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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1호] 커밍아웃

[기획] 바이섹슈얼을 위한 나쁜 가짜 커밍아웃 가이드-1-

*일러두기- 이 글은 나쁘고 가짜인 가이드를 제공합니다



커밍아웃은 원래 쉽다. 물론 모든 일반론이 그렇듯 이 문장은 엄밀히 말하면 틀렸다. 성 정체성, 연령, 계급, 인종, 장애 여부, 지위, 관계 등 사람이 발 딛고 선 다양한 위치는 같은 이름으로 묶이는 경험이라 해도 완전히 다르게 겪도록 한다. 그러나 대체로 말하자면 내 생각엔, 커밍아웃은 최소한 불이익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며 비교적 동등하고 안전한 관계인 사람에게조차 말해볼 엄두도 못 낸 채 완전히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사람이 상상하는 것보다는 쉽거나 아무렇지 않다.



커밍아웃은 원래 어렵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사람의 기본값을 이성애자-비(非)트랜스젠더로 놓는다. 그래서 멋대로 퀴어한 사람과 실천을 은폐한다. 문화가 수많은 사람과 경험 중 일부만을 ‘자연스럽다'고 정해서 우리 주위에 원치도 않는 벽장을 둘러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굳이 벽장으로 나가는(come out of the closet) 거창한 행사를 치러야 한다. 이 사회에서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은, 남자나 여자 둘 중 하나가 아닌 사람은, 태어날 때 지정받은 성별과 본인이 자각하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나쁘거나 아프거나 예외적이거나 특이하다. 그래서 커밍아웃은 극도로 부자연스러운 일이고, 전혀 쉽지 않다.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걸 이미 아는 사람들조차 바이섹슈얼은 동성애자보다 쉽게 산다고, 많은 '특권'과 혜택을 누리며 산다고 나에게 아주 '쉽게' 이야기한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만날 수 있으니 쉽고 재미있는 데다, '성소수자'라고 주장하면서도 사회가 이성 커플에게만 허락하는 제도적 특권과 사회적 인정도 누린다고. 원하면 언제든지 이성을 사귈 수 있을 테니 동성 간 관계로 인해 받는 차별도 금방 피해버릴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언뜻 바이섹슈얼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말은 사실 바이섹슈얼이면서 바이섹슈얼이기만 한 사람은 아닌 나의,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통째로 부정하는 비난이다. 바이섹슈얼이 타인과 관계 맺기에서 훨씬 쉽고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는 생각은 섹슈얼리티를 사회로부터 유리된 독자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기만이다. 그래서 바이섹슈얼을 사회 속의 평범한 일상인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유리된 이상한 존재로 인식한다. 이런 관점은 바이섹슈얼인 사람도 사회적 지위, 경제적 계급, 외모, 재생산 가능성, 장애 여부, 가족 관계, 결혼 가능성, 그밖에도 연애라는 관계맺음에 있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요소가 지겹도록 많은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외면한다. 그리고 그를 오로지 상대의 성별에 상관 않고 파트너만 구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파트너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대의 성별 혹은 성기의 모양이라는 관점, 바이섹슈얼 인식론이 가장 첨예하게 비판하고 도전하는 바로 그 관점을 바이섹슈얼에게 강요한다. 또 차별을 피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이성을 만날 수 있으니 참 좋겠다는 말은 트랜스젠더이고 나와 동성인 내 파트너와 내가 맺고 있는 관계, 혹은 이성애-비트랜스 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연애 중인 다른 바이섹슈얼들의 관계를 단지 바이섹슈얼이 하는 연애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든 불편하면 저버릴 수 있는 '쉬운' 것으로 규정해버린다. 동시에 겉보기에 이성애 연애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바이섹슈얼이 포함된 관계에서 오가는 사랑은 그 동기가 의심스러운 '편한' 으로 폄하한다.

 

이런 '쉬운 바이섹슈얼'이론의 연장 선상에서, 바이섹슈얼로 커밍아웃하기가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기보다 훨씬 쉽다는 말도 듣는다. 심지어 내게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이성이자-비트랜스젠더였다. 커밍아웃에 한해서라면, 난 이 주장의 진위는 모르겠다. 사실 바이섹슈얼 커밍아웃이 정말로 쉽다면 그건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뭐 어쨌든, 한국의 'LGBT '인권이 갈 길은 아직도 요원해 보이는데 이 땅에서 그나마 그중 일부라도 쉽게살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고무적인 일일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설명이 내가 겪은 것과는 전혀 다른데, 내가 좀 특수한 경우일지도 모른다. 난 정말 잘 모르겠다.

 

이 웹진을 꾸리기로 한 우리 네 명은 웹진을 여는 첫 호의 주제를 '커밍아웃'으로 정했다. 그런데 준비 과정에서 다른 팀원들과 함께 글을 모집하고 읽어보고 다듬고 토론하면서 난 너무 놀랐다. 그토록 쉽다고 하는 바이섹슈얼의 커밍아웃을 왜 휙 하고 성공하지 못하고 자꾸 실패와 미끄러짐의 경험을 들고 나오는가? 왜 그 쿨하고 시크하고 트랜디하다는 바이섹슈얼들께서 이렇게 상처와 아픔이 깔린 어두칙칙한 글을 쓰고 앉아있는가? 그래서 나는 커밍아웃의 성공을 찬양하기보다 실패를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성공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바이섹슈얼도 바이섹슈얼 커밍아웃을 잘 받아들여 준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이섹슈얼의 커밍아웃, 혹은 자기선언을 납득하기 어려워하며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과 그들로 인해 소통에 실패한 경험을 안고 있는 바이섹슈얼들이다.


어쨌든, 내가 아는 것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를 어려워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다가 이제까지의 자신과 화해하기 힘든 대상을 맞닥뜨리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자기가 받아들이기 힘든 대상을 공격하려 한다. 바이섹슈얼에게 유달리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꼭 그렇다. 이들은 마치 자신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 양 미지의 대상을 검사하고, 심문하고, 취조하고, 이리저리 재고 달아본 다음 마음대로 판단을 내려서 연약한 자신을 방어하려 든다.






사람은 모두 비트랜스젠더이고 이성애자여야 한다고, 아니면 최소한 동성애자이기라도 하라고 윽박지르는 사회에서는 바이섹슈얼이 이런 공격의 대상이 된다. 사람은 모두 이성애자이거나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은 모두 동성애자인 세계, 자신의 망상 속에 존재하는 세계가 무너질 것 같을 때면 바이섹슈얼을 열심히 닦달해서 역시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근거를 찾아서 안심하려고 혈안이 된 자들이 많다. 그들은 때로 스스로 바이섹슈얼이라고 밝히는 사람에게 ‘증명'을 요구하며 끊임 없이 귀찮게 군다(그럼 남자도 사귀어봤어? 여자하고도 자봤어? 착각하는 거 아니야?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인정하기 무서운 거 아니야? 그냥 잠깐 유행에 휩쓸리는 것 아니야?—이런 취조를 끊임 없이 반복하는 가여운 이들 중 일부는 이미 과거에 자신에게 저런 질문을 던져봤으며, 스스로에게 저런 의심을 품는 자신과 화해하길 실패했고, 타인도 자신과 똑같이 실패해서 스스로와 불화하기를 바라고 있다). 마치 자기에게 진위를 판단할 만한 지식과 권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오래 전에 이런 류의 심문에는 응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물론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맥락에 놓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발생한다. 내가 무시하는 것은 의심을 밑바탕에 깐 취조이지 진솔한 대화와 이해하고자 하는 진심에서 나오는 질문이 아니다). 가장 분명한 이유는, 의심을 밑바탕에 깔고 저런 질문을 마구 던지는 자들 중에는 저기에 합당한 권한을 가진 이가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공원에서 햇살을 즐기는 중에 익명의 행인이 나를 붙잡고 당신이 이 공간을 이용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시비를 거는 격이다. 이 자가 나에게 이름과 주소를 댄 다음 당신이 범죄자가 아님을 증명해보라고 요구한다 해서 거기 대답해줄 이유는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나는 은근한 의심과 압박을 모두 무시하고 내가 ‘진짜' 바이섹슈얼임을 증명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나를 가짜 바이섹슈얼이라고 부른다면 까짓거, 그러라지 뭐. 누가 신경이나 쓰나?



...사실은 소심한 성격 탓에 꽤나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그런데, 신경을 쓰던 와중에 난 이게 꽤 멋진 ‘정체화'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 하면, 사람들에게 ‘가짜 바이섹슈얼'로 인식되는 것으로 인해 당신은 ‘이상한(queer) 이성애자',’제대로 못 된(creep) 동성애자'로 인식되는데, 이건 이성애/동성애의 이분법에 얽매인 안쓰러운 우리 문화가 바이섹슈얼을 인지하는 방식과 꼭 같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 가짜 바이섹슈얼이야말로 이 문화가 바이섹슈얼한 것으로 떠넘기는 속성을 모두 보유하는 사람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뭐,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고 해도 이해한다. 나로서는 이 경계에, 울타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을 즐기는 ‘가짜 바이섹슈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울타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으로 밀려난 다른 많은 사람과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손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확실한 정체성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안심하고픈 바램을 가진 사람이 바이섹슈얼로 그리 하고 싶다면, 그 욕망 또한 난  진심으로 응원한다. 다만 쉽지가 않을 것 같아서 걱정될 뿐이다. 현재의 인식 체계에서 바이섹슈얼은 다른 사람들이 정체성의 울타리로 들어가기 위해 버려야만 했던 욕망과 짐들을 떠안았기에, 사람들은 바이섹슈얼한 존재와 인식을 너무나 간절하게 부인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도해보고 싶다면, 몇 가지 요령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2편으로 계속>


*글-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이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