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웹진: [1호] 커밍아웃

[기획] 바이섹슈얼을 위한 나쁜 가짜 커밍아웃 가이드-2-

*일러두기-사회 전반적 분위기가 아직은 퀴어 혐오 쪽에 가까운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레즈비언/게이이든 바이섹슈얼이든 트랜스젠더이든 다른 무엇으로 커밍아웃한다고 해도, 또 그걸 듣는 상대가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상관없이, 별다른 설명이나 변명도 필요 없이 그저 존재를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 혹은 관계는 분명 있습니다. 그러니 행여나 이 글 때문에 커밍아웃이 엄청나게 대단하고 어려운 일이라거나, 엄청나게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거나, 이렇게 어려우니 커밍아웃은 안 하겠다는 마음이 들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물론 괜한 걱정입니다만...;;)
이 글은 저와 저의 친구, 지인들이 겪고 보고 들은 경험을 토대로 빈정거리며(!) 썼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공감되거나 잘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는 결코 '보편적'이지 않은 성격의 글일 겁니다. 다만 ‘바이섹슈얼'이라는 키워드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어떤 질곡을 겪는지, 
혹은 우리 문화의 빈약한 상상력 안에서 바이섹슈얼이든 뭐든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닌 사람으로 존재하고 받아들여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탐색하고자 의도하였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커밍아웃'이나 ‘바이섹슈얼'이 아니라 소통의 실패라는 주제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네요. 어? 이번 호 웹진 컨셉에 안 맞는 것 같은데? 어? 그런 것치고는 너무 드립만 난무하고 내용이 없는 것 같은데? 에잇 이젠 아무래도 상관 없...지는 않습니다.


지난 글에 이어, '진짜' 바이섹슈얼로 인정받기 위해 조심해야 할 포인트로는 대충 아래와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더 많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1. 연애나 섹스할 때, 짧은 기간 내에 이성, 동성인 두 사람 이상을 만나거나 동시에 만나지 말 것. 성도덕이 없어서 심지어 남녀도 가리지 않는 변태성욕자라고 욕한다. 그렇다고 동성만 사귀면 위험하다. 저 인간 사실은 동성애자인데 스스로 인정을 못 하는 게 아니냐거나 저러다가 결국 애인 차고 이성과 결혼할 것이라고 욕을 먹게 된다. 또 그렇다고 이성만을 사귀면 당신은 결국 그냥 이성애자일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진정한 바이섹슈얼로 인정받느냐고? 나도 모르겠다.



2. 비슷한 맥락에서, 썸타고 대쉬하기. 당신이 바이 여성이라면 남성을 향한 관심을 드러내지 마라. 이성애자 남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바이섹슈얼을 사칭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글쎄 세상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 그걸 '사칭'하는 경우도 있긴 있을지 모르지만, 아니 관심 좀 끌면 뭐 어때서? 그보다는 단지 바이섹슈얼이라는 이유로 상대에게 관심을 갖는 낚이는 쪽이 더 이상한 것 같은데...란 생각이 들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럼 남자친구는 어떻게 사귀느냐고? 나도 모른다. 바이 남성은 특히 동성을 향한 관심을 드러내면 곤란할 수도 있다. 실제로는 게이인데 내면의 동성애 혐오를 극복하지 못해서 바이라고 주장하는, 정체성 형성이 덜 된 게이라고 수군거리기도 한다더라. 그럼 남자친구는 어떻게 사귀느냐고? 나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성을 사귄다면 당신은 그냥 '관심병' 걸린 이성애자다.



3. 너무 쿨하지 말 것. 바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쿨해보이려는 시도로 커밍아웃한 것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 ‘특이'하지 말 것. 예술가병이나 관심병이라서 스스로 바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욕을 먹는다. 같은 맥락에서 너무 트랜드를 잘 따르는 것도 위험하다…. 당신이 정말 특이한 사람이거나 예술가이거나 유행을 선도하는 트랜드세터거나 톡톡 튀는 자기표현을 좋아한다면? ...안타깝다. 애도를 바친다.



4. (자기가) 좀 ‘깨인' (줄 아는) 사람들은 심지어 바이섹슈얼이란 게이, 레즈비언과 달리 원래 사칭자가 많아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운 법이지만 자신만은 점잖아서 이런 구분을 포기하고 바이섹슈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을 ‘믿어 주'겠다고 한다. 참 관대하고 자비로운 이런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나고 지금 누가 누구에게 관용을 베풀고 있는 처지인지 다시 가르쳐 주고 싶겠지만 참고 웃어주도록 하자. 저거 저렇게 울컥울컥 파르르하는 걸 보니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고 그래서 자기가 바이라는 둥 망상을 하는 것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5. (당사자든 아니든) 세상은 바이섹슈얼이 뭔지 잘 모른다. 그러나 어쩐지 모든 사람이 자신은 이미 거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요없다고 여기는 듯 하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 바이섹슈얼 당사자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이 가진 잣대에 맞춰 바이섹슈얼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하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려 든다. 이 와중에 당신이 생각하는 바이섹슈얼의 정의와 상대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며 고치려 들지 않는 바이섹슈얼의 정의를 비교하고 토의하는 건 매우 피곤한 과정이다. 어쨌든 상대가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무엇이건(재산, 상대방 입맛에 맞는 예절, 학벌, 외모, 기타등등) 거기에 어느 정도 들어맞는 척이라도 하는 편이 훨씬 당신의 ‘진정성'을 돋보이게 해줄 것이다.



6. BDSM, 폴리아모리, 스윙… 기타 ‘일반적이지 않은' 성적 실천을 하지 말자. 최소한 하더라도 들키지 말아야 한다. 들키는 날에는 어디선가 바이섹슈얼이고  뭐고 그냥 변태나 바람둥이이지 않느냐는 소리가 날아올지도(뭐, 난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마음이 아픈 경우로는, 당신이 관계나 성적 실천에 있어 비 전통적인 성향을 드러내보인다면 다른 바이섹슈얼들이 당신을 꺼리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저 사람 때문에 바이섹슈얼은 전부 ‘저런 걸'로 ‘혼동'되면 어떡하냐거나, 나는 바이섹슈얼이기는 하지만 저런 ‘부도덕'한 사람과 다르다고 말하는 일부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이것은 본래 불안정한 정체성을 안정화시켜서 그 껍질로 자신을 감싸 숨으려 하고 자신의 진실성을 타인에게서 인정받으려고 할 때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대가이다. 집단화된 정체성을 포장하기 위해 자기의 잣대에 맞지 않는 사람과 선을 그으려 드는 것 말이다.



7. 연애 중이라면, 오해받는 것에 화내지 말자. 답답한 부류의 사람들은 힐끗 보면 상대방의 성별을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당신과 당신 애인의 성별도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신과 당신의 애인이 동성으로 판단되면 ‘게이 커플'이나 ‘레즈비언 커플'로, 이성으로 판단되면 ‘헤테로 커플'로 불릴 것이다. 어느 쪽이든 바이섹슈얼인 당신은 지워지고 없을 것이다. 이런 처사가 부당하다고 항의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마라. 사람들은 당신의 ‘바이섹슈얼' 인격을 의심할 것이다.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여기서도 착한 바이섹슈얼로 잘 인정받기 위해서는 바이섹슈얼임을 주장해서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당신의 바이섹슈얼리티는 지워진다. 어떻게 극복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8. 다시 한번 인용하자면, 바이섹슈얼 커밍아웃은 ‘쉽다'고 한다. 참 다행이다. 하지만 나는 '가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러 누구에게 인정이나 칭찬을 구하지도 말고 그저 신나게 사는 게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


-어쩐지 여기서 끗. 다음호에 만나요-


*글-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이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