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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호] 아무거나

[특집] 7월의 어느 날 진행된 좌담회 3호 : 바이가 바이에게 궁금한 몇 가지? -2-

좌담 참여자: 낸시, 다리아, 시브, 아서, 영영이, 이브리, 잇, 주누  


바이이다/바이가 아니다


낸시: 저는 레즈비언이라는 말도 굉장히 반발심이 생기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그러니까 뭐…  어디 사적인 자리에 나가서 레즈비언 농담 같은 것을 하는 걸 좋아하고, 듣는 걸 좋아하고, 그게 공유되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걸 되게 좋아하는데, 그런걸 하다가 어느 순간에 상대방이 저를 지칭할 때 레즈비언이라고 하면 굉장히 반발심이 들어요. 한동안 되게, ‘나는 왜 이렇게 바보같이 촌스러운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어요.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왜 레즈비언이라는 말을 듣는 것에 반발을 느낄까, 그럴 필요는 없지 않는가 이런 것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문제는 저는 여자친구가 레즈비언인데, 퀴어문화축제를 사귀게 된 날 처음으로 같이 갔어요. 그때 레주파 부스에서 보이스 커밍아웃을 하는데, 제가 바이섹슈얼이라고 하고 여자친구도 그냥 얼떨결에 바이섹슈얼이라고 한 거예요. [모두 웃음] 나중에 좀 지나가지고, 자기(여자친구)가, ‘아 그때 나는 내가 바이섹슈얼이라고 하긴 했는데 나는 바이섹슈얼은 아닌 거 같애’ 이러는 거예요, 저한테. 그래? 이랬는데, 뭔가 그런… 제가 바이섹슈얼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도 때때로 저를 레즈비언이라고 지칭을 하고, 대화 중에요. 또 여자친구가 주는 어떤 압박 같은 게 있어요. ‘너는 레즈비언이지?’ 이런. 막 꼭 ‘너는 레즈비언이잖아’ 라고 얘기하지는 않아도,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그러니까, 바이섹슈얼이라고 제가 거기에서 얘기하기는 되게 이상하고 근데 ‘나는 바이섹슈얼인데 레즈비언이라고 하지 마,’ 라고 하면 그 상황이 되게 좀 어색해지거든요? 제가 그렇게 행동하는 게 굉장히 과잉된 것 같고, 별것도 아닌 일로 그런 사람이 된 것 같고, 그런 걸로 싸우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그런 때가 있는 것 같애요.

다리아: 되게, 그거. 뭐지? ‘나는 여자를 좀 더 좋아한다’ 이런 거. [모두 웃음] ‘동성을 좀 더 좋아한다’ ‘이성을 좀더 좋아한단 말이야’ 이렇게까지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도….

이브리: 상대편이요?

다리아: 그런 경우도 있고 제가 먼저 그, 뭐지 주류 사회에 편입되기 위한 방법으로 그런... 오해,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여자랑 사귀는 게 좋고, 나는 그런 바이섹슈얼이야’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거든요? 그런 기억이 있어요. [낸시에게] 그 여자친구가 (낸시 님이) 레즈비언이길 되게 바란다고 하는 거잖아요.

낸시: 네. 그런 거 같아요.

다리아: 너는 여자를 훨씬 더 좋아하는 바이였으면 하는 그런 강한 마음.

낸시: 네. 절대 남자한테 끌림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거겠죠.

다리아: (남성에게 끌림은) 한 1, 2% 정도? 막 이런 거. [웃음]

낸시: 그러니까, 저는 트위터를 하는데, 트위터는 바이오(프로필)에 자기 소개를 하거든요. 퀴어 분들 같은 경우는 거기에 정체성을 명시하기도 하는요. 제가 본 경우 거의 자기를 바이섹슈얼 여성이라고 정체화하는 분들이었는데, '바이섹슈얼' 하고 ‘L(레즈비언)에 더 가까운 바이섹슈얼’ 이렇게 (부연을 해요). [몇 명 웃음] 그런데, 그 반대는 저는 절대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이브리: ‘이성애자에 더 가까운 바이섹슈얼’….

낸시: 네, 그게 없는 거예요. 남자도 좋고 여자도 좋고, 뭐 예를 들어서 여자 70% 남자 20% 이렇게까지 하는 경우도 봤고. 그러니까 그런 설명 자체가 개인의 어떤 느낌이라면 그렇게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 반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게 꼭, 계속 증명해야 되는 것처럼. 내가 여자를 더 좋아하니까 바이섹슈얼이고 그래서 나는 퀴어고 여기에 이렇게 이 (퀴어의) 주류 사회에 편입을 할 수 있고, 약간 이런 식으로.

다리아: 이성애자에 가까우면 굳이 바이섹슈얼이라고 정체화하지 않는 것 같아요. ‘스쳐가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거나. 대부분, 여자 같은 경우는 ‘여자들은 여자를 좋아하니까’ (라고 생각하거나). ‘걸크러쉬’라는 그 단어가, 저는 사실 지양하고 싶은 단어인데 자기를 바이섹슈얼로 정체화할 필요가 없는 거죠. 남자의 경우는 모르겠어요, 저는 남자가 아니라서. 그렇지 않을까요?

낸시: 예전에 처음으로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곳에 갔는데, 그 단체가 레즈비언 운동 단체였어요. 제가 간 자리가 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었고요. 가기 전에 문자가 온 거에요, 그 단체에서. 여기 이성애자 분이 참여하고 싶다고 하는데 어떤지 의향을 묻는 거에요. 그래서 ‘뭐지 이거? 당연히 괜찮은 거 아닌가?’ 저는 그랬어요. 그런데 나중에 또 문자가 왔는데 싫다는 분들이 더 많아서 그 (이성애자) 분이 못 오게 된 거에요. 저는 더 겁을 먹어서 (웃음) ‘뭐지? 내가 가면 (내가 가도 괜찮을까?)’ 이렇게 된 거에요. 첫 모임에는 여자친구 이야기만 하면서 남자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고. 그런데 몇 번 나가다 보니까 바이섹슈얼여성이 되게 많은 거예요, 레즈비언 모임인데. 그런데도 그걸 모임 초반에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고 ‘사실은 바이섹슈얼인데요’ 하니까 ‘저요’, ‘저요’, 이런 식으로 되는. 눈치게임처럼, 그렇게 되더라고요. [웃음]

다리아: 만나는 사람에게 바이섹슈얼이라는 이야기를 하기가 쉬우세요?

낸시: 저는 제가 다니는 학교에 어떻게 하다 보니까 성소수자 분들을 알게 되어서 대화를 하는데, 두분 다 바이섹슈얼 여성인데 남자친구와 현재 연애 중이에요. 그런데 커밍아웃을 하는데, 남자친구가 이런 성소수자 인권 활동, 퀴어퍼레이드 같은 곳에 가는 걸 꺼리고, 그것에 대해 (남자친구에게) 설명하기 힘들다는 거에요. 말 꺼내는 자체가 힘들다고.

이브리: 남자친구가 퀴어혐오가 있는?

낸시: 그리고 그러면서도 좀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데 갔을 때, 바이섹슈얼인데 지금 남자를 사귀고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에 끼어들지를 못하겠다는 거죠. 안 그런 경우도 많겠지만 대부분 그럴 거 아니에요, 자기의 동성 연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거기서 있던 일들을 이야기할 텐데 가만히 듣게 된다는 거죠.

다리아: 퀴어퍼레이드엘 갔었는데, 어쩌다보니 회사에 아는 분들이 게이, 레즈비언 커플이었어요. 그래서 레즈비언 친구의 여자친구까지 4명이 같이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제가 들러리 같은 거에요. 퀴어퍼레이드에서 퀴어란 이름으로 묶이는데 ‘레즈비언 소리 질러보세요!’ 이럴 때도 바이는 안 나오는 소거에요. ‘왜 바이는 애기 안 해?’ 부각되지 않는 거죠. 항상 QIA(퀴어, 인터섹스, 에이섹슈얼)처럼 저 멀리 놔두는 존재인 거에요. 부스도 (B, Q, I, A관련 부스 같은) 그런 거 한 개도 없잖아요, 여성주의는 있어도. 조금 언저리, 들러리 같다는 생각이. 남자친구에게는 인권운동한다고 하고 갔어요. ‘대학 때 인권동아리 활동했어서 이쪽 친구도 있고 후원도 하고, (그런 활동을) 좋아해’ 하고 설명하면 ‘그래’ 하고 납득을 해요. (남자친구는) 한번도 저를 바이라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아요.

아서: 저도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때 처음부터 ‘나 바이야’ 라고 한 적은 없어요. 제가 라벨링을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여자야’ 라거나 ‘여자를 좋아한다’ 하면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처음에는 저를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나중에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 바이야?’ 하면 ‘음 그렇지’ 대답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일상적으로도 진짜 안 보이는 존재구나 생각했는데 퍼레이드 가서도, 어 레즈비언 게이 다음에 바이도 나오겠지 했는데 안 나오더라구요. (웃음)

다리아: 끝까지 안 나왔어.

이브리: 그러고 보니 아서 님께서 퀴어퍼레이드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나서 그 이야기를 할까요?



불려지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있었다


이브리: 쉬는 시간에도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다시 [웃음]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죠. 퀴어문화축제 가셨던 분들, 지난 축제든 다른 때든 가셨던 분들 경험이나 생각들을 조금 더 이야기 해볼까요.

아서: 저는 사실 퀴퍼(퀴어퍼레이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 이유도, 퀴퍼에 갔는데 바이섹슈얼에 대한 소재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부스도 없고 사회자 발언에도 없고 이런 것 때문이었어요. (바이섹슈얼은) 안 보이는 존재라는 게, 심지어  LGBT 커뮤니티 안에서도 안 보이는 존재라는 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었어요.

이브리: 사실 저희(웹진 바이모임)가 부스를 차린 적은 없지만, 작년까지는 스티커나 명함들을 다른 부스들에 부탁 드려서 배포하기도 했는데요. 무리한 부탁일 수 있어서 다른 부스 분들께 죄송하기도 했고요, 또 스티커와 명함 비치를 거절당하기도 하고. 거절당하면 ‘바이섹슈얼이 싫어서 거절하시는 건 아니겠지? 분명히 그냥 이 부스의 판매 물품이 아니어서 그런 걸 거야, 바이가 싫어서가 아니야!’ 라며 혼자 납득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요. [웃음]

주누: [스티커와 명함을 꺼낸다.] [모두: 우와.]

낸시: 학교에서 알게 된 두 분이, 바이섹슈얼이라고 자기 정체화하는데 지금 남성하고 연애를 해요. 그분들 사정을 들어보니 같이 (퀴어문화축제에) 갈 사람이 없다는 거에요. 남자친구와 가는 게 좀 (망설여진다고). 제 생각엔 괜찮을 것 같았는데, 왜냐하면 헤테로 커플도 많이 놀러 오잖아요. 놀러 오거나 친구들 보러 오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오는데 안될 게 있나 했는데, 그게 당사자들에게는 좀 불편하거나 안되겠다 싶을 수도 있더라고요. 심지어는 남자친구에게 이야기를 안하고 갔다고 하기도 하고, 같이 갈 사람이 남자친구와 연애 중이라 없다고도 하고. 저는 그런 문제 자체를 못 느낀 것에 저 스스로도 놀랐어요. 방금도 놀랐어요.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브리: 같이 갈 친구가 없을 경우요?] 네, 그런 생각을 전혀.

주누: 저도 몇 년 전 (퀴어문화축제 행사를) 을지로에서 했을 때는 그 공간이 해방구 같은 느낌이었는데, 여성인 애인과 팔짱을 끼고 거닐고 있으면 시선을 되게 많이 느꼈어요. “쟤들은 여기 왜?”라는 듯한 온갖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여장을 했는데, 시선이 굉장히 부드러워 지거든요. [웃음] 경계하는 눈빛이 거의 없죠. 신촌(에서 퀴어문화축제 행사를 한) 이후로 사람도 늘어나고 이성애자 커플, 아이 데리고 온 사람이 많아지며 달라지긴 한 것 같지만요. 그 전에는 그 공간은 누군가만의 공간처럼 되어있었는데 거기서 남자와 여자가 팔짱을 끼고 오면 쟤들이 (퀴어가) 신기해서 보러 온 거라는 시선이 있었는데, 여장을 하고 있으면 다르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있으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입장권을 끊은 것 같은 거죠.

낸시: 굉장히 용인되는, 목적을 의심받는 게 아니라.

이브리: 같은 부류구나 하는?

아서: 눈으로 봤을 때 증명이 된다고 할까요, 그런 게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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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arkansascub/2574735958


주누: 2호 웹진 보시면 캔디가 해외에서의 바이섹슈얼 퍼레이드 경험에 대해 글을 썼죠 (링크: http://bimoim.tistory.com/26 ). 그게 부러운 마음도 살짝 있긴 하지만, 부럽다기보다도 우리는 하려 해도 사람이 없지요, 사람이 모여야지 깃발을 들고 할 텐데. 예전에 홍대에서 퍼레이드 할 때 4명이서….

아서: 이번 퍼레이드에 (바이섹슈얼) 깃발이 있기는 했는데요.

이브리: 그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약칭 ‘행성인)’라는 단체에서  LGBT 깃발을 각각 하나씩 들고 행진한 거라고 들었어요. 아, 예전에 홍대에서 퀴어퍼레이드를 할 때 저희가 조그만 바이섹슈얼 깃발을 들고 행진한 적 있어요. 사람이 많이 올 줄 알고 트위터에 같이 행진하자고 홍보를 했는데 4명이서 했죠. [웃음]

낸시: 깃발은 그게. 이번에 사람이 많았잖아요. (깃발이) 의미가 없는 게, 저는 여자친구와 게이친구 같이 갔는데 그 친구가 ‘친구사이’로 가자고 해서 거기서 걷다가 발걸음에 따라 뒤에 있는 퍼레이드카 쪽에 서서 걷기도 하고요. (깃발) 찾기도 힘들고 그런 의미에서 모이기도 어려운 것 같아요.

아서: 모이는 집단이 있는데 여기저기 다니는 것 하고 아예 없어서 다니는 건 다른 것 같아요. 이번에 가서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 하면, 저의 추측인 거지만 퍼레이드 자체만 놓고 봤을 때  LGBT 커뮤니티 내에서도 세력 차이가 너무 확연하게 보이는 거에요.

낸시: ‘친구사이’는 부스도 엄청 크고 완전히 다른 게 느껴졌어요.

아서: 우리 사회의 기본 구조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많이 좀 영향을 미치는 게 보이니까. 성정체성 뿐만 아니라 여성의 입지라든지 경제적,사회적인 여유 같은 것도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브리: 이번에는 여성주의 부스가 눈에 많이 띄지 않았어요?

다리아: 여성주의 부스는 그것대로 분야가 있잖아요.

잇: 그 단체들(여성주의 단체)에도 성소수자가 있고, 축제와 함께하는 많은 여성성소수자가 있다는 것을….

다리아: 갑자기 생각났는데 바이섹슈얼이 연대가 잘 안 되는 게 성별통일성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이는 게이끼리라지만 일반 사회적으로 갖고 있는 남성의 기득권을 인정을 하고 받아들이는 동시에 게이로서의 특성이 함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게이 사회가 크고 잘 되어있는 것이기도 하고. 여성은 여성 나름대로 페미니즘과 플러스되는 면이 있는데. 바이는 그게 아니니까 기본적인, 그런 데서 연대가 안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또 들어요.

주누: 게이 커뮤니티가 특히 그런데, 소속욕이 있거든요. 거기서 연애를 할 수 있다는 그 동력이 되게 큰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다른 정체성의 집단은 다 분위기가 다르죠. 트랜스젠더 관련 커뮤니티도 성별로 나뉘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는데 그 공간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되게 달라요. 그게 레즈비언/게이 커뮤니티의 분위기와 다른 거죠. 거기선 친한 사람끼리 ‘오늘 처음 온 사람 괜찮대?’ 이런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하잖아요. 그게 다음 모임에도 나올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데, 바이들은 모이면 ‘우리의 연애는 왜 이리 힘든가!’ 하고, [웃음] 다음에 안 나오죠.

이브리: 털어놓았기에 홀가분하게 다시는 안 오는 분이 꽤 계시죠. [웃음]

아서: 연애 이야기만 너무 많이 하는 게 저는 불편하거든요. 레즈비언/게이 경우에는 ‘다른 데서는 많이 할 수 없으니까 여기에서라도 하자’, 그래서 (연애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어디서든 연애 이야기를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일단 연애 이야기를 시작하면 정체성도 얘길 해야 하고 (연애 이야기를 할 때면) 비혼이나 아니면 그냥 혼자 있는 것, 싱글인 상태로 있는 것에 대해서 아무 문제의식도 없는 상태로 연애, 성애화된 연애라는 전제를 깔고 가는 거잖아요. 그 전제부터가 좀 되게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많이 있거든요. 그런데 (연애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그것도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순 없으니까.

다리아: 바이섹슈얼끼리 이야기를 하면 굳이 말을 안 해도 되잖아요. 동성애자 중에서도 비혼인 사람이 있을 거고 동성혼 원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만약에 바이들끼리 모여 연애 이야기를 하게 되는 날이 오면…. [웃음]

이브리: 지금 하시면 됩니다. [웃음]

다리아: 전제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으니까, 커뮤니티가 되면.

주누: 사실 레즈비언/게이들의 커뮤니티 모임은 ‘오늘은 꼭 (사귈 사람을) 만날래’라는 분위기가 아니어도 되게 유성애자(sexual) 중심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부분도 있는 거고 이상하게 연애지상주의가 또 깔려있죠. 연애를 해야 정체성이라면 정체성이랄까 본모습을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요. 내 과거에 어떤 사람, 어떤 성별을 몇 차례씩 만났는가에 따라서 [웃음] 증명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고요. (링크: http://bimoim.tistory.com/2 )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다 여기까지?

이브리: 퀴어문화축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요.

아서: 퀴어퍼레이드에 비연애주의에 관련된 담론 등이 좀 포함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리아: 비연애 인구도 분명히 있고 (연애를) 원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브리: 일단 무성애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공간이고요, 퀴어퍼레이드가. 바이섹슈얼도 그렇긴 하지만 무성애는 더, 거기 끼어들 수 없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잇: 성애화된 연애의 경험을 나누고 연애의 욕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성적으로 어떻게 관계/경험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것이 주가 되는 문화가 있다고 느껴요. 축제나 파티에서 즐기는 방식도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하고 내 것 같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성애화되어 있고 거기서 나의 젊고 섹시하고 세련되게 잘 꾸민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은 거죠. 누가 그걸 못하게 제제를 가할 수는 없고, 그것이 다가 아니라 다르게도 놀고 즐길 수 있고 나의 퀴어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그런 ‘다른’ 것들도 필요한데 주류가 아니라고 할까요.

이브리: 그러게요. 무성애자가 아니어도 그냥 연애를 하기 싫을 수도 있는데….

잇: 최근 퀴어문화축제 메인파티 포스터도 해변에서 운동을 많이 하신 것 같은 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잖아요. 젊은 여성만 입을 수 있는 비키니인가? 해변에 갈 때는 운동을 해서 근육을 만들어야 하는가?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을 입어야 하는가?

이브리: 장애 없는 몸으로 보이고요.

잇: 장애 없는 몸, 그리고 퀴어문화축제 파티가 아닌 다른 데서 봐도 무방할 선남선녀 이미지 같기도 해서 파티 자체가 이런가 싶기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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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28062783@N00/169249078


아서: 거기 갔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게이들만 되게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다리아: 항상 그런 자리에 레즈비언은 없잖아요. 심지어 (파티 장소가) 이태원이고.

주누: 누가 준비를 하느냐, 어떤 성별, 성정체성의 사람이 준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때는 올해 적자가 나면 내년에 (퀴어문화축제를) 못하게 되니 적자는 안 되고, 구매력이 있어야 하고, 한국에서 남자 경제력이 짱이지, 그들에게 잘 팔릴 만한 아이템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런 구조인 거죠. 설령 그런 이유를 이해한다 하더라도 바이는 어느 공간에서도 가장 일차적으로 무시될 수 있는 집단인 거잖아요. 집단이라고도 생각 안 했을 거에요.

잇: 한정된 자원으로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 많은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때 ‘꼭 어떻게 해야 한다’ 는 분명한 상이나 매우 뚜렷한 입장 없이는 상대적으로 무난하다고 여겨지는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브리: 제가 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이 거의 없어서 상상만 하는 거지만, ‘수익이 안 나면 내년에 퀴어문화축제를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날 수도 있어’ 라고 했을 때, 만일 바이섹슈얼이 편하게 참가할 만할 파티를 제의했다가 그것이 적자가 난다면, 처음 제의한 사람이 소위 말하는 독박을 써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하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 도란도란 수다는 3편으로 이어집니다. 


*정리-바이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