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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호] 연애

[기고] 캐나다 외유와 바이바이 여행기

*기고-캔디

 

지난 6월 말에 캐나다 토론토에 다녀왔다. 신기했던 일은 바이섹슈얼인 외국 사람을 만나니 반가웠다는 것이고, 더 신기했던 것은 그 사람도 나를 반가워했다는 것이었다.

 

저런 엉뚱한 서두라니…… 어떤 맥락인지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6월 말에 나는 월드 프라이드 인권 학술대회(World Pride Human Rights Conference)라는 행사에 발표자로 참여하게 되어 토론토에 다녀왔다. 거기에서 학술대회에 참여도 하고, 발표도 하고, 몇 년에 한 번씩 열린다는 월드 프라이드 행진(World Pride Parade)에도 참여를 했다. 당연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고, 좋은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에 있다가 외국에 나가면 괜스레 즐거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여튼 나는 당연하다.

 

발표의 주제는 트랜스젠더였지만, 바이섹슈얼인 개인으로서 외국의 바이들이 어떻게 가시화되는지는 꽤나 궁금한 부분이었다. 바이섹슈얼과 관련해서 내가 보통 보게 되는 사이트들은 대부분 영어를 쓰고 있고, 아주아주아주아주 간헐적으로 중국어를 쓰고 있는 곳도 본 적은 있다. 그렇기에 외국, 그것도 성적소수자의 인권이 아주 하늘 높이에 떠 있다는 북미 캐나다에 가는 것은 내 기대치를 높여주기에 아주 충족되는 조건이었다.

 

이런말저런말을 해도 좋지만, 일단 결론만 말해본다.

 

1. 학술대회에서 바이섹슈얼 관련 세션은 “단 한 개”도 없었다.

내가 잘못 기억하나 싶어서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다시 홈페이지(링크: http://www.wphrc14.com/)를 방문해서 확인을 해봤다. 그런 세션 따윈 없었다. 물론, 우리의 모든 훌륭하신 발표자들이 그러하듯 많은 세션에는 “LGBT”가 들어갔다. 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세션은 주제 – 노동, 에이즈, 가족, 난민 등등등등 –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뭐, 무성애자(Asexual)와 인터섹스(Intersex)방이 따로 있긴 했다. 여튼, LGBT의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바이섹슈얼과 관련된 내용 중에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중국/대만/홍콩 연대인 LaLa Project라는 단체는 LGBT가 아닌 LBT연대로 움직인다는 것 정도였다. 어떤 나라의 어떤 단체들은 LGBT가 아닌 LBT연대로 움직이곤 한다. 그렇게 세 단위(라고 일단은 하자)가 모인다 해도 게이 단체가 가진 자원보다 가진 자원이 적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뭐 여튼! 수많은 바이섹슈얼들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떠한 논의라던가 연구를 만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물론 하루에 3블록이 진행되고 한 블록당 7~8개의 세션이 열렸던 3일간의 학술대회에서 내가 들어갔던 세션은 전체 중의 얼마 안 되는 수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또 내가 안 들어간 어딘가에서는 바이섹슈얼과 관련된 열띤 논의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스캔에 안 걸린 것은 나에게도 세션에게도 서로 안타까운 일일 따름!

 

2. 월드 프라이드에서 바이들은 서로 많이 반가웠다!

토론토의 프라이드 주간은 3일로 진행이 된다. 트랜스 행진(Trans March), 다이크 행진(Dyke March), 프라이드 행진(Pride Parade). 이중 프라이드 행진은 월드 프라이드로 진행되었다. 원래 하던 행진에서 전 세계가 참여한다는 컨셉만 추가된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 3일의 행진은 모두 상당히 규모가 컸고, 참여 부스의 종류나 형태도 한국과 달랐다. 그래서 기대를 하긴 했었지만, 토론토 바이단체를 찾아보려 굳이 노력하지는 않았었기에 그저 우연에 기댄 운명만을 믿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둘째 날의 다이크 행진에 나는 작년 퀴어문화축제때 직접 주문 제작한  “Yes I’m Bisexual. So what?(나는 바이섹슈얼이다, 그게 뭐 어때서?)” 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퍼레이드에 참여를 했고, 우연에 기댄 운명에 부응을 받아 바이 커플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그들을 만나서 정말, 기뻤다. 캐나다 바이는 한 명도 못 보고 가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차에 만난 그녀들은 나를 보자마자 자기들도 바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했고, 사진을 찍겠다는 나의 제안도 흔쾌히 동의해줬다. 행진은 이미 시작하고 있어서 더 많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고, 그냥 남은 것은 아련한 사진 한 장뿐.







그리고 대망의 World Pride가 열리는 날! 드디어 나는 토론토 바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퍼레이드 부스에는 Toronto Bisexual Network가 있었다!!! 오오오오오!!!! 하지만 나의 영어는 딸렸고, 그들은 리플렛이나 가져가던가 아니면 돈을 내고 뭔가를 사라고 이야기하는 듯 했다. 돈이 없는 나는… 조용히 리플렛을 들고 나와야 했다. 하지만, 저런 단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가! 게다가 지금 다시 홈페이지(링크: http://www.torontobinet.org/)를 찾아보니 여긴 무려 25년이나 된 단체였던 것이다! 왜 나는 ㅠㅠㅠㅠㅠㅠㅠㅠ 바…반성한다





여튼 그렇게 후다닥 광란의 퍼레이드에 빠져든 후 다시 나는 한 무리의 바이들을 마주치게 된다. 나는 행진을 끝낸 관람자 모드로, 그들은 행진중인 광란자 모드로. 온몸에 누가 봐도 “내가 바이가 아니면 도대체 뭐겠니?” 라는 말을 폴폴폴 풍기는 사람들의 무더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바이 깃발이 들어왔고, 성인들이 들어오더니 급기야 바이 깃발을 뒤집어쓴 유모차 아동이 들어왔다. 세상에나!! 멋지구리!!!




 


그리고, 일주일의 캐나다 유랑 기간이 끝나버렸다. 바이인 주제에 바이에 관심은 있었으나 내 바이보다는 남의 트랜스가 더 관심영역이었던 일주일이었던지라 더 이상 바이에 신경을 못 쓴 것이 아쉽고 원통할 따름이다. 다음에 다시 한 번 가게 된다면 그때는……

 

아! 참고로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올해 토론토의 바이들보다 작년 대만 행진에서 만난 바이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작년 대만에서는 대만의 프라이드 행진이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고 있다며 전체 행진 전에 BT의 퍼레이드를 추가로 더 진행한 바가 있다. 좁은 길에 왁자지껄 와글와글 모여있던 그들을 보면서, 참 부러웠다. 목소리를 내는 것도, 그리고 함께하는 것도.

 





2015년 퀴어문화축제가 300일 정도 남았다는 글을 8월 언젠가 본 적이 있다. 300일 후의 그 날에는 우리도 바이 깃발 아래 좀 더 많이 모였으면 좋겠다. 좀 더 뻔뻔하고, 좀 더 흥겹고, 우리의 축제가 정말 우리의 축제일 수 있도록 말이다. 

 

캔디의 토론토 바이바이 유랑기, 끝!

 

*글, 사진-나 좋자고 일 벌리는 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