로 떠올랐다.

 

이브리: 당고를 소개한다면 어떻게 소개하면 될까? 내가 맘대로 쓰는 것보다는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당고: 그냥30대 여성이고, 비혼이고, 출판노동자고. 그 정도만 소개하면 될 것 같아. , 페미니스트이고.

 

굳이 비혼 주의자라고 말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오히려, 사실 당고에게는 걱정이 따로 있었다.

 

당고: 내가 비혼주의자의 대표라거나 이 인터뷰가 비혼주의자가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생각을 보여주는 것처럼 웹진이 발행되지 않았으면 해. 신문지상에 난 다른 비혼주의자들 인터뷰 같은 걸 보면 나와 생각이 굉장히 다른 부분이 더 많아.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자기규정에 대해 좀더 물어봐야 했을까 싶지만, 굳이 ‘~주의자라고 다짐할 정도로 어렵거나 버겁지 않게, 비혼은 당고에게 있어서 익숙한 삶의 양식이 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낮설고 버거운 처음은 있게 마련이다. ‘서로 다른 비혼(주의/)’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당고와 비혼주의의 첫만남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 당고, 비혼을 만나다

이브리: 당고가 처음으로 비혼주의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어땠어? 한국 비혼 운동의 역사도 궁금하고.

당고: 그냥 내가 알게 된 때 이후로밖에 모르겠어, 나는. 그 이전의 역사를 되짚으려는 노력을 별로 한 적이 없거든. 난 대략 2006-7년 정도부터 비혼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비혼 운동을 하거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어.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쓰거나, 방을 가지고 있거나, 소모임 같은 걸 하면서 그런 걸 접했지.

이브리: <언니네트워크> 사이트 말하는 거야?

당고: , 맞아. 글을 많이 쓰면서 활발한 활동을 한 건 전혀 아니었지만 그냥 다른 사람들 방의 글을 보는 거지. 거기서 하는 행사 같은 데 참여도 하고. 언니 네트워크를 통해서 비혼에 대한 것들을 많이 흡수했던 것 같아.

 

<링크>[경향신문] “결혼 못했다? 우리는 당당한 비혼이다”(2007. 3. 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100&artid=200703091501151

 

이브리: 그러면 그때 주로 비혼을 얘기하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궁금해. 나이, 직업, 성적 정체성이라든지

당고: 주로20대에서 30대 정도 연령대의 여성들이었던 것 같고, 직업은 뭐, 대학생도 있고,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하고 여성단체 활동가도 있었을 것 같고. 단체 활동과 관련없는 직장인도 있었던 것 같아. 내가 그 사람들하고 다 개인적인 관계를 가진 게 아니니까 직업이나 자신들이 밝히지 않는 인적사항까지는 알 수가 없지만, 1인 가구 생활을 하는, 젊은 여성들이라는 느낌은 들었어. 그리고 정확한 조사 자료가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레즈비언들이 많았을 거라고 난 생각해. 언니네 전체가 레즈비언이 좀 많았던 것 같은 느낌이고.

이브리: 그러면 당시에 참가했던 행사는 어떤 게 기억나?

당고: 비혼 PT라는 행사에 참석했었어. ‘나의 비혼이나 내가 비혼을 선택한 이유이런 주제로 다양하게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와서 다 같이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행사야. 그때 당시에는 한 열 몇 팀 참석하셨던 것 같아.

이브리: 당고도 거기서 발표했어?

당고: 발표를 하진 않았고, 그냥 친구들이랑 같이 가서 참석을 했지. 홍대에 있는 산울림 소극장 근처에 소극장 같은 데를 빌려서, 그런 공간에 쫙 둘러앉아서 연극 보듯이 앉아서 프레젠테이션 하고, 또 객석에서 질문 있으면 질문을 하고 그런 식으로 소통했던 것 같아. 비혼을 지지하고 지향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임파워링 하는 차원에서 대화가 오고 갔던 자리였던 것 같네.

이브리: 그 행사가 뭔가 도움이 된 것 같아, 당고한테?

당고: 당연히 도움이 된 부분이 있지. 또 나한테는 거기에서 발표한 사람들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 나랑 같이 참석했던 친구들이 중요한 거지. 이전까지 몰랐던 행사 주최자나 발표자와는 개인적인 관계가 없지만, 친구들은 내 커뮤니티 구성원들인 거잖아. 그리고 거기에 갔던 사람들과 그 행사를, 우리끼리 바이럴을 하는 거지(웃음). 확대 재생산을 하는 거야. “그때 그랬지?”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객석에서 나왔던 그 질문은 좀 아닌 것 같지 않아?”라든지. 뭐 그런식으로 이야기하면서 비혼에 대해 계속 이야기할 수 있는 어떤 계기나 창구 같은 게 되는 거고, 우리는 어쨌든 서로 비혼을 지향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을 하는 거고. 또 비혼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우리 말고도 있다는 것도 확인을 하는 거야.

 

 비혼 PT 나이트(2011) 웹자보.

자료출처: http://actiontoday.kr/archives/8059

 

당고: 그런데 그러면서도계속 의심하는?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사람들 나중에 다 결혼하지 않을까?’ 약간 이런 의심이 있었어(웃음). , 다는 아니겠지만. 이건 완전 농담인 거지만, ‘참가자들을 다 리스트업 해놔야 돼, 몇 년 후에 호구조사를 해보면 다 결혼해서 리스트에서 지워질 걸?’이런 식의 이야기도 하고(웃음). 실제로 뭐, 거기 왔던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지금은 결혼한 사람도 많이 있고. 그때도 완전히 신뢰, 아니 신뢰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어쨌든 ‘이 사람들 다 비혼으로 살 거야' 계속 이렇게 생각했던 건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정말 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뭘 선택하느냐가 중요해지는 거지.

 

문득 몇 년 전, 비혼을 검색하다가 언니네 네트워크 홈페이지에 들어갔던 내가 떠올랐다. 그 시점에서 비혼 운동 전체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니네 네트워크에서 진행하던 비혼 운동은 절정기를 일단 지난 느낌이었다. 많은 자방(*’자기만의 방의 줄임말, 언니네 네트워크 사이트에 개인의 공간을 만들어 글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으로 일종의 공동 블로그와 비슷했다)’들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마지막 업로드 날짜가 1년 이상 이전이었고 각종 비혼 관련 행사 공지들도 이미 끝난 지 반년이 넘게 지나서, 나는 마치 잔치가 끝난 뒤에 잔칫집에 도착해버린 사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한때 활기 있던 운동과 연대의 흔적을 보며 나는 지금 그들이 어디선가 비혼인 채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지만, 그때 그런 생각은 나 또한 그럴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고, 50, 60대를 넘어서도 비혼으로 살아갈 미래를 상상할 때 들던 막연한 울렁임도 덜어주었다. 그 잔치가 계속되는 시간 또한 많은 의심과 불안이 교차하는 와중이었을 수도 있다는 건, 그때의 나는 떠올리지 못했다.

 

새삼스럽지만, 그러면 비혼은 뭘까? 흔히 비혼(非婚)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 미혼(未婚)에 대비해 결혼하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미혼이라는 말에 성인이라면 당연히 결혼해야 한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면, 비혼은 결혼이 인생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이며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숙하거나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주류적 가치관에 도전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비혼은 단지 결혼하지 않은 삶도 결혼한 삶만큼이나 동등하게 가치 있다는, 그러므로 개인은 자유롭게 결혼과 비혼을 선택하면 된다는 그런 이야기일까? 결혼을 둘러싼 그 수많은 권력과 압력과 정치가 존재하는 이 세상은, 과연 우리가 자유롭고 평등한, 서로 다르지만 동등한 선택지들을 비교하며 자유롭게 고르는 사치를 누리도록 허락해 줄까?

 

 

사진출처: 경향신문 기사 "누가 저출산의 주범인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3041401011&code=940100

 

<링크> [한겨레] 결혼 안 한다고 차별 말라비혼여성 정치세력화 외침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258386.html

 

◆ 비혼답이다?

당고: 어떤 비혼주의자들이 말하는 비혼주의는 결혼이라는 선택만이 답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혼이라는 선택지도 있어요.’ 뭐 이런 거지. ‘결혼이 아니고 비혼이 답이다이렇게 얘기하고 싶진 않았던 것인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욕 먹을까봐 표현을 안 한 건지, 그런 건 알 수 없지만. 그런데 비혼이라는게 뭔지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일단 지금의 결혼이라는게 뭔지를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런 세상이 아니면 결혼 할 수도 있겠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렇지만 지금은 가부장제 하에서의 결혼밖에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결혼은 다 가부장제가 있은 이후의 결혼인 거잖아.

이브리: 글쎄, 동성 결혼 같은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당고: . 어쨌든결혼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결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가부장 제도로 들어가는, 일종의 뭐랄까

이브리: 통로일까?

 

이미지 출처: 언니네트워크(http://www.unninetwork.net/?p=1327)

 

당고글쎄. 통로라기보다는, 그냥 나는 결혼은 그냥 가부장제 그 자체라고 생각해. <결혼 제국>이라는 책도 있지만.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해도 여성혐오자일 수 있지. 우리는 여성혐오 사회에 살고 있고, 가부장제 아래에서 살고 있으니까. 가부장제의 희생자든 동조자든, 그런 여성들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럼에도 결혼을 한다는 것은 가부장제로 들어가는 어떤 확실한 증거이자 가부장제적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생각해

이브리: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어?

당고: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보편적으로 결혼이란 건 어쨌든 개인 간의 결합이 아니라 양가의 결합 같은 느낌이 들잖아. 그런 데다 심지어 그 양가의 결합이 평등하지도 않아. ‘시가시집이 아니고 시댁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 , ‘시집살이라고 할 때는 시집이라고 하지만, 보통 기혼자들은 남편 쪽 가족을 다 시댁이라고 부르거든. 그리고 나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사람도 다 그렇게 부르는 걸 되게 많이 들었어.

이브리: 시댁에 일 도우러 가고, 시부모님 깍듯이 모시고 뭐 이런 걸 말하는 거야?

당고: 뭐 깍듯이는 아니고 욕을 하든 어쨌든 간에, 끌려가는 거지. 그런데 그러면서도 시댁 가야 돼, 시댁 가서 제사 지내야 돼.’ 이렇게 (높임말로) 말을 하고. 명절 때 시댁 가야 되고, 시부모 수발 들어야 되고, 봉양해야 되고, 그런 부분들이 여자의 원가족에 하는 것과 남자의 원가정에 하는 것이 너무 다르잖아. 그게 불균형함을 너무 알고 있음에도, 내 주변의 결혼한 사람들은 거의 다 그렇게 하는 걸 봤어. 사실 그렇게 안하면 정말 큰일 나고. 이미 결혼을 했는데 그걸 끊고 나온다는 것 자체가, ‘너 그럴 거면 결혼은 왜 한 거냐이렇게 도돌이표가 되는. 그런 부분이어서. 그렇게 엄청 불균형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선택하고, 계속 매일의 일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매해의 일상, 매 분기의 일상이라든지 그런 데서 계속 반복이 되는 거잖아.

물론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모든 차별에 저항하고 모든 성차별에 저항할 수 없는 거지. 그런데 뭐, 내 경우는 회사라거나 그런 곳에서 성차별이나 성희롱적인 일에 저항하는 것도 되게 바쁘고 힘들어. 그런데도 저항하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고 난 생각하거든. 그런데 결혼하면 그런 가부장적 억압과 불평등이 사생활에서도 계속 일어나는 거잖아.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남편)과의 관계나, 그 사람 가족과의 관계를 위해서 그런 부분을 많이 수용해야만 하도록 만드는 게 결혼이잖아. 난 그렇게 차별적인 제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을 한거지.

그런 면에서, ‘(내가) 페미니스트니까, 남성 우월적이고 남성의 권력이 불균형하게 더 큰 가부장제 하에서의 결혼을 거부해야겠다, 저항해야겠다, 그리고 그런 라이프스타일로 살지 말아야겠다,’ 그런 게 비혼이라고 생각해, 나는. 그냥 결혼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 되어서 못했다거나,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냥 결혼을 안 하고 있었다는 그런 걸 비혼주의라고 보지 않아. 내가 비혼이라고 했을 때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부하는, 또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의미를 두는 결정으로 비혼을 선택한 거고. 사실 난 결혼을 충분히 선택할 수 있었는데 안 한 거거든.

사실 이런 걸 말하기에 비혼이라는 말이 적절한지, 혹은 내가 좋아하는 단어인지는 확실치 않아. 왜냐 하면 내가 비혼이라는 말을 만든 게 아니고, 비혼을 이야기는 흐름이 있어서 나도 편승하고 그냥 비혼주의’ ‘비혼자뭐 이렇게 말한 거니까. ‘비혼미혼이라는 말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을 하니까 선택한 건데, 사실 나는 과거에 쓰던 독신(獨身)’이라는 말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 물론 독신이라는 말이 부적절하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지. 결혼 안 한 사람이, 그러니까 비혼인 사람이 다 혼자 있는거냐, 동거라든지, 다양한 대안 가족 혹은 생활공동체가 있을 수 있는데 비혼이라고 다 혼자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 라고 반론을 할 수 있다고 봐. 하지만 나는 비혼이라는 말이 없다면 그냥 독신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비혼주의보다 오히려 독신주의라고 쓰고 싶기도 해.

이브리: 그건 어떤 이유에서?

당고: 그냥 같이 누군가와 함께 하더라도, 동거를 하든지 다른 공동체를 꾸린다고 하더라도, 혼자라는 거, ‘혼자 몸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이브리: 그러니까, 설령 동거를 하더라도 혼자만의 공간을 지키는 걸 중시하기 때문이야?

당고: 그건 아니고, 정신적인 면에서. 공간은 뭐 원룸에 둘이 살고 늘 같은 방에, 침대 하나밖에 없어서 맨날 붙어있고 이런 거는 난 상관이 없어. 그런 걸 못 견뎌하는 사람들도 있지. 그런데 나는 굉장히 외향적인 사람이라 나만의 공간이 꼭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진 않거든? 그런 식의 공간적인 문제보다는, 그냥 물리적인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하나하나의 개인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지금은 사회적으로 계속 커플을 인정하려고 하지. 동반자법이라든지, 동성 결혼이라든지, 그러니까 결혼이 아닌 다른 제도적인 바운더리로 커플을 계속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있잖아. 그런 것에 대해서 사실 개인적으로는 별로 반갑지 않아. 독신인 사람들을 더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는 거지. 그런 느낌으로, 난 사실 독신이라는 말도 좋다고 생각해.

이브리: ,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도 독신이라는 말이 좋아져.

 

홀몸으로. 홀가분하게. 몸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남의 손을 빌리고, 타인과 부대끼고 부딫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독립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지만 귀가 얇은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과 독립된 마음이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에 관해 의문이 들었다.

 

◆ 결국 다 결혼한다니까. 그런데 도대체 왜?

이브리: 그런데 있지, 당고가 예전에 비혼 관련 행사에 참가하거나 비혼주의자인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주위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졌다고 하지 않았어? 잘 모르는 비혼 행사의 발표자야 나중에 결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거지만, 만약에 당고의 가까운 친구가 결혼을 하거나 그런다면 좀더 뭔가 힘이 빠지는? 그런 게 있었다고 말한 것 같은데.

당고: , 그렇지.

이브리: 그건 어떤 면에서?

당고: 일단 2006-7년경 비혼에 대해서 처음 고민하기 시작할 때는, 나는 이성 애인이 있고, 그 애인은 비혼주의자가 아니었어. 애인은 그냥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내가 비혼을 주장한 거야. 그러니까 서로 결혼을 안 하는 게 두 사람 간의 합의가 아니고, 내가 안한다고 버텨서 못 하는 느낌인 거잖아. 그래서 비혼이라는 걸 내가 계속 밀고 나가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할 때, 당연히 롤모델 같은 걸 찾게 돼. 그래서 운동권 커플들도 막 보고, 예를 들어 동거 커플들, 특히 이성 커플인데 동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되게 유심히 보게 되는 거지. 그런데 결국에는 다 결혼을 하더라고. ‘결국 결혼 할 거야, 우리도. 우리는 롤모델이 없어막 이렇게 한탄을 했지. 사실 롤모델이야 없으면 없어도 상관이 없는 건데. 그때는 내가 아직 20대였고, 뭔가 앞서 간 사람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있었어, 살짝. 그래야지 그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고. 그런데 주변에서 누구랑 누구는 되게 오랫동안 동거했는데 결국 결혼했잖아.’ 이런 식의 얘기를 하면서 되게 힘이 빠지고, ‘우리는 그러지 말자,’ 이런 얘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 그런 이야기를 같이 나눴던 친구들도 결국 결혼했어, 최근에. 비혼을 강력하게 표방하면서 활동했던 여성주의 활동가라거나 그런 친구들도 결혼을 했고, 그게 올해였어.

주변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난 별로 크게 반응을 안했어. 내가 쿨해서 그런 게 아니고, 과거에 그런 것들을 이미 겪어서 그랬겠지. 되게 힘빠지는 건 확실히 있어.

이브리: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당고의 친구들 중에서 결혼하는 한때의 비혼주의자들이 있었던거네?

당고: 그렇지, . 그러니까 과거부터 겪어서, 내가 요번에 어떤 지인이 결혼하면서 다른 비혼주의자 친구들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는 그런 반응을 했을 때 "아유 뭐, 할 줄 알았잖아" 이런 식으로 말했다니까. "어휴, 다들 결혼 해. 너도 결혼할거야." 같은 거. 약간 그냥농담으로 넘겼던 것 같아. 더 이상 그것에 대해서 힘이 빠지거나 상처받는 수준은 아닌 것 같고, 그 레벨은 이미 넘어 선 거야. 과거에 비혼주의자라고 하다가 결혼하는 지인이 너무 많았으니까. 화내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그냥 나는 내 갈길 가고 걔네는 걔네 갈길 가고. 약간, 중간에 또 내가 좀 운명론자가 되어가지고. ‘걔넨 결혼할 운명이었나보지. 팔자가 그런가 봐.’ 라고 생각했다(웃음).

이브리: 그런데 있잖아, 비혼을 표방하다가 결혼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는 주류와 다른 결혼 문화를 만들어 보일 거야.’ 이렇게 설명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예를 들어서 나는 시부모님과 우리(여성 쪽) 부모님을 똑같이 대접할 거야혹은 나는 명절에 시댁에 안 갈 거야이런 거. 그게 잘 되고 안 되고는 나중 문제라 쳐도, 어쨌든 나는 다른 문화를 만들어 볼거야, 다른 가정을 꾸려 볼거야, 그게 내 저항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결혼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거든.

당고: 그런데, 결혼이라는 게 뭘까를 일단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그 사람들은 왜 결혼한다고 생각해, 이브리는? 그러니까, 다른 결혼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결혼하는 사람은 없을 거 아니야. 결혼하고 싶은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결혼은 하고 싶지만 난 페미니스트야. 결혼에 여성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인 면이 있음을 알아. 그런데도 결혼을 하고 싶으니까, 변명이라는 말은 부적당할지도 모르지만 어떤나는 결혼이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건데, 대신 개선을 할 거야라고 말하는 거잖아. 그러면 원래 그 하고 싶은 이유는 뭐냐고.

 

듣고 보니 확실히 그랬다. 결혼이라는 게 너무 싫거나, 어쨌든 굳이 결혼하고 싶은 욕망은 없는 사람이 이 한 몸 불살라 불평등한 결혼/가정 문화를 바꾸기 위해 억지로 희생자처럼 결혼하는 경우는 없거나, 적어도 심히 희귀한 케이스일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결혼이 자신이 한때나마 가졌던 가치관에 충돌하더라도 꼭 결혼을 하고 싶다는 그 진짜 이유는 뭘까?

사람들이 결혼을 왜 원하는지가 이해가 안 되는 지경에 이르른 나로서는 추측, 아니 억측해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나라고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다. 확실히 이십대 초반의 나는 결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왜 그랬더라드라마 여주인공이 결혼하는 장면에서 행복해 보여서였나썸타던 여자가 우리 나중에 남자랑 결혼하면이라고 말해서 열 받은 나머지 야 그래! 내가 너보다 먼저 결혼해서 애도 먼저 낳아서 보여주마!’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브리: 내가 그런 욕망을 지금 가진 사람이 아니라서 추측일 수밖에 없는데

당고: 그래, 그 추측이 궁금해.

이브리: 그냥 그 관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크지 않아? 특히나 동성 간 커플들이 그런 것 같아. 그러니까, 나는 이성 커플하고 달리 무서워서 길에서 손도 못 잡고 다닌다같은 말을 할 때가 있잖아. 이성 간 커플이 하는 애정 표현을 당당하게 못하는 게 현실인데, 결혼을 하면 마치 사회가 나를 인정해 주는 느낌이 들고 이성애자들이 누리는 걸 누리며 살 수 있겠다는 그런생각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또 많은 경우는 그게 특히 경제적 이유이지 않아? 다들 사랑이 아니라 경제적 동기로 결혼하면 굉장히 나쁜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경제적인 이유가 되게 크잖아. 남자 여자 불문하고 상대방 연봉이나 상대방 집안 재산 수준이 결혼할 때 굉장히 중요하잖아.

당고: 그렇지만 나는 결혼해서 불평등한 결혼 문화를 바꿀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경제적 이유로 결혼하지 않을 것 같고, 설령 실제로 경제적 이유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걸 인정하지 않을 것 같거든?

이브리: 이건 또 순전히 내 상상이지만, 나는 그 결혼하는 이유가 불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사회적 불안이나 경제적 불안정만 말하는 게 아니고, 애정의 불안도 포함해서. ‘결혼을 안 하면 언젠가 이 사람하고 헤어질 것 같은데?’라는 그런 거. 지금 너무나 좋아하니까, 결혼하고 도장 찍으면 그게 애정을 보장해주는 게 아닌데도 마치 영원히 함께할 것 같은 그런 느낌에 매달리는 것?

당고: 나는 모르겠어. 사실 (비혼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결혼할 때,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갖고 싶은데, 결혼 말고는 답이 없잖아. 그리고 이 남자가 너무 좋은데 결혼 안 해 주면 이 남자는 날 떠날 거잖아.” 그런 이야기는 안 해. , 내 앞에서만 그런 욕망을 숨기는 것일 수도 있겠지. 내가 비혼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니까. 굳이 나한테 와서 그런 걸 말하기보단 그런 결혼의 욕망을 인정해줄 만한 다른 사람한테 말하겠지.

어찌 됐든, 그런 욕구가 있는데 숨기고 있는 어떤 여자가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내 경험상 그런 여자가 결혼으로 가게 되는 되게 큰 계기는 남자가 결혼 하자고 졸라서야. 그러니까 내 주변엔 그런 일이 되게 많았어. 여자 쪽은 별 생각이 없고, 그냥 결혼 안하고 평생 살아도 될 것 같다고 하는 거야. 이건 내 친구들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몰라. 실제로, 최근에 결혼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을 때 그렇게 나온 기사가 있더라. 여자들은 결혼을 안 해도 상관없다는 비율이 높은데 남자들은 꼭 결혼해야 된다라는 비율이 더 높은 거고.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여자들은 더 적잖아. 그러니까 그런 생각 차이는 어떤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인거 같아, 성별의 비율은 살짝씩 달라지겠지만.

 

링크: [기사] "여자보다 남자가 '결혼은 필수'란 생각 많이 해"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121211100977235

  

당고내 생각에 남자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데, 왜냐하면 자기들이 이득이 많으니까. 결혼은 남자한테 더 유리한 제도고, 가부장적이고, 남녀 차별적인 제도라는 게 그런 데서도 드러난다는 생각을 해. 그건 현실이 보여주고, 사람들의 선택이 보여줘. 실제로 난 남자가 결혼을 조르고, 여자 쪽이 그런 남자에게 이끌려서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케이스를 되게 많이 봤어. , 그 여자 속을 들여다 보면 이브리가 말한 것 같은 그런 애정에 대한 불안이라는 동기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내가 굳이 긍정해 줘야 하나, 그분들의 그런 욕망을? 나는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하고 별로 그들의 욕망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지. 그 결혼 제도를 통해서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하건, 아니면 애정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를 하건, 거기에 대해서 내가 나서서 비난하지는 않겠지만 별로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이제, 결혼제도를 바꾸겠다, 쉽게 얘기해서 결혼제도 안에서 투쟁하겠다는 것은, 글쎄. 다시 돌아가서 투쟁이고 저항이고 이런 것 빼고 결혼을 하려고 하는 원래 이유가 뭘까? ‘좋아서,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결혼한다뭐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 고전적으로 집에 따로 가기가 싫어서 결혼한다라든지. 그런데 말이야

이브리: 집에 따로 가기 싫으면 같이 살면 되지 않아? 결혼을 하지 않아도.

당고: 내 말이 그거야. 그러면 그냥 같이 살면 되는 거잖아? 결국 결혼할 때 사회적인 인정이 중요한 거라고 했을 때는 그 사회적 인정은 제도적인 거지. 정말 제도적인 거야.

그러니까 형식이 있고 내용이 있다고 했을 때, 제도적인 사회적인 인정이라는 것은 정말 형식이라고 생각을 해. 그럼 그 안에 내용이 있잖아. 그런데 결혼이라는 형식이 그렇게 아무 내용이나 채울 수 있는 그런 걸까? 결혼이 형식이고, 겉껍질이고, 그럼 그걸 뭘로 채울까라고 생각했을 때, 그 내용은 그냥 가부장적인 결혼 생활인거야. 그거 말고는 채울 수 있는 게 없어. 왜냐하면 애정은 굳이 결혼이 아니더라도, 연애나 동거라는 형식으로도 채울 수 있잖아. 그런데 그건 아닌 거야. 그러니까 결혼을 통해서 추구하는 건 결국은 제도인거야, 형식인 거고. 그러니까 그 형식이 중요해서 결혼을 하는 건데, ‘그 안에서 내용만은 바꾸겠다는 주장은 약간 모순이라고 생각해, 사실. 왜냐하면 그건 세트라고 보거든. 결혼이라는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긍정도 부정도 아닌 완전 깨끗하고 가치중립적인 빈 틀이 있어서 그 내용은 우리 마음대로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내용과 형식이 일치되는 게, 가부장적이고 여성억압적인 내용을 담으라고 만들어진 형식이 바로 결혼이야. 그게 떨어진 결혼이라는 건 나는 없다고 생각해, 사실. 동성 결혼은 다른 결과 맥락이 있지만그것도 같은 질문은 던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같이하고 싶고, 애정을 확인하고 싶고, 우리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고 영원 불변한 탄탄한 관계를 가지고 싶고, 그걸 왜 그 결혼이라는 제도로 해결하려고 하느냐, 라고 질문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결혼이라는 형식이나 제도로 내 애정 관계를 공고히 하고, 보장을 받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소위 결혼적령기를 지난 비혼자나 결혼의 테두리 밖에서 성생활을 이어가는 사람, 특히 여자에게 따라붙는 한국 사회의 낙인은 효과적으로 회피하면서 어쨌든 결혼을 통해 결혼문화를 개혁하겠다는 명분과 진보성은 가져가겠다? 글쎄, 나도 그런 사람들에게 잘해보라고 진심으로 웃어줄 만큼 넓은 마음은 못 된다. 하지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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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참여 - 당고, 이브리

*녹취 정리 및 글 작성 - 이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