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웹진: [1호] 커밍아웃

[특집] 시리즈물인데 비정기적인 좌담회 1호: [바이 더 웨이] 상영회 파티 편-1-

# 미리 알려드립니다 : 이 글에는 다큐멘터리 바이 더 웨이[Bi The Way] 의 내용이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2013년 12월 어떤 주말 오후, 바이모임은 서울 홍대 인근에서 [바이 더 웨이]를 상영하는 파티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고, 각자가 손수 준비한 먹거리를 나눠 먹으면서 국내 최초(그리고 짐작건데 아시아 권에서는 최초~?!)로 공개 상영된 [Bi The Way]를 함께 관람하는 뜻 깊은 자리를 가진 바 있지요.

[Bi The Way]는 브리트니 블록맨과 조세핀 데커 두 명의 감독이 미국 전역의 바이섹슈얼들을 만나러 돌아다니고 각계로부터 바이섹슈얼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는 포멧으로 만들어진 로드 트립 다큐멘터리입니다. 조쉬, 데이빗, 팸, 타쉬, 타린 등 등장인물들이 바이섹슈얼로서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이야기 듣고, 사회학, 생물학, 신학, 성 연구 등 각 분야의 학자들과 칼럼니스트, 영화 감독, 작가 등을 찾아가 바이섹슈얼에 대하여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를 듣지요. (공식 홈페이지 : http://www.bithewaymovie.com/ )

이번 글에서는, 준비 과정부터 상영작 선정, 영화 품평회와 현장 토론의 뒷이야기까지… 바이모임 웹진의 창간을 기념하며 웹진의 필진들이 모여 <바이모임 [바이 더 웨이] 상영회 파티>에 대한 모든 걸 담은 좌담을 기록해 보았답니다.

# 당시 상영회는 영상물 상영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블록맨과 데커 두 감독에게 사전 문의하여 상영의 허가를 받아 이루어졌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본 글에 실린 사진들은 현장 사진을 제외하고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사진을 사용하였음 또한 알려드립니다. 상영회를 위해 자막을 감수하는 수고를 해주신 두 분과 멋진 웹자보를 제작해주신 디자이너분, 상영 공간을 제공해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어쩌다가 [바이 더 웨이]를 상영하기로 마음먹은 걸까?


미국 전역의 바이섹슈얼을 찾아 가는 로드 트립 다큐멘터리 영화 

[바이 더 웨이]의 공식 홈페이지


강랑 : 일단 [바이 더 웨이]를 상영작으로 고르게 된 솔직한 이유는 이 영화 외에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 아닌가요?

주누 : 그 당시에는 그랬죠.

강랑 : 처음 준비할 땐 바이섹슈얼만 전문적으로 다룬 영화를 구할 길이 없었던 거죠?

주누 : 우리가 접근할 수 있고, 저작권에서 자유로워서 돈이 들지 않는 것 중에서 고르다 보니 이 영화가 낙점되었어요.

강랑 : 그래도 [바이 더 웨이]가 마침 딱 알맞은 분량의 런닝 타임이었고, 등장인물과 이야기도 계속 바뀌기 때문, 상영회 중간에 온 사람도 무리 없이 볼 수 있었어요.

잇을 : 그런데 일부러 다큐멘터리 장르를 선택한 거였나요? 특별히 다큐멘터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나요?

이브리 : 저는 그랬죠. 한 공간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쉽게 접하고 수 있는 매체로는 영화와 같은 영상 매체가 제일 났겠다는 게 우리 판단이었고요. 극영화나 모든 장르를 포함해서 그냥 ‘바이섹슈얼이 등장하는 영상물'을 찾는다면 아주 없지는 않아요. 그 경우라면 한국에서 자막과 함께 정식 상영된 작품도 있고요. 하지만 보고 나서 참가자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엔 다큐멘터리가 더 좋을 것 같았죠.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얘기 나누는 것도 상영회의 중요한 일부였기도 하고요.

   일단 처음 이벤트를 기획했을 때는 파티였는데 후에 상영회로 바뀌었죠. 그것도 좋았어요. 처음 의논할 때 강랑님이 상영회가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강랑 : 제가 원흉이었군요. [웃음]

이브리 : 상영회 방식 좋았어요.

주누 : 다른 바이섹슈얼 영화들이 있긴 하지만, 등장인물이 바이섹슈얼일 뿐 바이섹슈얼리티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서 이왕 할 바에는 바이섹슈얼리티에 좀 더 집중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있었죠. 아까 얘기 나왔듯이 다른 선택지가 적기도 했지만, 마침 구할 수 있었던 영상이 바이섹슈얼에 키워드를 맞춰 제작된 다큐멘터리인데다가 한국에서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영화라서 가급적이면 이걸 하자고 했었던 거죠. 덤으로 [바이 더 웨이]라는 제목도 저는 마음에 들었고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자막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

: 자막 만드느라 엄청 힘들었어요


잇을 : 그럼 ‘자막을 어떻게 준비했나’에 대해 더 얘기해 볼까요?

강랑 : 영화 영상을 서너 토막으로 나눈 후 사정이 되는 세 명이 한 토막씩 자막 제작을 맡았죠. 저는 단지 섹스 신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세 번째 토막을 맡았습니다.

이브리 : 후회하셨나요?

강랑 : 아뇨, 좋았습니다. 중간에 춤추는 장면을 포함해 대사가 없는 장면이 몇 분 있었어요. 그래서 매우 편했습니다. 계속 대사 없이 춤을 더 췄으면 좋겠다고 바랄 정도로.

이브리 : 대본만 사전에 구할 수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요. [웃음]

주누 : 대사를 들으며 바로 번역을 하자고 했던 우리가 그때 너무 패기 넘쳤어요. [웃음]

강랑 : 우리 모두 직청직해의 원대한 꿈과 희망을 안고 있었죠. 저도 이런 식으로 바로 영화를 보면서 번역을 하는 게 처음이었어요.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지요. [웃음]

잇을 : 얼마나 오래 준비한 거죠? 시간이 꽤 걸렸죠?

주누 : 상영 전날 새벽까지 작업을 해야 했으니까요. 처음에 제가 영상을 인코딩 하고, 서로 나눠 맡아가서 번역을 하고… 그렇게 치면 실제 작업한 기간은 2~3주 정도 걸렸을까요?

강랑 : 언제나 그렇듯이 저는 항상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시작을 하기 때문에 마감하기로 했던 바로 직전 주말쯤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브리 : 전 밤새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자막 작업을 할 때는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네요. “이 편은 끝내야 해. 이 편은 끝내야 해!” 하면서.

강랑 : 특이했던 게, 5분 짜리 영상 재생 시간 분량을 번역해 옮기는 작업이 40분에서 1시간까지 걸리는 거예요.

이브리 : 그렇죠. 특히나 다른 건 못하고 계속 귀로 들으면서 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까요. 어떻게 보면 녹취 푸는 거랑 비슷했어요.

주누 : 한 사람이 맡은 분량이 약 25분 안팎씩 뿐인데도, 마무리하기까진 정말로 오래 걸렸던 느낌이고. 저는 자막 번역 하면서 ‘아, 내가 정말 영어를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랑 : 저는 마음껏 의역을 즐겼습니다. 의역의 즐거움~

이브리 : 그럼 다음 번에는 대본 있는 걸로…

잇을 : 다음 번에? 그럼 또 할 계획인가요?

이브리 : 그건 모르죠. [일동 웃음] 또 하자고 하니까 다들 싫어하시는 것 같네요?

잇을 : 안타까워서요.

강랑 : 사실 이런 상영회를 한 번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또 다른 좋은 자료만 있다면. “이미 해봤는데, 한 번 더 하는 거야 뭐” 이런 마음이랄까요.

이브리 : 그런데 준비 과정에서 고생한 얘기는 재미 없지 않을까요. [웃음]

잇을 : 그래도 잊기 전에 이렇게라도 공식 기록으로 남겨 놓기로 하죠.



감히~~!? 등장인물들을 품평하다


- 조쉬

강랑 : 전 지금 영상을 보며 얘기 중인데요. 지금 화면에 조쉬가 나오고 있네요. 우리 모두가 조쉬를 사랑하지만… 다큐 전반에 있어서 조쉬의 분량이 이렇게까지 클 필요가 있었을까요?

주누 :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긍정적으로 묘사되기도 하고요.

강랑 : 조쉬는 게이인 아버지와 자기 스스로를 양성애자라고는 생각지 않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직 어린 아이인데요. 조쉬는 과연 바이섹슈얼일까요?

이브리 : 저는 이 영화의 감독들이 조쉬 한 명만이 아니고 그 가족에도 초점을 맞춘 것 같아요. 조쉬의 아버지 조나단은 한때 조쉬의 어머니와 연애를 하고 아이를 낳았으나 어느 순간 자신은 게이라며 아내를 떠난 인물이죠. 그리고 조쉬의 어머니인 조안도 예전에 어떤 식의 여성 간 관계를 경험했다는 언급이 약간 나오고요. 조안은 ‘난 딱히 바이섹슈얼도 레즈비언도 아니고, 나는 나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말이죠. 조쉬 본인도 바이섹슈얼과 게이 사이를 오가며 고민하고 있고. 이런 가족을 바이섹슈얼 가족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바이섹슈얼이 아무도 없는 바이섹슈얼 가족…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주누 : 조쉬도 여자애한테 한번 대시를 했었기도 하고, TV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배우한테 반하기도 하고. 남녀에 다 끌린다는 식으로 얘기하죠.

이브리 : 음… 맞아요. 그런데 그런 게 바이섹슈얼이라는 증거라고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주누 : 그렇죠.

잇을 : 어떻게 보면 그래서 우리가 조쉬를 좋아하나 봐요.




강랑 : 알기 힘들어서?

이브리 : 그럴 수도요. 어쩌면 가족 모두. 이 세 명은 이성애자가 아무도 없는 (이혼했지만) 핵가족이에요. 전 그 점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흔히 결혼을 이성애 규범성을 구현하는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이성애자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는 나가서 돈을 벌어오고, 아이는 부모를 존경하고…. 그런데 이들은 그런 게 아니죠. 조쉬가 자기 성적 지향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엄마에게 상담하거나, “나한테 여장한 모습도 보여주는 우리 아빠 진짜 좋아!”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고요. 이런 게 아마 퀴어 가족의 모습 아닐까요?


- 데이빗

강랑 :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영상에서는 데이빗이 엄마 아빠 사이에 껴서 불편해 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어요.

주누 : 데이빗의 부모는 정말 앞서 조쉬 부모들과 대비된다는 느낌이에요.

이브리 : 이 장면 재밌더라고요. 데이빗 엄마가 바이섹슈얼이라고 커밍아웃한 아들에 대해 “나는 남자를 좋아하고 데이빗 아빠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얘는 둘 다 절반씩 닮은 거다”라고 말하잖아요.

강랑 : 그때 보면 데이빗은 웃고, 아빠는 맘에 안 드는 게 티 나서 표정이 썩어가고 있죠. [일동 웃음]

주누 : 이 장면에서는 데이빗 부모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답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엿보여요.

강랑 : “우린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계속해서 여러 번 반복해 말하는데, 그에 대해 데이빗은 살짝 기가 차다는 듯이 웃잖아요.

주누 : “너 어릴 때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다 이해하려고 한단다. 이제는 다 안단다.”라는 제스쳐인 거죠, 부모들은.

잇을 : 그런데 데이빗은 둘 사이에서 고립되어 있는 배치였죠. 양 옆 부모 사이에 끼어 앉아 있는 데다가 말하는 내용에도 불편해 하고.





이브리 : 데이빗의 아빠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어요. “우리가 얘를 사랑하긴 하는데, 이해하는 건 아니다” 라고요.

강랑 : 사실 그래요.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게 더 솔직한 거죠.

이브리 : 근데 왜 꼭 부모는 [자식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강랑 : 아유~ 가족끼리도 얼마나 이해를 못 하는데.

이브리 : 그러게요. 이성애자들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다고… .

잇을 : 어쨌든 그들은 뭔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여전히 남아있고, 또 그런 불안정함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로 계속되는 상황에서 부모로서 그들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거겠죠.

주누 : 게다가 불쌍하게도 데이빗은 전체 출연자 통틀어 촬영 기간 중에 유일하게 연인과 헤어지는 등장인물이지요. [웃음]

이브리 : 그러고 보니 데이빗은 계속 애인에게 차이는 사람으로 나오네요. 헤어졌던 전 여자친구도 나오고, 현 남자친구하고도 헤어지고….

강랑 : 현 남자친구는 다른 남자애랑 사귀어서 떠나고.


*또 다른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와 상영회에 대한 더 많은 수다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이야기-바이모임

*녹취록 작성-강랑

*편집/정리-주누 

*글-바이모임