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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호] 연애

[인터뷰] 영화 <데이문>감독 인터뷰, 낮달 혹은 이별공식-1-

이 글은 2014년 9월 23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이브리와 루인(트랜스젠더/퀴어 연구활동가)이 데이문 감독(한상희)님을 인터뷰해서 썼습니다.


*이 인터뷰는 영화<데이문>의 줄거리와 결말을 일부 언급하고 있습니다.


영화 <데이문> 소개: 2013년, 서울에 사는 여성 퀴어 커플 세인과 수진이 있다. 바이섹슈얼 수진과 레즈비언 세인. 둘의 사랑은 사회적인 시선 속에서도,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도 환영 받지 못한다. 바이섹슈얼인 수진을 좋아하는 남자, 경철 때문에 둘 사이엔 오해가 싹트고 큰 싸움으로 번진다. 그간 서로에게 쌓여왔던 불신과 불만들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데…. (출처-제 16회 여성영화제 홈페이지)





이브리: 바이모임에서 영화 <데이문>의 한상희 감독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트랜스젠더/퀴어 연구활동가 루인 님도 같이 자리해 주셨습니다. 두분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한상희 & 루인: 안녕하세요.


이브리: <데이문>은 2014년 제 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퀴어 단편 섹션에서 상영되었습니다. 영화 정말 잘 봤고요, 아무래도 보고 나서 처음 궁금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제목이 왜 데이문일까 하는 거였어요.


한상희: 아, 네. 이거 상영일에 GV할때도 나왔던 질문이네요. 사실 특별한 건 없고. 그러니까 데이문(낮달) 이라는 건...희미하게 보이는 달이잖아요. 존재하는데도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런데 또 그곳을 보면 있는 그런 것?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존재를 분명히 알고, 인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실은 다들 원래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바뀐 제목이에요.


이브리: 원래 제목은 뭐였는지 여쭤봐도?


한상희: 원래 제목이 <이별공식> 이었는데, ‘일반적인’ 연애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을 담고 싶었죠, 처음엔. 그래서 그 제목이었는데, 촬영하면서 내내, 스텝들이 그 R.ef 노래 <이별공식>을 계속 부르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다들 별로라고 해서, 제목을 뭘로 하지? 하면서 시집도 뒤져보고 하다가 그 데이문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낮달’ 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어로 하니까 발음이 너무 어렵고,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래서 데이문이란 말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동방신기 노래중에 <Day Moon>이라는 노래가 있어서 검색하니까 같이 걸리더라고요?


이브리: 아, 동방신기 노래에 그런 제목이 있었군요. 인상적인 제목이었어요. 그럼 그 다음으로 궁금한 건, 여기서 낮달처럼 희미해지는 것은 어떤 걸까요? 영화를 보면 주인공(수진)과 그의 동성 애인(세인)과 이성인 친구였다가 애인이 되는 사람(경철)이 있는 구도인데요. 이성 애인은 처음에 동성 애인과의 데이트에 난입하는 장면을 빼고는 데이트 장면이 다 낮이고 동성 애인이랑 있을때는 주로 밤 시간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희미해진다는 것과 밤이라는 시간을 연결할 수 있는 걸까 하고도 생각해 봤는데….


한상희: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보니까, 제가 여태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은연중에 분위기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니까 둘이(수진과 세인) 서 있는 낮 장면도 사실은 편집이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 상영된 버전에서는 그 횡단보도에서 손을 잡고싶어 하면서도 잡지 못하는 장면이 중간에 들어가 있는데, 처음 편집버전에선 그게 오프닝이었어요. 근데 그렇게 밝을 때는 사람들 보는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밤에는 좀 덜 조심하게 되죠. 원래 수진이와 세인이 둘이 꽤 진한 신(scene)도 있었거든요. 키스장면이라거나 그런 것도 다 밤이고, 약간 이런 은밀한, 그리고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허용되는 시간이 밤이라고 생각 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던 것 같아요.


이브리: 그러면, 데이문이라고 할 때는 그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페니드: 근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고, 존재는 하는데 뭔가 현상적인 것 때문에 가시적이지 않은 것이잖아요. 저에게 있어서 그 의미는 상태가 변한다고 생각하면서 정한 건 아니고, 뭔가… 여기서 존재와 현상을 이야기하는 건 좀 멀리 간 것 같기도 하지만요. 그것(달) 자체는 언제나 존재하고 변하지 않는데도 햇빛이 있는 낮인지, 햇빛이 없는 밤인지에 따라서 떴거나 졌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 부분을 바이섹슈얼을 포함한 모든 퀴어의  직접적인 메타포의 하나로 차용한 거죠. 비이성애는 언제나 있는데, 그것이 시대나 사회나 문화가 변화함에 따라서 데이문이 됐다가 보름달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그런 얘기였던 것 같아요.


이브리: 아, 그렇게 설명해 주시니까 더 와닿는 것 같아요. 그러면, 그 다음으로는 영화를 찍을 당시에 연기지도를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하고, 감정선이나 캐릭터의 특징 같은걸 어떤 식으로 잡으셨는지도 궁금했거든요. 혹시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셨다거나, 촬영하면서 특히 어려웠던 부분, 인상깊었던 부분들은 어떤 거였어요?


페니드: 네, 연기지도에 있어서 특별한 거는 사실 없었던 거 같아요. 배우들은, 자기가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호모포비아가 아닌 이상은, 그 배역을 하겠다고 허락을 한 사람들이라면 그걸 받아들일 마음이 돼 있는 사람들이라서요. 그냥, 이런 감정이고 이런 내용이고 정도를 이야기 해줬고, 연기지도야 현장에서 상황에 맞게 했던 거였고요. 좀 쉽지 않았던 부분은 뭐였냐면, 그 영화 스탭중에 한명도, 음 물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아는 한에서는 실제로 내가 성적 정체성이 이성애자가 아니야, 이런 식으로 밝힌 사람이 한명도 없었어요. 그런 이슈에 관심을 보인 사람도 한명도 없었고요. 그냥 저랑 예전에 다른 영화에서 같이 일했었던 스탭들을 다시 데려와서 한 거였거든요. 그래서 그 수진이와 세인이의 동성간 키스신이랑 속옷만 입고 같이 뭔가 하거나 그런 장면을 찍을 때 남자스탭들이, 전부 “아 좀더, 강도가 약하잖아 좀더 진하게!” 약간 이런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안그래도 배우들은 너무 힘들어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좀? 그리고 자신들은 그게 뭔가를 건드리는 말이라고 생각을 못하고 그러는 거지만, 오늘의 촬영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나리오에 대해서 “(동성 커플은) 진짜 이런식으로 행동해?” 이렇게 신기하거나 이상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고. 제(감독)가 그런 성향일거라고 전혀 생각 안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요. 제가 거기에 대해서 말을 안하기도 했지만, 또 예전에 어떤 남성이랑 제가 약간 연애할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는 게 알려져 있었고 그래서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바이섹슈얼에 대한 생각을 잘 못하고, 남자랑 ‘썸’이 있었으니까 절대로 여자를 만나는 애는 아니야,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런 분위기가 좀 있어서, 그게 약간 힘들었어요.


루인: 정말 낮달이셨네요.


한상희: 그렇죠.


루인: 영화 몇번 보다가 문득 느낀 건데요, 초반에 애인끼리 단둘이 술 마시는 자리에 난입하는 남자로 나오는 사람(경철), 그 사람이 계속 눈치없이 말을 걸면서 오붓한 분위기를 깨고 이야기를 하는데, 처음엔 그냥 참 눈치없다고 느끼다가, 보다 보니까 둘의 관계를 눈치채고 일부러 그 관계를 방해하려고 그런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혹시 그런 의도도 있으셨던 건지요?


한상희: 그런걸 의도하진 않았어요. 동성 간 연애 기류를 눈치챌 정도면 센스가 엄청 좋은 사람이잖아요? 경철은 아예 비이성애가 자기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 애로 설정을 한 거였어요. 그래야 더더욱 멍청하고 눈치없고 그렇게 나올 거 같아서.


이브리: 저는 그 캐릭터가 너무 리얼해서 재미있었어요. 어딘가 진짜로 있을것만 같은.


한상희: 어딘가 있을 걸요.


이브리: 어쩐지 기시감이 드는 상황이죠[웃음].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주인공 애인이 담배를 훅훅 뿜으면서 완전히 표정으로 드러내면서 싫어하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계속 옆에 있으니까, 일부러 저러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한상희:  이성애자 남자들 중에서 그런 타입들 있잖아요. 여성스럽고 자기의 연애나 작업 대상이 될 것 같은 여자애가 있으면 걔에 대해서는 표정이나 몸짓같은 게 보이지만, 그게 아니고 약간 보이시하다거나 자기 안중에 없는 여자애가 있으면 걔의 표정이나 이런 걸 안 읽는, 보지도 못하는사람들이요. 경철은 그런 타입이에요. 대사는 거의 오빠가 써줬어요. 제 친오빠가. 제가 남자애들이 하는 말을 잘 모르겠다고 하니까, 자기가 군대에서 들었던 이상한 소리를 다 써주겠다면서요.


이브리: 역시 리얼한 캐릭터였군요. 그러면 다음은, 상영하시면서 GV도 하셨고 개인적으로도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전해 들으셨을 거잖아요. 혹시 관객이 자신을 어떤 정체성 범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게 달랐었다고 느끼셨는지가 궁금해요. GV현장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질문 같은게 있다면 어떤 건가요?


한상희: 그게, 그런 주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영화를 안봤을거 같아요. 그 섹션[여성영화제 퀴어 단편 섹션] 자체를 보러온 사람들이 다 기사를 써야 하는 사람들, 혹은 레즈비언들, 이런 사람들이 보러 오는 상황이었고요. 그리고 영화를 보여준 저의 지인들은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이나 코멘트를 많이 준 편이었구요. 상영이 끝나고 나서 검색을 해본 적은 있어요. 블로그 같은 데 몇군데 간단한 감상이 몇개 있었는데, 운영자가 바이섹슈얼인 듯 한 블로그에서, 그분은 그 주제(바이섹슈얼 관련) 때문에, 이 영화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지만 관심을 가지고 보고 싶었는데, 텍스트 상으로는 흥미로웠다 뭐 이런 얘기를 한 건 본 적이 있어요. 흥미로웠고 이런 소재를 다룬 영화가 없었던 것 같다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런 세상은 아예 나와 다른 세상인 이성애자들, 그런 사람들에겐 이 영화에 대해 어떤 피드백을 들은 게 없어요.

GV때 받았던 질문 중에서는요, 이 영화의 주제라거나 그런 부분에 대한 질문은 하나도 없어서 이상했어요. 제목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두번의 GV에서 다 나왔던 질문은 주인공의 방에 붙어있던 포스터에 대해서였어요. 왜 그 포스터를 넣었는지, 그 질문만 두번 다 나오고요. 편집에 대한 질문도 있었는데, 주제에 대한 질문은 뭔가 사람들이 일부러 피하는 것처럼 안 하더라고요.


이브리: 그런데, 영화의 주제라는 게 사람들이 보통 GV자리에서 하는 질문인가요?


한상희: 그러니까, 그런 걸 더 질문할 줄 알았거든요. 예를 들면 그 “이것만 알자, 잤어 안 잤어?” 라는 말을 했을 때[세인이 수진과 경철의 관계를 추궁하며 하는 말], 저는 그 말에 사람들이 그렇게 웃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상영 전까지는.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크게 반응을 하는걸 보고, 아 그러면 GV시간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서 왜 자꾸 잤냐고 물어보냐라거나 그런 질문이 나오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니면 이거 감독의 경험담이냐라든지, 무례한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그런 질문이 나올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없었고요.



*글-힘차게 붕괴 중인 이브리

*영화 <데이문>감독 인터뷰, 낮달 혹은 이별공식-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