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웹진; [2호] 연애

[기고] 오픈 릴레이션십(Open Relationship)

*기고-안경군


번의 만남, 몇번의 헤어짐. 그리고 그 사이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관계와 섹스. 흔히 말하던 ‘고귀한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에 나는 그러한 사랑을 원했다. 어쩌면 이별을 두려 했을 수도 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눈이 높고 까다로워 주위에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지간한 외모나 머리, 섹시함으로는 내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시작한 첫 연애는 내가 섹스에 눈을 뜨게 함과 동시에 수많은 상처와 절망을 안겨주었다. 왜 잘만 사랑하던 연인들이 원수가 되어 헤어지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도 없는 그런 복잡한 상황과 감정들.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사랑이라는 건 과연 숭고한 것일까. 섹스하고 싶은 것과 사랑한다는 건 정말 같은 것일까. 그런 고통 속에서 수많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고 고민하고 되뇌었다. 결론은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가 배우던 그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단어는 성욕과 소유욕을 포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결혼이라는 건 그 포장된 욕구를 이용해 늙어서까지도 서로 벗어나지 못하고 의지할 수 있게 만드는 법적인 구속장치라는 걸.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사랑과 결혼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에게 일어났던 만남은 내 가치관을 완전히 뒤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남 탓을 하는 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뿐이니까.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섹스’와 ‘사랑’을 분리시키는 일이었다. 그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주었던 관계에서 차츰 내 바운더리를 지켜나가면서 가능했다. 그건 반드시 필요했다. 나는 여자와의 정신적 교감도 중요했지만 한사람과만 섹스를 한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상적이라고 부르는 연애를 해 보고서야 알았다. 내가 왜 죽어가고 있는지. 나는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몸으로 깨달은 나는 허울뿐인 사랑의 나선에서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사람에게 매이기 싫다. 그렇다고 한사람을 매여있게 하기도 싫다. 아니, 그럴 수 없다. 그 상황에서 난 예전에 ‘사랑’이라고 부르던 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건 FWB(Friends with Benefits)를 사귀는 일이었다. 엔조이, 섹스파트너라고 부르는 건 너무 삭막하고 재미없어. 솔직히 좀 싸구려 단어같아. 친구인데 섹스도 하는 사이가 더 좋은 거 아닌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원나잇성 섹스를 지속하는 게 뭐가 재미있다고. 아, 내가 말하는 건 신상정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 가치관 같은 이야기 말야. 섹스에도 스토리 텔링이 필요해. 그러면 그 섹스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섹스를 왜 좋아하는지 알 수 있어서 더 즐길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와중에, 내 첫 키스가 동성과 있었던-그것도 호기심으로 했었지만 아주 진하게 키스했던-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보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꽤 남자친구에게서도 아주 가끔 우정 이상의 돈독한 감정을 느꼈었는데, 전혀 그런 것을 나조차 눈치를 챈 적이 없었다. 그건 아마 내가 남자들의 성폭력을 동반한 폭력에 노출이 되어서였던 것 같다. 남자-하면 폭력이 먼저 연상되고, 케미를 느끼기도 전에 사그러드니까. 하지만 섹스에 있어서 솔직한 마음을 먹기 시작하니까, 나는 이성에게만 섹슈얼한 케미를 느끼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남자와 관계를 맺거나 섹스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단정 짓기는 이르지만. 그것도 섹스와 사랑을 분리시키는 과정에서, 섹스에 더 솔직한 생각들을 가지게 되니까 할 수 있었던 생각이다.


아무튼 지금의 나는 그런 ‘친구지만 마음이 맞으면 섹스도 할 수 있는’ 관계인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연인 못지 않은 호감으로 섹스를 할 수 있고, 오히려 성적 긴장감을 연인일 때보다 더 유지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니까. 게다가 내 바운더리가 중요한 만큼 상대의 바운더리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 버려서, 그래. 이런 관계는 Open Relationship -폴리아모리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아직 로맨틱한 부분이 남아있는지라 친구가 아닌 조금 더 깊은 사이에서 올 수 있는 다정하고 알콩달콩한 것들을 모르는 건 아니다. 비록 예전과는 다르지만 서로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관계가 있는것도 나쁘지 않다고도 생각하고. 그런데 지금의 내가 사랑을 한다고 해서 폴리아모리를 포기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이미 나는 선을 넘어버렸다. 그 선은 돌아갈 수 없는,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와도 같다. 한사람과의 섹스는 결국 남에게 잘못을 돌리고 나를 더 솔직하지 못한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나라는 사람은 폴리아모리일 때 가장 좋은 남자인 것 같다. 한사람과의 섹스는 더이상 나에겐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제도는 나에겐 더이상 의미가 없다. 그런데 종종, 결혼은 평범한 사람하고 한다든지, 평범한 애인을 두면서 SNS 같은 곳에 '나는 Open Relationship을 합니다.'라던가, '폴리아모리스트 입니다.'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건 그냥 바람피우기 좋은 구실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바람피우는 것은 내 파트너를 속이는 행위다. 아직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것이 폴리아모리라곤 하지만, 나는 진짜 폴리아모리스트로서 커밍아웃을 한다면 일반 사람과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와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 어릴 때는 정말 주변에서도 여신이라 불리는 얼굴 외모를 가진 애들에게서 사랑을 느꼈다면 지금은 내 성욕과 페티쉬를 충족시키는 것에 더욱 큰 호감이 생기게 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강하고 굴곡진 골이 패인 발, 커다란 엉덩이, 그리고 긴 혀. 이 페티쉬들이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 훨씬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외모를 가지고 나와 여러 가지 가치관과 성격 등이 맞는 사람이라면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모양새는 폴리아모리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서로에게 마음만은 1순위지만 주변에 호감 가는 상대와는 섹스를 하는걸 인정하는 사랑.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포썸을 해서 각자의 파트너와 섹스 중에 눈을 마주치면 윙크를 하거나 사랑한다는 입 모양과 키스를 날리는 그런 사랑. 다른 섹스를 나누는 친구와는 다르게 서로만이 조금 더 바운더리의 허용이 있을 수 있는 사람.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여러 가지 여건도 안되는 데다가 그런 여자를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같다. 그리고 사랑이라고 해서 마음을 주었던 관계는 결국 좋지않은 결과를 가져온것 같다. 지금은 일단 더이상 그런 소모적인 관계를 가지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에 그런 사랑은 판타지로 남겨두고 지금은 지금의 관계들로 만족하는 수밖에.


*글-야한 글을 쓰는 안경군

*이미지 출처: Rev. Xanatos Satanicos Bombasticos (ClintJCL)

원본 주소: https://www.flickr.com/photos/clintjcl/4001952872/in/photost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