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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호] 연애

[인터뷰] 영화 <데이문>감독 인터뷰, 낮달 혹은 이별공식-2-

*[인터뷰] 영화 <데이문>감독 인터뷰, 낮달 혹은 이별공식-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 인터뷰는 영화<데이문>의 줄거리와 결말을 일부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브리: 그러고 보니 저희도 주제를 질문드리지 않았네요. 지금 여쭤봐도 되나요?


한상희: 이 영화의 주제요? 글쎄요. 일단 찍을 때는, 음… 아, 이전에 이 영화가 레즈비언 영화라고 분석된다면, 혹은 바이섹슈얼 영화나 퀴어 영화라고 분석한다면 기분이 어떨지 제게 물어보셨는데요, 저는 별로 싫거나 좋고 그런 건 없어요, 사람들이 그걸 뭐라고 생각하든. 그런데 처음에 그 영화 시나리오를 처음 정했을 때, 제목을 이별공식이라고 지었던 것도 이 등장인물들의 이별과 연애와 연애의 양상 이런 부분에, 얘네가 성소수자고 낮에 손잡을 수 없는 커플이란 게 분명히 작용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성 간 커플이든 동성 간 커플이든 모든 커플 다 각자 이별 혹은 관계 상성에 작용하는게 다르잖아요. 커플 안에서도 나와 상대가 다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그게 통속적인 연애의 문제에 속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모든 게 다.


이브리: 이 영화의 상황이 통속적인 연애의 상황 중에 하나라는 말씀이신가요?


한상희: 네. 성소수자의 영화라고 해서 더 특별하거나, ‘대체 레즈비언들은 섹스를 어떻게 하는 거지?’ 이런 호기심의 대상이 될 게 아니고, 그냥 다 똑같은데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신기하게 보는 게 짜증났다고 해야 하나.


이브리: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 보면 비이성애 연애도 연애의 공식을 따르는, 흔한 일이기도 하고.


한상희: 그렇죠. 딴 애랑 잤다. 바람을 피웠다. 헤어졌다. 어떻게 보면 그냥 통속 드라마같은 상황이거든요. 비이성애 연애가 지금 이 상황, 2010년대 서울의 젊은 여자들의 공식 안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자는 것이 처음의 의도였죠. 그걸 보여주면, [비이성애 연애를 이상하거나 신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원래 생각했던 것과 다른 어떤 걸 생각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이브리: 말하자면 이런 것일 수도 있을까요? 되게 신기하고 이상한 애들인 줄 알았는데 쟤네도 흔하게 연애하다 싸우고 헤어지는구나, 하는 거요.


한상희: 간단하게 말하면 그런 거죠. 헤어지는 이유도 그냥 바람피웠어, 그런 거잖아요. 근데 그냥 그 바람의 상대가 [상대의 성별이] 이런 식으로 꼬일 수 있는 게...그게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여전히 신기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결국 연애가 깨진 것은 그냥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거, 단순히 그거라는 거죠.


이브리: 그리고 아까도 살짝 이야기하셨지만 그 세인이가 수진에게 ‘잤어, 안 잤어?’ 물어보는,  그 부분도 좀 궁금했어요. 섹스가 연애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상희: 아 그게, 그런 게 있어요. 그러니까 레즈비언인 여자가 바이섹슈얼인 여자를 만날 때에, 이 여자[바이섹슈얼]가 자기[레즈비언]한테 얻지 못하는 성적인 만족감 등등을 남자에게서 얻고싶어 할까봐, 되게 전전긍긍하는 레즈비언들이 분명 있거든요. 전 그게 어떤 하나의 코드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 상황들이 많아요. 그래서 그냥 그런...것들을 세인이도 가지고 있고. 수진이가 남자와 잤는지 안 잤는지를 확인만 하면, 안잤다고 말만 해줘도 나의 그 열등감과 불안함, 자격지심 같은 것들이 순간적으로라도 만족이 될 수 있는데 그말을 안하니까 미치는 그런거? 그 말을 듣고 수진이는 그냥 돌아서서 가는데요, 사실은 세인이가 그 전에도 이런 얘기를 여러 번 했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온 거죠. 너 잤어, 걔랑 잤어? 그런 말을 계속 해온 애고 성격이 그런 애라서 피곤해져서, 대답하기 싫어서 그냥 간다는 설정이에요.


이브리: 그렇다면, 예전에도 계속 그러고 있었다면 왜 하필 그 시점에 폭발해서 틀어져 버렸을까도 궁금해지네요.


한상희: 그건 내 맘이겠죠.


이브리: 우문현답이네요[웃음]


한상희: 쌓일 대로 쌓인 거고. 그리고 또 수진이가 여자랑 자는 것에 대해 역으로 세인에게 화를 냈다는 거에 연결이 되느냐라는 질문도 해주셨는데, 다르면서도 같은 것 같아요. 섹스의 문제는 어쨌든 민감한 건데, 이제 수진이는 세인이가 다른 여자랑, 그냥 단순히 바람을 핀 거에 화가 난 거고요. 그리고 나는 결백한데 얘가 이렇게 확인도 안하고 외도를 한거냐고 추궁한 일에 대해서 화가 난 거고. 정말 그냥 진짜 연애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감정?

한편으론 그렇고, 다른 측면에서 좀 보자면, 저는 여자 애인을 만났을 때 서울 안에서 퀴어 커뮤니티? 라고 칭할 수 있는 곳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한번밖에 없었는데, 그때 엄청 피곤했거든요. 그때 제가 받은 인상은 사람들이 너무, 뭐라 해야 하나, 성애 중심적이라는 거었어요. 성애가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적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 같은 거예요. 그런게 엄청 심하고, 정말 실제로 ‘잤어? 너 걔랑 잤어?’ 이 질문이 진짜 일반적이더라고요.


이브리: 당사자들은 분명 연애를 잘 하고 있는데도 서로 안 잤다고 하면 주위에서 뭔가 이상하다거나, 이들의 연애나 정체성이 진짜가 아니라고 하는 의심을 하는 거요?


한상희: 그렇죠. 예를 들어서, 내가 예전에 어렸을 때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걔랑은 잔 적이 있는데 새로 사귄 여자 애인이랑은 한 번도 잔적이 없다. 그렇게 말을 한다면 주위에서 너는 레즈비언이 아니야, 너는 바이섹슈얼이 아니야. 그런 말을 한다든지. 잘 수 있는게 뭔가, ‘네가 게이인지 레즈비언인지 알고 싶으면 마음에 둔 동성과 자는 걸 상상해 봐라’, 그런 식으로 엄청나게 그 섹스의 문제를 중시하는데 저에게는 그게 되게 당황스러운 일이었어요. 근데 그건 꼭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기도 하죠. 그렇지만 특히나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는 그게 뭔가 자격을 부여하는 지표 같은 게 되는? 거의 그런 식이니까, 그거에 대한 의구심도 좀 있었어요.


이브리: 어찌보면 무성애자는 설 곳이 별로 없어지는 거네요.


한상희: 그렇죠. 그리고 만약에 내가 남자랑만 잔 적이 있지만 여자도 좋아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관계가 성사된 적은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단지 서로 잔 적이 없었다고 해서, 성애가 없으면 여러가지 감정 그런 것들을 전부 무시하는 것 같은. 그런 게 좀 웃겼거든요. 그래서 대사에 약간 노골적으로 그런 걸 썼던 것 같아요.


루인: 저는 편집 면에서 좀 궁금한 게 있어요. 그러니까 장면 장면을 넘어갈 때, 암전을 좀 길게 쓴다는 느낌이라 이게 의도된 편집인가 싶어서요.


한상희: 어떤 부분은 제 편집의 리듬일 수도 있구요 그냥, 사실은 실수일 수도 있어요. 맥프로에서 작은 화면 파이널컷 볼때랑 스크린으로 볼때랑 너무 다른 거예요. 그래서 되게 당황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가 편집할때 화면 밝기같은거 잘 조절 안하고 해서 약간 장면 전환 중간에 암전이 길어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중에 그 질문 듣고 나니까. 근데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루인: 결말에서, 여자친구[세인]한테 가서 그집 문을 두드리다가 곧 사람은 화면에서 사라지고 우는 목소리만 남잖아요. 그 부분이 여운이 많이 남았어요.


한상희: 사실은 편집 과정에서 여러 가지 다른 상황이 있었지만, 다른 감독님한테 편집 조언을 좀 구했더니 여기서 배우 모습을 없애고 사운드이펙트로 가는게 낫지 않겠냐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훨씬 낫더라고요. 수진은 없어진다기보다…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 목소리만 남았다는게 좀 더, 경철보다도 좀 더 서로의 기억에 좀더 많이 남아 있다는 그런 느낌을 전해주는 것 같았어요. 마지막에 나레이션으로 시 낭송하는 것도 있고. 각자의 목소리로 몸은 헤어져 있지만 기억을 하며 살아가는 거니까요.


루인: 그러면 마지막 부분에서 나레이션으로 시를 읊는데, 그때 집을 이야기 하잖아요. 주인공이 전 애인의 집에 들어가지 못 하는 상황을 보여주는데, 시의 내용은 서로의 질척거림 같은 게 있는 곳이 집이라고 하는데요. 그럼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집에 들어가지 못 하고 문 밖에 있는 것이 목소리라는 매개를 통해서 다시 만나는 설정이 되는 것일까요?


한상희: 네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약간 <사랑과 영혼>같은 느낌으로?[웃음] 나름 로맨틱하게 끝내고 싶어서. 사실 그 시의 내용하고도 이어지고요.


이브리: 그러면, 앞으로 계속 영화를 공부하시겠지만 영화 제작 쪽에 계속 뜻이 있으신지도 궁금해요.


한상희: 제작을 할 생각이 지금은 없어요. 남의 걸 도와주는 건 할 수 있는데, 제 작업을 하는 건 글쎄요. 졸업영화도 논문에 맞는 걸 해야 해서 실험영화 형식으로 찍었고. 개인 작업을 하고 싶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이 같이 해야 하는 작업은 아마 안 찍을 것 같아요.


이브리: 영화를 찍지 않으신다고 해도, 앞으로 연구나 개인작업에 퀴어나 바이섹슈얼 주제를 다루실 생각이 있는지도 궁금해지는데요.


한상희: 저는 관객이론과 영화사를 전공하려고 생각하는데요.  영화사 연구랑 그쪽의 작업을 병행하고 싶은 생각은 있긴 있어요. 퀴어는 영화에서 어떤 식으로 나타내는지.  <셀룰로이드 클로짓> 이라고 헐리우드 영화의 동성애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같은 게 있어요. 그 영화를 보면 저는 전혀 퀴어코드를 못 읽었던 영화들에서 그런 부분을 찾아내는 작업이 있더라고요. 초기영화라든지 그런 부분에서 찾아 보면 [퀴어 코드가] 있을 것 같아서. 사실 그런 식의 기획이 세계적으로 아주 잘 되어 있지는 않거든요. 특히 퀴어 영화라고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영화의 역사에서 굉장히 나중에 있는 일이고, 사실 고전 중세문학 등을 예로 들어보면 거기에서도 적극적이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리얼한 퀴어코드 같은 것들이 분명히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식의 것들이 분명히 초기 영화, 헐리우드로 정립되기 이전의 영화에도 분명히 있을 건데. 그런 부분을 제 연구와 병행하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해요.


이브리: 퀴어이론과 영화이론에 관심있으신 분이라면 특히, 앞으로 연구자로서의 한 감독님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저희 인터뷰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례비도 드리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인데요. 연구가 되었건 새로운 영화 제작이건, 앞으로 감독님의 작업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글-힘차게 붕괴 중인 이브리

*잇을, 준우, 루인이 인터뷰 준비를 함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