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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호] 아무거나

[특집] 7월의 어느 날 진행된 좌담회 3호 : 바이가 바이에게 궁금한 몇 가지? -1-

좌담 참여자: 낸시, 다리아, 시브, 아서, 영영이, 이브리, 잇, 주누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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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planeta/6479325377


이브리: 안녕하세요, 이브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모여서 재미있게 놀자는 생각으로 좌담을 기획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어쩐지 긴장이 되네요. [웃음] 여러분은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말씀해 주시고요. 먼저 여기서 불리고 싶은 이름이랑, 여기 어떻게 알고 왜 오셨는지 정도로 간단히 소개를 부탁 드려요.

주누: 주누라고 하고 웹진을 같이 하고 있고요. 오늘 재미있게 얘기하면 좋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박수]

잇: 저는 ‘잇’입니다. 반갑습니다.

낸시: 아, 저는 ‘낸시’고요. 음, 제가 사람들을 이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습관인데, 그게 어떤 의미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습관이라 그런 거니까요. 왜 저러지? 라고 생각 안 하셔도 돼요. 반갑습니다. [이브리: 어떻게 이 자리에 오게 되셨어요?] 트위터에서 바이모임 웹진을 봤어요. 제 기억에는 바이섹슈얼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 드물었던 것 같아요. 저도 바이섹슈얼이고, 이렇게 얘기할 자리가 항상 갖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돼서 오게 됐습니다. [박수]

시브: 안녕하세요, 저는 ‘시브’라고 하고요. 바이모임 웹진은 예전에 웹서핑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어요. [웃음] 웹진 2호 ‘연애’ 편을 무척 재밌게 봤던 기억도 있고요. 또 다른 이유라면,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 자기 성 정체성에 대한 주제가 별로 나오지 않잖아요. 그런 얘기를 할 공간이 별로 없었는데 한번 만나서 얘기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게 됐어요. [박수]

다리아: 저는 ‘다리아’고요. 제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2013년 언저리에 바이모임을 처음 봤어요. 그때 모임 공지를 보고 참석한다고 메일을 보냈었는데, 저 스스로 정체성을 정립하는 게 좀 힘들어서 통보 없이 안 나갔었거든요. 나중에 메일을 다시 보냈는데 없는 메일이라고 해서 그 모임이 사라졌나보다, 이제 바이모임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최근 트위터를 시작했는데 그냥 우연히 바이모임 계정을 봤어요. 그런데 아이디가 ‘bimoim’,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여기가 전에 그곳이구나 하는 찰나에 모임 공지가 올라와서 신청하게 됐어요. [박수]

이브리: 이상하네요, 바이모임의 메일 계정은 바뀌지 않았는데….

다리아: 저한테 메일이 반송됐었거든요. 그래서….

아서: 저는 ‘아서’라고 부르시면 되고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번에 모임에 한 번 나왔었어요. 그 이후로는 트위터로만 보다가, 모임을 한다고 하길래 그냥, 네, 와봤어요. [웃음] [모두 박수] 반갑습니다.

영영이: 저는 ‘영영이’라고 하고요. 구독하고 있는 블로그가 있는데, 거기에 모임 소개가 올라와서 신청을 하게 됐고요. 그리고 저도 퀴어연구를 막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퀴어라는 말이 원래 LGBT를 비롯한 다양한 정체성들을 지칭한다고 하지만 거기에서도 이성애질서나 동성애질서 중심으로 논의되는 그런 것들이 있어서 좀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서 오게 됐어요. [박수]



연애를 할 때 우리는


이브리: 소개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메일로 이 자리에서 특별히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답장에 써주신 주제를 임의의 순서로 하나씩 꺼내볼게요. 꼭 주제에 얽매일 필요는 없고, 듣다가 생각나는 얘기가 있으면 언제든 해주세요. 처음 이야기해볼 주제는 다리아님이 보내주셨습니다. 연애를 할 때 사귀는 사람의 성별에 따라서 주변의 반응이 많이 달라지는 지점과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얘기해보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혹시 뭐 생각나는 경험이라든가, 있으신가요?

낸시: 고등학교 때 주변에 자신이 바이섹슈얼이나, 게이나 레즈비언이라고 얘기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어느 날 게이 친구랑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요. 굉장히 서로 할 말 못할 말을 다 하는 그런 사이였는데, 그날 제가 예전에, 남자랑 사귀었던 건 아니지만 남자와 경험이 있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보통은, 막 레즈비언 섹스 이런 것도 잘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냥 서로 야한 얘기도 되게 잘 했는데, 남자 경험이 있다는 그런 얘기를 하니까 갑자기 이 친구가 ‘아, 그래?’ 이러더니 갑자기 ‘아, 그런데 별로 알고 싶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느낌은 있었어요.

이브리: 아, 만약에 여자친구였다면 ‘더 얘기해 봐라’ 라거나 다른 반응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낸시: 네. 그러니까 그 게이인 친구는 제 여자친구랑도 친구 사이였고요. 서로 뭐, 그런 얘기는 거리낄 것 없이 잘 했는데, 제가 남자 경험이 있다고 하니까 ‘아, 별로 알고 싶지 않다’ 고 하는 거예요. 그런 경우가 있었죠.

아서: 그런 반응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었어요?

낸시: 아, 되게 이상하다. 왜 알고 싶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죠. [모두 웃음] 왜냐하면, 걔는 레즈비언 섹스 얘기를 들었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단 말이에요. 그냥 서로 농담을 하듯이 잘 이야기했어요. 뭐 걔도 데이팅 앱에서 남자를 만났는데 밖에서 뭘 어떻게 하다가 어떻게 됐다, 이런 얘기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이였고요. 그런데 갑자기 그런… 경험을 정확히 말한 것도 아닌데 (이성 간 경험을 암시하는) 그런 뉘앙스로 말을 딱 던지니까, 아 그거 별로 알고 싶지 않다고 바로 끊더라고요.


시브: 낸시 님 경험과 제 경험이 좀 비슷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저는 벽장 속에 있어서 이런 얘기를 거의 안 하거든요? 정말 친한 사이라도 커밍아웃한 친구들이 한두 명밖에 없는데, 저는 그 친구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제가 이런 쪽이다라는 얘기를 했을 때 잘 받아들여줬기 때문에 편견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러다가 실제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됐고요. 그래서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얘기를 하니까, 이 친구들이 엄청나게 캐묻더라고요. 보통은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꼬치꼬치 막 캐묻지 않잖아요? 그 애랑 만나는 게 어때? 경험이 어때? 이런 걸 묻지 않는데,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니까 되게 궁금해 하는 거예요. ‘여자랑 만나는 건 어때?’ 뭐 이런… 얘기가 있어서요. 그거(동성 간 연애)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는구나, 라고 알게 되었던 경험이 있어요.

다리아: 저는 약간 ‘세미 오픈리’로 살았었는데, 사실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먼저 알고 십 몇 년을 살다가 뒤늦게 바이섹슈얼이라는 정체성을 만나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남자친구를 만날 때 주변에 두 번째 커밍아웃을 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보면 동성애적인 환경? 그런 게 있다 보니까, 처음 남자를 좋아하게 됐을 때, 이 얘길 친구들한테 못했어요. 그러니까 지나가는 감정일 거라고 생각하고 차마 말할 수 없었고, 어쩌다가 고등학교 동기랑 사귀게 됐는데, 얘기를 하기는 해야 되니까. CC(캠퍼스 커플)라서 결국 눈에 띄게 될 테니까 얘기를 해야 되는데, 나의 연애를 내가 조롱하면서 친구들한테 얘기하는 거예요. ‘야 요새 누나 남자 만나는데, 근데 걔랑 키스는 좀 아닌 거 같애.’ 뭐 이런 식으로, ‘아무래도 난 여자를 만나야 하는가 보다’ 뭐 이런 식의 얘기를 하면서. 그런데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의 경우는 만난 지 3년 정도 됐어요. 그렇게 연애 기간이 오래되다 보니까 이제는 그런 나의 연애를 조롱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그래서 진지하게 (연애)얘길 하는데, 친구들이 의외로 뭐 그냥, ‘그러면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여 줬어요. 그런데, 게이 애들은 생각보다 되게 쉽게 뭐 그냥 ‘그런가 봐, 너의 사생활이야’ 하는데 레즈비언 친구들은 처음에 좀 서먹서먹하게 굴었어요. 그걸 회복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었고, 여자친구 만날 때는 일반 친구들도 ‘원래 쟤는 저런 애니까’ 하는데요, 그 중에 좀 호모포비아인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처음에 알고는 되게 놀래서 한참 얘기를 안 하다가, 서서히 인정하는가 싶더니 제가 (동성 애인과) 헤어졌다고 하면 진짜 좋아했어요. ‘이제 드디어 헤어진다.’ 그리고 ‘요즘 나 만나는 사람 있다’ 이러면 진짜 표정을 딱 찌푸리고 ‘그거야?’ 이렇게 물어봐요. [모두 웃음] ‘그게 뭔데?’ 이러면, 심지어 한국어로 얘기하지도 않아요. 제가 전공이 좀 특수한 언어라서 그 언어로, “***?” 이렇게 물어봐요. 아예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언어로. 그래서 뭐, 그렇다고 했더니 그러냐고, 더 이상 아예 묻지 않고.

이브리: 혹시 지금 남자친구를 만난다고 하시니까 되게 좋아하진 않던가요? [웃음]

다리아: 아, 지금 되게 좋아해요, 그 친구가. [모두 웃음] 그 친구는 제가 결혼하길 바라는데 저는 이성 동성을 떠나서 비혼주의자라서 결혼을 할 건 아닌데. 어쨌든 그 친구는 그냥 아예 제가 이성애자가 됐다고 착각을 하는데 만날 때마다 주입시키죠. 다음엔 여자를 꼭 만나고 싶으니까,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이브리: 다른 분들은 그런 얘기를 들을 때 어떻게 대응하세요? 예를 들어서, 동성을 만나다가 이성을 만났더니 갑자기 ‘와, 치료됐구나! 축하해!’ 뭐 이런 거요. 애인의 성별에 따라 상대의 반응이 달라질 때 어떻게 대응을 하세요?

낸시: 저 같은 경우는 그때 그렇게 딱 ‘아 알고 싶지 않아’ 하는데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어이가 없더라고요. 어이가 없으면서, 아니 대체 그게 왜 안 알고 싶지? 근데 그거를 그냥… ’아 그럼 얘기하지 말아야겠다’ 라고 결론을 내버렸어, 그 순간에. 그리고 그 다음부터 아예 뭐, ‘내가 남자 경험이 있었지’ 이런 얘기 자체를 하지 않는 식으로 됐던 거 같아요.

시브: 저도 좀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아까 소개 할 때도 친구들이랑 그런 얘기를 잘 안 한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그런 반응들이, 그러니까 온도 차가 느껴지는 반응? 그런 게 있을 때마다 저는 되게 상처를 받잖아요. 그래서 아, 이런 거는 정말 나만 알고 있어야겠고,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여도 얘기를 하지 말아야 되는구나. 그냥 이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또, 주변인들의 반응도 달라지지만, 나 스스로의 반응도 좀 다른 거 같아요. 남자친구를 만날 때는 막 페이스북에도 나 연애 중이라고 올리고, 그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여자친구를 만날 때는 그렇게 못하게 되고요. 왜냐하면 아무래도 나랑 일 관계에 있는 사람들까지 전부 그 페이스북을 보게 되니까. 원치 않는 아웃팅이 될 수도 있고 그래서, 여자친구랑 만날 때도, 남자 친구들이랑은 밖에서 데이트하고 손잡고 다니고 뽀뽀하고 많이 하는데 여자친구랑은 그럴 수가 없죠.

이브리: SNS 계정을 이중으로 관리하는 분들도 있으신 거 같아요. [모두 웃음]

잇: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어느 한쪽의 연애는 없는 것처럼 하거나 감추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이성을 만날 때는 마치 아무도 안 만나고 있는 것에 가깝게 되고 동성을 만날 때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거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바이는 ‘다음에는 여자를 만날 거야’ 라고 항상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것 같다. [모두 웃음] ‘다음에는 꼭 내가 여자를 만날 테니까 나를 지켜봐 줘’, [누군가: 여기서 끝이 아니야] ‘여기서 끝이 아니야’. 내가 여기에서 종결이 된 게 아니라 또 있어.’ 이런 데서 미묘한 피로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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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그런데 나 자신도 좀 달라진다는 게, 사실 저는 여자랑 사귀어 본 적은 없고 제가 좋아하거나 이런 적은 있어요. 그때 제 태도를 좀 생각을 해보면, 남자하고 만날 때는 아무래도 사회에서 이성애자들의 남성과 여성에 주어지는 역할이나 그런…, 뭐라고 해야 하지, 젠더 차이에 기반한 그런 것들이 저도 어느 정도 체화가 되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약간 더 수동적이고, (제가 상대편 남자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두 웃음] 약간 소극적인 경향이 있기도 했었는데 여자를 좋아할 때는 오히려 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되고, 그런 걸 많이 느꼈었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내가 뭘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런 고정관념 같은 게 일단 거기(동성 간 연애)에는 적용이 되는 게 없으니까요. 동성애에 대해서 사실 (사회에서) 얘기가 잘 되고 있지도 않으니까, 그런 차이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주누: 저 같은 경우에는 그러니까, 저는 주로 사람들하고 만나고 활동하는 공간에 순종 이성애자? 가 거의 없어요. [모두 웃음] [이브리: 순종이 뭐야…] 뭐 다른 말이 생각이 안나서.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저는 여자인 친구 애인을 사귀고 있는 상황에서, 이게 단순한 헤테로 관계가 아니야 라는 거를 다른 형태로 계속, 그러니까 뿜어야지 거기에서 소외되지 않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냥 그 공간에선 오히려 헤테로 남성인 사람이 오히려 더 마이너한 [낸시: 가장 마이너한] [모두 웃음] 맞아요, 가장 마이너한. [이성애자 여성보다 마이너한/ 맞아 맞아] 그래서 꼭 그, 누구를 좋아하느냐만을 떠나서 그러니까 내가 수행하고 있는 연애나, 아까 뭐 연애 각본 얘기도하셨는데, 그러니까 그게 꼭 그렇게 따라가지 않고 있어. 뭔가, 비혼이면 비혼이라든가 다른 요소들을 막 가지고 오고, 나랑 애인이랑 같이 앉아서 뭔가 그러니까 다른 식의 무언가를 한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이성애 연애가 아니야 [모두 웃음] 라는 걸 이렇게 보여 주었을 때 멤버십이 생기는 것도 또 있더라고요

이브리: 그렇게 하면 멤버십이 생기는 것 같았어요? 어떤, ‘우리는 퀴어야’ 뭐 이런…

주누: 약간 느껴지긴 해요 [어어…] 약~간.

다리아: 그런데 듣다 보니까 생각나는 게 있어요. 최근에 퀴어 친구들이랑 뭐 이런 얘기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제 남자친구를 굉장히 전형적인 일반 남성의 범주가 아닌 남자처럼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오빠는 분홍색도 되게 좋아하고 헬로키티도 좋아하고 엑소도 좋아하고 막 이런 식으로. 뭐랄까, ‘얘는 그렇게 너네가 생각하는 평범한 남성이 아니야’ 라는 것처럼. 그냥,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고 보니까 되게 이상한 거예요. 걔는 또 그냥 전형적 남성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할까?), 왜 남자친구를 소위 말하는 여성성을 지닌 듯 묘사하려는 걸까. 왜 거기에 걜 자꾸 넣으려고 하지? 이 생각이 최근 많이 들고 있어요.

영영이: 저는 학부 때 연애라서 질문 자체가, ‘남자친구가 있느냐’, ‘좋아하는 남자가 있냐’ 항상 이런 식이었어요.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인 친구들이 많아서요. 그 동성애라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불쾌하다고 표 내는 친구들이었어요. 저도 여자를 사귀어 본 경험은 없지만, 좋아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였는데요. 그런 경험, 고민에 대해서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가 이번에 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그런데 너무 답답해서, 말은 하고 싶은데 말할 곳이 없으니까요. 친구들한테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남자로 소개를 하면서, 이 사람은 같은 학교 사람이고 나이는 동갑이랬더니 친구들이 ‘그럼 군대는?’ 하고 묻더라고요 [모두 가볍게 웃음] 좀 당황스러운 거예요. ‘어 일단은 뭐 공익 판정을 받고…’ 그런 식으로. [모두 크게 웃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얘기할 때면 그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다리아: 예, 모두가 공익이 되죠.

낸시: 거꾸로 옛날에 좋아했던 남자애를 생각해 볼 때, 얘가 너무 전형적인 헤테로 남자애인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납득이 안 가는 거죠. 내가 바이섹슈얼이라고 해서 걔도 바이섹슈얼, 혹은 어떤 퀴어, 그런 면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는데 자꾸 아이, 걔가 이렇게나 헤테로 남성인데 내가 어떻게 걔를 좋아하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니 막 이상한 거예요. 왜 이런 질문을 해야 되지? 그러니까, 제 과거의 경험이나 개인사를 돌아봤을 때, 내가 바이섹슈얼이라고 정체화하기 전의 내 개인사를 돌아보는 게 어느 정도 불가능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고요. 가치관이나, 모든 면에서 내가 너무 많이 변해 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걸 (과거를) 또 다시 복기를 하려고 해 보면 복기가 안 돼요. 지금 가지고 있는 어떤… 나를 설명하는 말로는 또 설명이 안 되는 그런 걸 느꼈었어요. 계속 내가 이렇게, 왜 헤테로 남자였지? (왜 이성애자 남자를 좋아했지?) 그런 식으로까지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바이의 경험을 바이의 언어로 설명하기


이브리: 그러면 그 다음 영영이 님의 질문에 대해서 같이 얘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동성애나 이성애의 질서를 빌리지 않고 바이섹슈얼만의 시각 또는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같이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말씀을 해 주셨거든요. 같이 얘기할 것도 많은 질문인 것 같고, 본인이 그런 고민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먼저 영영이 님께 살짝 설명을 부탁 드려도 될까요?

영영이: 말씀드렸듯이 저는 한번도 저의 정체성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새로운 학교에 가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 있냐고 물어보더니 ‘남자 좋아해요, 여자 좋아해요?’ 이렇게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런 식의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나?’ 하고 그때 처음 생각을 해 보게 됐어요. 하지만 그때는 처음 본 사람이었으니까 믿음이 가지 않아서 남자 좋아한다고 엄청 우기고, 그렇게 끝이 났었는데요. 그 뒤로 이제 또 그런… 식의 사람들을 되게 많이 만나면서 조금씩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얘기를 할 때도 여전히 좀, ‘아 근데 네가 바이인 거 맞아?’ 뭐, 제가 조금 더 여자 좋아했던 경험을 많이 얘기하니까 ‘너는 그럼 그쪽인 거 아니야?’ ‘아직 불확실한 거 아니야?’ 좀 이런 식의 얘기를 들어서. 그런데 또 저도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렇게 계속 뭔가 의심받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좀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시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바이섹슈얼이라고 하면 약간 젠더 퀘스처너리랑 좀 동격으로 보고, 그러니까 그래서 아직 그 둘 중에 누가 좋은지 고르지 못한 그런 상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바이섹슈얼도 그렇고 뭐, 퀴어도 그렇고 동성애도 그렇고, 그걸 딱 정의하는 게 되게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바이섹슈얼은 이래’, 라고 하면, 내가 거기에 안 맞는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잘라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요. 또 뭐, 게이는 이래, 레즈비언은 이래라고 말했을 때도 거기에 포함되지 못하는 개별 인자들한테 되게 폭력적인 것 같아서. 사실은 ‘바이는 이런 거야’라고 정의하는 것 자체도 좀 문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가끔 들기도 해요.

아서: 문제시하는 건, 거기에 대해서 설명할 언어나 논리가 있을 때 가능할 것 같은데요. 일단 그런 거 자체가 없는 상태니까.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자면,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커뮤니티에서도 동성애에 관련된 개념이나 언어를 만들려고 되게 노력을 해서 그걸 알리는 과정을 다 겪고 온 거잖아요? 그런데 바이섹슈얼에서도 그런 과정이 다 있어야 되는데 사실, 뭐랄까, (바이섹슈얼은) 동성애자의 언어로 대충 설명한 부분도 있고, 또 이성애자의 언어로 대충 설명이 되는 부분도 있고 그러니까. 바이섹슈얼만의 언어라던가, 그런 게 좀 확실히, 많이… 거의… 없다고 생각이 들어요.

시브: 언어 얘기 하니까 되게, 저도 공감을 되게 많이 하게 돼요. 저는 젠더 쪽을 공부하거든요. 그런데 여성문제 얘기를 할 때 제일 많이 나오는 게 언어 자체가 중립적이지 않고 이미 남성 중심의 언어라서, 그 언어로 아무리 여성 얘기를 해봤자 결국 그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라는 얘기잖아요. 바이섹슈얼 문제도 비슷한 것 같아요. 이미 그 시스템, 얘기가 진행되는 시스템을 주도하고 있고, 만들어 내고, 거기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동성애라든지 이성애라든지 이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바이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언어나 단어가 없다는 말인 것 같아요.

아서: 혹시 해외의 커뮤니티나 논문을 보시는 분들이 있으면, 그런 데서는 바이에 관련된 단어를 연구한다든지 하는 흐름이나 노력들이 있겠죠?

이브리: 있죠, 많죠. 있는데… 음, 저도 영미권 국가에서 생산된 정보에서 도움을 얻은 적도 있고요. 그런데도, 그것을 번역해서 소개하는 거에 대해서는 좀 고민이 많이 돼요. 그쪽에서 어떤 권위를 빌리는 꼴이 돼버릴 수도 있고. 예전에 ‘논 모노섹슈얼 봇’이라는 트위터 봇의 운영자 중 한 사람으로 있다가 계정을 계폭할 때도 개인적으로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해외 단체의 여러 가지 정의나 용어를 트위터로 소개하는 게, 정말 시브님 말씀처럼 권위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거기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물론 영미권 바이섹슈얼 단체들도 최대한 포괄적이고 비 배제적인 정의와 용어를 고안하기 위해 매우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럼에도 결국 자신들의 맥락에서 진행한 일들이잖아요. 그걸 한국에 그대로 가져와서 쓰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다리아: 커뮤니티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바이섹슈얼들은 딱히 모이려고 애써 본 적이 저는 크게 없다고 생각해요. 모르겠어요, 제가 잘 몰라서일 수도 있는데, 동성애자 커뮤니티는 항상 있어왔고, 이성애자야 원래 있었고, (바이섹슈얼은) 양쪽에서 배척당하는데 어떻게 보면 또 양쪽에 들어갈 수 있어서, 굳이 어떻게 보면 배척 받는 이 정체성을 드러내고 누군가를 모여서 만나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전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다음 까페나 소소하게 몇 개 (바이섹슈얼 모임이) 있었다가도 결국 대형화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없어지는 거예요. 커뮤니티가 부재하니까 당연히 용어가 생길만한 역사도 없는 거고. 이런 (용어나 정의에 관련된) 얘기가 나왔을 때, ‘어? 나는 그럼 바이섹슈얼 아니야? 나는 이런데. 이거 틀린 것 같아’라고 말할 수 있고, 거기에 대해서 대응을 논의하고,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부적절한 정의를) 고치거나 반박할 곳이 없으니까 그런 얘기도 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싶고….

주누: 이를테면 바이섹슈얼이라는 단어를 잘 모르는, 그러니까 이성애 동성애와 나란히 놓아서 양성애라는 단어를 그제서야 알아듣는 사람도 있기는 하더라고요. ‘남자 여자 다 좋은 거야, 그러면?’ [웃음] 그게 사실, 예스도 아니고 노도 아닌 거잖아요, 그게. 그리고 또 그게 단순하게 남성 여성, 둘 중에 하나. 누구의 몸에 끌린다 또는 누구의 정체성에 끌린다고 생각이 안될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다 빼고 자 앉아봐. 우리가 설명을 해 줄게. [모두 웃음] 자 바이라는 게 꼭 남자 여자 둘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같이 좋아하는, 그렇게 앉혀 놓고 설명을 할 수가 없는, 그걸 설명하다 보면은 내가 했던 경험이나 내가 나누고 싶은 감정이 훼손되었다는 생각이 들죠. 상대방과 공유하고 싶은 대화, 공유하고 싶은 경험들이 싹 사라지고 뭔가 되게 딱딱한 언어들과 정의들만 얘기를 해야 되고, 그것도 잘 전달이 안되기도 하고.

아서: 그렇게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랑 사람 자체도 많지 않잖아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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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아모리 플래그
이미지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casizemore/3337483721


주누: 그렇죠. 그런데 아주 가끔씩 그 대화가 나와서, 그 단어가 등장을 해서, 그 얘기를 내가 용기 내서 꺼냈을 때에는 이게 자연스럽게 아 그래서 ‘응… 그래그래 그래서 알았어,’ 까지라도 가면 좋겠는데, 그마저도 안 되어서 자 앉아봐, 내가 설명을 해줄게가 되어버리는 거고. 또 이브리가 말했듯이 그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정해진 어떤 정의들이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아니면 저같은 경우에는 앞서의 웹진에도 글을 썼지만 저는 폴리란 단어를 더 자주 쓰거든요.(링크: http://bimoim.tistory.com/2 ) 그런데 그거에 대해서도 아니 폴리는 이거야, 아니 폴리는 이런이런 사람들이라고, 누구는 빼고 좋아하는 거야 하고 지들끼리 싸우고. 영어 쓰는 자기네들끼리 서로 싸우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거기도 딱 정해진 단어가 없는데 그게 차이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들은 자기들끼리라도 싸울 말이 있어요. [웃음]

다리아: 폴리라는 단어가 다자연애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주누: 폴리섹슈얼. 네 폴리섹슈얼에 대한, 예.

이브리: 폴리섹슈얼이라는 말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세요. [웃음] 여기에서도 설명을 하게 해서 죄송하지만요.

주누: 그러니까 제가 봤던 거기에서는 뭐라고 설명을 하고 있었냐 하면, 폴리섹슈얼은 다양한 성별 좋아하는, 그러니까 논 모노섹슈얼과 비슷한 의미로 하는 일군의 사람들과 폴리섹슈얼이란 남성 여성에 구애 받지 않고 특히나 트랜스섹슈얼 관련한 무언가 그쪽에 끌리는 사람이었는데 그 안에 그 개념을 넣은, 그러니까 남성 여성이 아닌 다른 성별까지를 포함시킨 것을 폴리섹슈얼이라고 하는 사람하고가 싸우고 있는 거예요. 이 정의가 맞다 저 정의가 맞다 하면서요. 이건 그냥 하나의 예시였던 거고, 저번 웹진에 썼지만 전 폴리섹슈얼이면서 폴리아모리라서 폴리 폴리라고…. [웃음]

다리아: 그 글은 봤어요. 그 상황은…. 그런데 바이섹슈얼이라고 하면 폴리아모리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았어요. 마치 당연한 것처럼, ‘너 남자 애인 있으면 그럼 여자 애인도 있어?’ 뭐 이런 식으로? 그래서 뭐,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난 아닌데 마치 (바이섹슈얼이라면 다자간 연애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얘기할 때 좀 불편했죠.

이브리: 저는 오히려 바이섹슈얼은 다자연애‘주의자’ 라기보다는 그냥 바람피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접했어요. [웃음] 바이섹슈얼 얘네는 그냥 한 사람을 진득하게 사귈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분명히 어디 가서 몰래, 뭐라 그러지, ‘부정한 짓을 할 것이다’[웃음] 뭐 그런 거요. [잇: 품행의 문제로 보는. ‘품행이 단정치 못한’ 문제로.] 그렇죠.

다리아: 레즈비언도 바람 피우고 바이도 바람을 피우는데, 레즈비언이 바람을 피우면 그냥 그년이 나쁜 년인데, 바이가 바람을 피우면 그년 바이라서 그렇다고 되는….

주누: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둘이 오랫동안 지긋이 연애를 하는데, 또 각자가 찜방은 가요. 그러니까 찜질방, 그쪽을 가고 원나잇을 하는데, 자기들은 폴리가(다자간 연애가) 아니래. 그런데 바이섹슈얼이라는 이름으로 봤을 때에는, 지금 얘기한 다른 여러 가지가 섞여 가지고 도덕적으로 문란함. 이렇게 찍히기도 하는 것 같아요.

다리아: 그런데 서로간에 합의가 되면 폴리아모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잇: 확실히 항상 어느 한쪽이 되어야만 확실하고, 분명하고, 바람직한 것처럼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동성애자야?’ 했을 때 ‘아니.’ 하면 자동으로 이성애자가, ‘이성애자야?’ 했을 때 ‘아니.’ 그러면 나는 동성애자가 되어버리는 거라서. 그것 안에서는 듣는 사람에게 ‘애매하고 불확실’하게 전달되는 거잖아요. ‘나는 바이고, 바이라는 건 뭐냐면 말이야. 자 잠깐만 들어보면 이해할 수 있어!’ 이렇게 설명을 하기 시작하면 ‘도대체 뭐, 그래서 뭐라는 거야?’, 듣는 사람에게 굉장히 불확실하고 익숙하지 않고, 심지어 불편해 하고 불쾌해 하는 경우까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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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누: 그러니까 영영이 님이 진짜, 키워드로 주셨던 동성애 이성애와 다른 거라고 했을 때, 동성애든 이성애든 나름 정상각본’이라고 불리는 연애의 상이 상정됐거나, 이게 쉽게 상상이 되는데요. 양성애의 연애의 정상각본이 뭐야? 사실 정상이란 단어도 되게 불편하긴 하지만 그것조차 어쨌든 없는 거라서. 더더욱 이게 마치 없는 것처럼, 가짜인 것처럼, 하다 말겠지 같은 거로 보죠.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겠지”라며. 그 정상이 이성을 만나든 동성을 만나든 상관이 없고.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다리아: 하나의 과정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요, 항상. 이성애자였다가 바이섹슈얼이었다가 동성애자. 이런 경로를 되게 (많이 생각 하잖아요). ‘나 바이야’ 그랬더니 ‘야 너 그거 동성애자로 가게 돼 있어. 나도 그랬어’. [모두 웃음]

이브리: 이성애자한테 말하면 ‘넌 이제 이성애자가 되게 돼 있어. 난 알고 있어’. [웃음]

다리아: 이전 호 웹진에서 그런 대사가 있었잖아요. 돌아온 걸 환영한다는 그 말(링크: http://bimoim.tistory.com/35 ). 그 말이 참 폭력이에요, 저는, 되게. 처음에 옛날엔 그 말이 되게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동성애자였을 때는. 그런데 내가 바이가 되고 보니, 그 말처럼 참… 뭔가 반이 비워져 있게 되는 (말이 없어요).

시브: 만약에 그, 뭐죠? [다리아: ‘돌아온 걸 환영해’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그러니까 내가 남자를 만나다가 여자를 만나서 그쪽에서 돌아온 걸 환영해 라고 얘기를 하면 내가 그 남자를 만나면서 나눴던 시간, 감정, 그런 것은 다 부정되는 거고. 그러면 그 남자친구의 입장에서도 나는 걔한테 거짓말 한 게 된 거잖아요. 너한테 진심이 아니었던 거고 너는 그냥 만나고 마는 사이가 되는 거니까. 그런 게 되게….

낸시: 그냥 생각난 건데, 그 바이섹슈얼이란 말 중에 그런 게 좀. 바이섹슈얼, 뭐 격주로 남녀 바꿔가며 만나는… 그런 게 처음에 어디 가서 바이섹슈얼에 대해 생각할 때, ‘아, 그렇지 않아’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되게 멋진 거예요. [모두 크게 웃음] 우와 격주로. 우와 되게 좋은데? 지금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주누: 할 수만 있다면.

이브리: 비현실적인데요…!

낸시: 그러니까, 어떤 전형이 없다는 게, 저는 굉장히 오랫동안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접근을 하거나 거기의 일원이거나 그랬었는데요. 레즈비언 농담을 되게 좋아하고 그런 농담을 할 수 있고 공유되는… 그런 것도 있잖아요. 그런데 어떤 전형이 없다는 것은, 그런 농담 자체가 잘 안 되는? 그러니까 바이섹슈얼에 대해서 뭘 농담을 한다고 쳐 봐요. 그러면 그게 진짜 농담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라 ‘아니 그게 아니고,’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 지거든요. 아니, 저 같아도 그럴 거 같으니까. 뭐 ‘격주로 남자 여자 만나는 거 아니야?’ 그러면 웃는 게 아니고, ‘바이섹슈얼들이 그렇다더라’ 라고 하면 거기에 화를 먼저 낼 것 같은데. 뭐 게이 농담이나 레즈비언 농담 그런 건 약간 편견이 섞이면 일단 사람들이 거기에 웃어 넘기거나 받아 치거나 이런 반응이 가능한데, [바이섹슈얼은] 어떤 전형 자체가 없으니까 그런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완전 진지하게, ‘아니 그게 아니고,’ 이러면서 열 받으면서 조용히 혼자 막, 약간 이렇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아서: 그런데 농담이라는 거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 막, 바이…로 돌아와서 환영해? 아니지, 아무튼 돌아와서 환영해 [웃음], 이런 얘기도 사실 어떻게 보면 이성애자들이 레즈비언, 게이에 대해서 너희 그냥 호기심으로 하는 거 아니야? 이런 농담으로 편견을 표출하는 것처럼 똑같이 바이섹슈얼한테도 자신들이 이해를 못하는 것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농담을 하는, 그런 구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바이 당사자가 됐을 때는 그게 농담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없는 거죠.

낸시: 그러니까 ‘돌아온 걸 환영해’ 자체는 지금 저한테는 전혀 농담이 될 수 없는 것 같고, 그런데 ‘바이로 돌아온 걸 환영해’ 그러면 그건 되게 재밌을 거 같은데요? 하나가 생긴 것 같아요, 바이 농담이. [모두 웃음]

시브: 그런데 또 돌아왔다는 개념이, 그래서 거기를 홈(home)으로 본다는 얘기잖아요. 거기 정착한다는 얘긴데, 그래서 내가 바이여서 여자 남자 여자 남자 이렇게 돌아가면서 만나다가, 남자를 마지막으로 만나서 결혼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나를 이성애자로 정의한단 말이에요. ‘너 그렇게 방황하더니 결국 이성애자였구나’ 이렇게. 또 여러 남녀를 만나다가 동성애자를 만나서 동거를 하면 ‘아 그래, 너는 역시 동성애자였구나’ 이렇게 되는 거라서. 그 정착지…만 중요한 게 아닌데, 사실은. 지금까지 누구를 만났고 누구를 사랑해왔고 하는 것들도 중요한 건데, 마지막에 누구를 만나냐 이걸로 다 싸잡아 버리는 거….

이브리: 여러분이 하시는 얘기가 진짜 많이 공감이 되는 거 같아요. 동성애자들 얘기나 이성애자들의 얘기를 들으면 뭔가, 일부는 공감이 가는데 일부는 불편한, 이런 게 있는데 저는 이 자리에서는 굉장히 다른 감정인 것 같아요. [다리아: 어떤 감정이요? [모두 웃음]] 그냥 그러니까, 공감의 느낌을, 음 저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생각보다 자주 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아서: (여기서는) 누가 나를 규정지으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이브리: 네. 그런 거죠. 그러고 어떤 식의, 언어가 없고, 전형이나 각본이 없어서 그걸 끊임없이 설명해야 되는데 그게 되게 피곤한, 그런 경험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애인을 만났을 때, 어떤 사람이 연애 초기에 저희 둘을 ‘레즈비언 커플’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제 애인은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 트랜스여성이긴 하지만, 저는 레즈비언이 아닌데. ‘쟤네는 레즈비언 커플이야’ 라고 말을 했을 때 순간적으로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그럼, 나는 애인한테 묶여서 레즈비언 커플인가? [웃음] 그런 생각이 들면서. 그러면 바이섹슈얼 커플은 뭔가, 바이섹슈얼 여자와 바이섹슈얼 남자가 만나면, 이성애 커플이고, 뭐 그러면… 그런 생각이 들면서, 그 친구한테 직접은 아닌데 제가 되게 옹졸하게 기분 상해했어요. 나중에 그 사람이 제가 기분 상해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또 제가 되게 미안하고. 이게 당연히 뭐 그런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떤 합의된 언어가 없으니까 그 사람은 그렇게 표현을 했었던 거였는데 그걸로 내가 기분 상해 한다는 게 그 사람한테 되게 당혹스러웠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과잉 반응이었던 것 같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나는 나의 생각이나 어떤 경험을 가지고 소통하고 싶을 뿐인데 왜 끊임없이 내 쪽에서 미안해야 되는가 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고요. 그래서 영영이 님이 보내주신 질문이 이야깃거리가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다리아: 한번도 그 문제에 대해 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여자친구랑 묶여있을 때 레즈비언 커플이면 그런가보다. 남자친구랑 있으면 이성애 커플이면 그런가보다 했거든요. 그렇구나….

이브리: 동성 간 커플이 있고 동성애자 커플이 있는데 그 두 개는 다를 수 있잖아요, 사실. [웃음] 그런데 아무도 그걸 구분할 생각조차 안하고 동성 간 커플이면 당연히 동성애자 커플이라고 전제하는 그 상황이 되게 싫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다리아: 그 웹진 2호때 ‘여자친구 만나면 레즈비언이고. 남자친구 만나면 이성애자고. 난 지금 아무도 안 만나니까 바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분 이야기가 언급됐잖아요. (링크: http://bimoim.tistory.com/35 ) 그것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 들어요.

아서: 그런 지점 때문에 게이,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도 ‘돌아와서 환영해’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러니까 동성 간 커플이랑 동성애자 커플이랑 이렇게 구분이 안 되니까.

주누: 사람 사람마다 좀 다르긴 하겠지만 저 같은 경우 바이인 애인과 바이인 저와, 이렇게 연애를 하는 건데 저도 아주 아주 옛날에는 그냥 헤테로 남성이었을 때가 있었고 그 당시에 살았던 여성인 애인과 만났던 각본과 현재에 이제 이렇게 소통하는 방법은 되게 결이 아주 사소한 데서 달라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약간 여성 비하일 수 있는데 길거리 앉아서 둘이서, 야, 너는 저런 여자 타입이 좋냐, 이렇게 여성인 애인에게서 이렇게 듣는 것도 있고요. 반대로 저랑 애인은 좋아하는 사람의 타입이 다른데 이게 단순하게 어떤 대상인 게 아니라 둘이 바이이기 때문에 소통될 수 있는 어떤 게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건 분명히 그냥 이성애일 때나, 그냥 동성과 만나, 동성 간 관계일 때로 설명되지 않는 다른 관계인 것 같아요. 근데 이런 관계를 뭐라 불러야 되지? 그냥 단순하게 바이 커플의 특성인가? 근데 단순히 그것만은 또 아니거든요. 아까 말했던 그 전형성과도 걸맞지 않고. 이거는 뭔가로 이름을 지어버렸을 때 많은 게 사라질 것 같다는 느낌도 또 한편 들기도 하고요.



* 도란도란 수다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정리-바이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